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잘랐다. 이런저런 연유로 삼 개월여를 기른 채로 놓아두었더니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머리를 묶고 다니라는 조언도 있어서 며칠 그래보았는데 왠지 쑥스러운 것이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결국 아내와 함께 한국분이 운영하는 미용실을 찾았다.
미용실을 가본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미용실은 갈때마다 좀 쑥스럽다. 손님을 편하게 해주기위해 여러가지 신경을 써주지만 이상하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옆 자리에서 다른 여성분이 머리를 다듬고 있으면 왠지 못 올 곳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떨구기 십상이다. 마치 엄마 손을 잡고 아주머니들이 모이는 장소에 엉거주춤 자리한 초등학교 남자애 같은 심정이 된다. 그곳에서 아내는 당당하고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그러니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주문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다. 그런 나를 못 참아 주겠다는 듯 아내는 내 머리칼을 뒤적이며 지침을 전한다. 옆머리는 뒤로 넘길 정도로 해주시고요, 앞은 이렇게, 뒤는 이렇게, 머리숱이 없으니 여기는 봉긋하게. 도저히 복기하기 어려운 이 단순치 않은 지침을 원장님은 어찌 다 기억하는지 거침없이 설컹설컹 소리를 내며 가위질을 시작한다. 금새 바닥에 머리카락이 쌓인다.
나만이 아니라 대부분 남자들은 이발하러 가서 그런 디테일한 주문을 하지 못한다. 그냥 ‘짧게 잘라 주세요’ 아니면 ‘알아서 해주세요’이다. 그렇다고 모든 남자가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미적 감성이 있는 센스 있는 남자는 다르게 주문할 줄도 안다. ‘보기 좋게 잘라주세요’ 하고. 그런데 거기까지이다. 그렇다고 머리 자른 결과에 대범하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다. 어떤 때는 머리 자른 게 맘에 안들어 투덜거릴 때도 있다. 그러니 비록 어색하고 쑥스럽다 해도 아내를 대동하는 게 안전하다.
그런데 왜 미용실이냐고? 베트남엔 남성용 이발소가 없을까? 당연히 이발소가 있다. 나도 처음에 베트남에 와서 남자만 가는 로컬 이발소에 다녔다. 2만 동이면 머리도 감겨준다. 오래된 이야기이다. 로컬 이발소에서 재미있는 것은 손님에게 묻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가위가 치고 들어온다. 역시나 남자답다. 하긴 물어봐야 외국인하고 통할리도 없으니 처음부터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베트남 이발사들은 모두 한 곳에서 교습을 받나 보다. 그들이 만든 머리모양새가 어디나 똑같기에 드는 생각이다. 어떻게? 뒷머리 끝모양을 자를 댄 듯 직선으로 뚝 잘라 버린다. 잘라 본 사람은 안다. 물론 지금은 베트남 남성들도 개성을 중시하는 데다 커트 기술도 발전해 다양한 손님들의 취향에 대응하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물론 미용실에 다니고 있는 나로서는 잘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땐 그랬다.
이발소에 가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그리울 때가 있다. 베트남 이발소에는 거기만의 특별한 것이 있다. 나는 그것을 베트남에서 누릴 수 있는 몇 가지 호사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베트남에서 머리 손질하는 곳은 대체로 세 종류 정도로 구별할 수 있다. ‘Uốn Tóc’이라 쓰인 곳은 ‘미용실’로 여성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보면 된다. ‘Cắt Tóc’은 여성, 남성이 모두 이용할 수 있으며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곳이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곳은 ‘Hớt Tóc’이라는 곳이다. 진정한 로컬 남성이발소이다. 호사는 그곳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Hớt Tóc’에서는 이발, 세발(샴푸), 면도, 안면 마사지, 귀 소제, 손발톱 소제 등을 서비스한다. 일반적으로 이발만 하는 경우는 2만 동만 내면 되니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고(물론 지금은 많이 올랐을 것이다) 위의 모든 서비스를 다 받는다 해도 외국인을 상대로 하거나 1군이나 3군 중심에 있는 업소만 아니라면 15만 동이면 충분하다.
여기서의 이발이 호사가 되는 이유는 손발톱 소제를 받을 때 특별히 느낄 수 있다. 두 사람이 붙어서 정성스럽게 손톱과 발톱을 정리해준다. 조심스레 물을 뿌리고 깎아내고 잘게 일어선 주변 피부들을 정리하고 부드럽게 갈아낸다. 정리가 끝나면 갑작스레 예뻐진 손발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귀를 소제해 줄 때는 또 어떤가. 귓속을 청소해 줄 때면 졸음이 솔솔 온다. 그러다 끝났다는 소리와 더불어 귓속이 뻥 뚫리는 상쾌한 느낌이 든다. 갑자기 옆 사람의 소근거리는 소리가 다 들릴 듯하다. 이만한 비용에 두 사람으로 이런 좋은 서비스를 받으니 호사가 아닌가. 한국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 덕에 방 구석에서 손톱을 깎다가 방 더럽혔다고 타박 받을 일도 없다. 귓속도 깨끗하니 덩달아 좋다. 샴푸도 해 준다. 간혹 손톱을 세워 감아주는 직원들이 있어 불편하지만 그래도 시원하게 잘한다. 얼굴도 깨끗이 씻어준다. 손 하나 안 쓰고도 깔끔한 나로 바뀌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산할 때가 되면 저렴한 비용에 행복하면서 쬐끔 미안해지기 마련이다.
얘길 들으니 공항 근처에는 유명한 이발소들이 있다 한다. 이런 기본 서비스를 아주 잘해 준다는 뜻이다. 언젠간 꼭 가야지 하면서도 틈을 내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불과 몇 년 후엔 이런 서비스도 점점 가격이 올라가면서 내용 또한 변해 갈 것이다. 그냥 ‘이발소’와 ‘모범 이발소’가 있는 한국처럼 말이다. (무슨 이발에 ‘모범’이 있단 말인가?) 그 때가 되면 이런 호사도 끝일 테니 미안한 마음은 접고 누릴 필요가 있다. 잠시 누리는 사소한 호사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기회가 쉽게 올까 모르겠다. 내 머리칼의 권한은 아내에게 달려 있으니 말이다. 어느 날인가부터 자기가 직접 예약하고 동행한다. 내게는 호사를 누릴 기회가 날아간 셈이다.
그러니 머리를 잘라도 내 의견이 있을 리 만무이다. 머리 손질을 마친 후 원장님이 묻는다. 마음에 드세요? 대답 대신 눈은 아내에게 돌아가 있었다. 내가 맘에 들고 안들고가 무에 중요한가. 한국 남편들의 결정은 아내들이 쥐고 있는데. 요리조리 보던 아내가 대답한다. 잘 잘랐네요. 아내의 한마디에 거울을 보는 내 얼굴은 싱긋 미소 지으며 덩달아 답한다.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고 웃음 지은 당신, 나와 별반 차이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夢先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