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비엣남에 와서 느끼는 몇 가지 낯선 문화 중에 하나가 바로 이날에 대한 사회적 인식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한국 사람들은 아마 세계 여성의 날이 있다는 것조차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저도 이곳에 와서 이런 날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대다수의 한국인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차이에 대한 원인을 찾아봤더니, 한국이 여성의 날을 법정 기념일로 지정한 것이 고작 2018년, 작년이었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는 여성의 날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던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양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3월 8일 그날 아침, 하노이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업무 시작 전 하노이 사무실의 관리를 맡고 있는 이기훈 실장이 동 사무실의 유일한 여성 직원인 MS. Lien에게 장미를포함하여 여러 가지 꽃이 담긴 제법 큰 꽃다발을 안깁니다. 호찌민에서 여성의 날에는 그저 장미 한 송이를 전해 주곤 하던데 이곳 하노이는 좀 문화가 다른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위해 거리를 나갔는데 의상을 제대로 차려입은 여성들이 거리에서 서로 모여 사진을 찍으면 파안대소를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을 보니 이곳에서의 여성은 날은 그야말로 그냥 넘겨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념일인 듯싶습니다.
우리에게 낯선 여성의 날이 왜 비엣남에서는 이리 무게있게 다루는지를 알기 위하여는 역사를 좀 뒤져 봐야 합니다.
여성의 날이 탄생하게 된 유래는 1908년으로 올라갑니다.
여성의 날 기원은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의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궐기한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기념하는 여성의 날이 생기기까지는 근 70년이 걸립니다. 1975년 유엔에서 그 해를 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1977년 3월 8일을 특정해서 그날을 ‘세계 여성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이 세계 여성의 날을 단순한 기념일로 정하는 것을 넘어 공휴일로 정해 쉬는 나라가 제법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를 살펴보자면, 옛 소련연방에서 분리 독립한,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CIS 국가들과 중국, 쿠바, 북한, 라오스 등이 있는데 이런 국가의 특징을 보면 모두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입니다.
여성의 날은 미국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일어났는데, 왜 그날을 기념하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더욱 열성인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여기에는 좀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의 근원은 러시아에 있는 듯합니다. 러시아에서는 1917년 2월 23일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을 일으켜 제정 러시아를 몰락시키는데, 그날, 2월 23일은 러시아가 사용하던 율리우스력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그날을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면 바로 3월 8일입니다.
그리고 그때 그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당국은 여성의 참정권을 동시에 보장합니다. 당시 여성에서 참정권을 부여한 나라는 흔치 않았습니다. 미국마저 1920년에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할 정도로 여성의 권리는 사회적으로 보호 받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러시아에서 그것을 과감하게 시행하고, 나아가 10월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소련연방을 만듭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로 인해 현재 러시아는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기념하며 공휴일로 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조치가 시행된 것은, 제가 사회주의 사상을 잘 몰라서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아마도 사회주의 기본 개념에 남녀 차별이 없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 영향을 받아 모든 사회주의 국가는 여성의 날이 이렇게 의미 있게 시행하는 듯합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비엣남이 모계사회로 여성의 파워가 남달라 여성의 날을 기념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데, 역사를 알고 보면 좀 의미가 다른 듯합니다. 이 기회에 제대로 알고 가는 것도 비엣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날 장미를 선물하는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이 여성의 날의 유래가 된 미국의 궐기 사건 당시, 여성들이 그 시위에서 외친 구호는 ‘여성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 였습니다. 빵은 남성보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 시달린 여성에게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의미였고, 장미는 여성도 사회의 일원으로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달라는 요구를 상징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여성의 날에는 여성에게 빵과 장미 한 송이를 선물하는 관습이 생긴 것 입니다. 장미 한 송이는, 참정권은 누구에게나 하나 뿐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번 여성의 날, 우리 여직원에게 여러 장미뿐만 아니라 다른 꽃들이 함께 담긴 화려한 꽃다발을 선물한 것은 그날의 의미를 알고 선물한 것이라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여성의 날에 대하여 우리는 약간의 오해를 갖고 있는 듯합니다. ‘여성의 날’이라는 타이틀이 여성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오해로 인해 여성의 날에는 남성들이 여성에게 꽃다발을 바치며 그대들을 우리가 보호해줄게 하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찾자며 남녀 평등을 내세웠지만 그날을 기리는 기념일의 이름이 ‘여성이 날’ 이 되는 바람에 그 이름으로 인해 오히려 여성은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여권의 날’이 어울리는 이름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아무튼 어떤 상황이라도, 여성은 분명히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여성만의 능력인, 인간을 잉태하고 생산하는 것은 진실로 경이로운 창조의 작업입니다. 우리는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져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조화에 대하여 신의 경이로움을 늘 감탄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렇게 매일 창조를 목격하며 살고 있고 또, 그 보다 더 경이로운 인간을 생산하는 그 창조주들과 어울려 생활을 함께 합니다. 그 인간 창조주는 바로 여성입니다.
우리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의식 수준은 준수하는 원칙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여성은 여성 만의 가질 수 있는 창조, 인간의 생산이라는 변할 수 없는 원칙을 준수할 때 진정 가치있고 존중받는 존재가 된다고 믿습니다.
우리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따로 있는 상황에서 모든 분야의 동등한 경쟁을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여성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약화시키는 함정에 빠지는 일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생겨납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도 여성의 고유한 역할은 침해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여권의 날’에는 장미 한송이와 빵으로 여성의 노동과 사회참여의 권리를 주장한 용기에 대하여 치하받고, ‘여성의 날’에는 인간의 창조주인 여성으로서 그 존재의 가치를 존중받는 사랑의 꽃다발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다음 해에는 이 두가지 선물을 다 준비해야 하나요?
여성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