나는 투수 류현진을 좋아한다. 그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로 떠났을 때는 몹시 아쉬웠다. 한국프로야구에서 그를 볼 수 없어서가 아니라 일곱 해를 한국에서 선수로 활약하며 2승만 더했으면 100승인데, 그의 등번호 보다 하나 모자란 98승을 거두었다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LA다저스에서의 첫 해와 두번째 해, 그의 가능성은 놀라웠다. 하지만 곧 부상이 찾아왔고 선수로서의 내구성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꽂혔다. 그런 그가 부활했다. 작년부터 심상치 않더니 올 해 그의 활약은 그야말로 리그 최고의 투수라 할 만하다. 5월에 거둔 성적은 경이로울 정도이다. 여섯 번을 등판해 다섯번을 승리했고 완봉승도 곁들였다. 내용 또한 훌륭했다. 그 덕에 현재까지 8승 1패에 5연승, 승수와 자책점에서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올해 그의 질주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궁금하다. 그래서 경기가 예고된 날에는 젊은 날, 애인에게 온 메시지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어 보듯 이닝 당 결과를 찾아보기에 바빠진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5월 2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PNC파크에서 열린 피츠버그와의 원정 경기가 그것이다. 그는 이 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10피안타 3삼진 2실점으로 시즌 7승째를 거두었다.
경기 결과로만 보면 썩 잘한 경기였다. 5점 차로 여유롭게 거둔 승리이기도 했다. 그런데 류현진에게 이날 경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그 날은 비가 예고되어 있었지만 하늘을 본 류현진은 경기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예정된 시간부터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보대로 비가 왔고 경기는 1시간 45분이나 늦게 시작되었다. 그 영향이었을까. 승리의 키였던 제구력이 이전 경기에 비해 무뎌졌다. 안타는 10개나 허용했다.
6회에 위기가 고조되었다. 선두 타자에게 2루타를 맞으면서 불안이 더해졌다. 하지만 그는 이어진 두 명의 타자를 땅볼로 유도하여 잡아냈다. 투 아웃에 주자는 3루 상황이었다. 그리고 등장한 타자가 피츠버그의 엘모어였다. 그의 타구는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펜스까지 날아갔다. 앗! 실점이다! 그런데 외야수 벨린저가 타구를 끝까지 쫓아가더니 펄쩍 뛰며 공을 걷어냈다. 실점 위기를 막은 결정적인 호수비였다. 6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위기를 넘긴 류현진은 7회부터 마운드를 우리아스에게 넘겼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카메라에는 류현진이 덕아웃에서 벨린저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이 잡혔다. 그를 포함한 외야수들의 수비 도움은 그 날의 승리 투수가 된 중요한 배경이었다.
5월 말 또 다른 경사가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 영화가 칸 영화제의 대상 격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경쟁 부문에 진출한지 19년 만에 이루어 낸 성과이다. 더구나 올해는 한국 영화 100주년 기념의 해이다. 그러므로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국 영화 100년을 기념하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이 열린 가운데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으로 호명되며 무대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있었기에 수상이 가능했다며 그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는 함께 일한 배우들을 위대한 배우라고 표현했다. 그의 수상 인사는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배우 송강호를 무대로 불러 내어 인사말을 요청했다. 송강호는 인내심과 슬기로움, 열정을 가르쳐 주신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배우들께 이 영광을 바치겠다며 소감을 말했다. 기사 말미에는 감독 봉준호가 무릎을 꿇고 배우 송강호에게 자신이 받은 상을 바치는 사진이 실렸다.
매년 6월 초에 그해의 사업계획에 대해 전반기 실적을 평가하고 계획을 수정한다. 그 내용을 6월 말에 본사에 보고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일정의 하나이다. 회사 경영이라는 것이 기대를 갖고 새해를 시작하고 위기감으로 한 해의 반환점을 돌며 연말이면 간신히 수지를 맞추고 한숨을 돌린다지만 어쩜 한 해도 틀림없이 그 일을 반복하는지. 그래도 회사가 유지되고 이 어려운 환경과 경쟁 속에서 우리가 거두고 있는 성과가 약간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무엇에서 온 것일까?
오늘 본 두 기사를 통해 나는 시차를 두고 다른 곳에서 벌어진 두 장면에서 같은 그림을 보았다. 그것은 야수의 도움없이 승리할 수 없음을 아는 한 멋진 투수의 모습과 배우들의 열정과 노고 없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음을 아는 또 다른 멋진 감독의 모습이었다.
우리 직원들은 어떨까. 어떤 사람은 베트남 직원들의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하고, 어떤 이는 직원들이 회사에 애정이 없어 관리가 어렵다는 말도 하지만 그런 그들이 없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고, 그런 그들이 없이 성과는 거둬지지 않는다는 진실을 어떻게 꿰어내야 할지. 아무리 탁월한 법인장이, 아무리 훌륭한 본사의 배경을 등에 업고 일한다 해도 외야로 빠지는 공을 끝까지 따라가는 한 사람이 없다면, 화면의 구석을 채우는 대사 없는 단역의 배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늘의 성과는 꿈에 불과한 일이 될 것이다. 그 꿈을 이루는 길에 함께한 배우인 그들에게 봉감독처럼 무릎을 꿇어 감사할 것까지는 없더라도 덕아웃에서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쁨을 나눌 필요는 있는 일이다.
벨린저와 같은 호수비는 한 팀일 때 빛이 난다. 투수가 한 점을 잃는 것이 아니라 우리 팀이 한 점을 잃는다는 의식이 있을 때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플레이도 나온다. 이런 팀의 경기는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이러한 팀 정신은 서로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다. 투수를 믿고 야수를 믿는 것이다. 송강호는 17년을 봉준호 감독과 작업했다. 그것을 믿음을 일구어간 세월이라 부르고 싶다. 그들은 팀이 되어 있었다. 어찌 처음부터 그랬을까? 나도 베트남에 들어온 지 어느덧 12년 차가 되었다. 내게도 믿음으로 키워간 그런 팀이 있는지 돌아볼 때이다. 누군가 그랬다. 도무지 직원들을 믿을 수가 없어요. 아니다. 믿음은 내가 믿는 것이지 상대가 믿을 만한 행동을 보이기에 믿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세월이 필요하다. 세월은 내가 보여주는 믿음에 진정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를 먼저 믿지 못하는데 그들이 나를 신뢰할 리 없다. 더구나 그들이 볼 때 우리는 언제든 훌쩍 떠날 가능성이 있는 외국인 아닌가.
인생 후반기 경기를 류현진의 피츠버거 경기같이 풀어 내고 싶다. 봉준호 감독처럼 인터뷰하고 싶다. 올해에는 한 해 동안 나와 팀이 되어 같은 길을 걸어준 직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감사와 기쁨을 나누는 꿈을 꾸고 싶다. /夢先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