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도시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는 짧게 리우(Rio)라고 불린다. 리우는 브라질에서 상파울로에 이어 두번째로 큰 도시로 아름다운 세계 3대 항구도시의 하나로 꼽힌다. 리우가 면한 대서양 쪽의 바다는 구아나바라 만(灣)으로 유명한데 코파카바나 해변이 여기에 있다. 서쪽은 묘하게 생긴 봉우리들이 높게는 해발 7백여m에 이르는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다낭, 푸꿕과 같이 아름다운 바다와 멋진 산을 동시에 품은 도시이다. 16세기 초 이 지역을 처음 발견한 포르투갈 항해자가 대양과 좁은 입구로 연결되어 있는 구아나바라 만을 강으로 잘못 알고 이 곳을 리우데자네이루라는 포르투갈어로 부르면서 이 이름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리우데자네이루란 ‘1월의 강’이란 뜻이다. 리우를 상징하는 것은 해변만이 아니다. 코르코바두 봉우리 정상에 서 있는 거대한 그리스도 상으로도 유명하다. 이제는 브라질의 상징 같이 되어 있는 이 동상이 화면에 나타나면 누구라도 리우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 차릴 수 있다.
오래 전 파견업무로 브라질에 머무는 동안 리우를 방문한 적이 있다. 내가 있던 지역에서 리우까지는 차로 약 4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지루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리우로 가까워질수록 피로는 뒤로 물러나고 탄성이 한걸음 앞서 절로 나왔다. 늦은 11시에 도착한 리우의 밤 풍경은 환상 자체였다. 산을 이루며 겹겹이 쌓여 반짝이는 작은 불빛들의 군집도 아름다웠지만 해안을 감싸 안고 돌아가는 도로의 유려한 굴곡은 부드러운 스텝으로 상대를 인도하는 노련한 댄서와도 같았다. 호텔이 있는 해변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맞던 밤 거리는 오키드 와일드에서 봤던 화려하면서도 퇴폐적인 매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일행을 사로잡은 건 전혀 어울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속에 하나의 그림으로 녹아 있던, 어두운 하늘 한 켠에 둥실 떠올라 홀로 빛나던 예수 그리스도의 동상이었다.
아침에는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리우의 해변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손가락 안에 들게 한 그 해변이다. 모래사장은 설탕가루같이 곱고 깨끗하며 파도는 잔잔하기 그지없었다. 해변에서는 여기저기 축구에 열심인 아이들의 함성만이 멈춰 있는 듯한 시간을 깨우고 있었다. 남국의 풍경 위로 내리 쬐는 아침 햇살이 만들어 내는 몽환적인 분위기. 눈을 뜨고 있음에도 모든 것이 환영처럼 보였다.
베트남에서 왜 리우 타령인지 의아해하는 분이 있겠다. 가보기 어려운 남미 다녀왔다고 자랑하나? 혹은 카니발 얘기를 하려고 서설이 길었나? 아니다. 그 날의 일을 떠올리게 한 사건 때문이다.
코파카바나에 취해 몽롱하니 햇살에 몸을 기대인 채 나른함을 즐기며 비치 파라솔에 몸을 늘어뜨리고 있던 내게 흐릿한 형체로 스멀스멀 다가서는 작은 물체가 있었다. 달콤하게 즐기던 나른함이 깨지던 순간이었다. 실눈을 뜨고 올려다보니 한 흑인 꼬마였다. 아이는 내게 과자를 하나 내밀었다. 사 달라는 것이다. 아이가 문득 다른 차원에서 날아온 이방인같이 여겨졌다. 도저히 이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다른 시간대의 복장 속에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고 있는 이방인.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 리우의 이방인은 나인데 말이다. 그 소년이 얼마동안 내 곁에 서있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대답도 없이, 풀린 눈으로 올려다보는 동양인에게 과자 팔기를 포기했는지, 소년은 무표정하게 돌아서서 길을 건너 도시 쪽으로 사라져 갔다. 그래, 사라졌다.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흐느적거리며 사라졌다.
꿈일까? 퍼뜩 정신이 들며 몸을 일으켜 소년이 향한 도시 쪽을 바라보았는데, 그런데, 문득 그 도시가, 코파카바나를 둘러 싼 멋진 호텔과 고급 빌딩들의 행렬이, 일순간 큰 벽이 되어 일어나 내 시야를 막아섰다. 소년은 견고한 벽의 틈 어디로 인가 스며든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벽이었다. 다른 차원에서 온 이방인들을 막는 큰 벽이었다. 이 세계의 평온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들을 차단해 버리는 벽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감탄했던 야경은 도심에서 밀려난 리우인들의 집단거주지가 만들어낸 풍경이라 했다. 가난은 멀리서 바라볼수록, 그 초라함이 나와 관계없을수록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라고 누군가 비아냥거리듯 말을 했다. 과거 영국에서는 여왕의 행차 때 여정에 포함된 길 주변에 멋진 주택모양의 벽을 세웠다고 한다. 여왕이 가짜 집들의 화려함을 보고 백성들의 윤택함이 자기 선정의 결과라 하며 기뻐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런 건축을 ‘폴리’ 라고 한다. 집은 집인데 가짜 집이다. 거기에 오락은 있는데 삶이 담겨 있지 않다. 멋진 풍경이긴 한데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게 폴리이다. 그럼 나는 폴리 안에 있는 것일까? 내가 환영처럼 만났던 흑인 소년은 벽의 경계를 넘어와 그들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이었나 보다. 폴리 바깥에 감춰지고 잊혀 가는 삶이 있다는 메시지, 그것을 과자에 담아 말하고 싶었던 전령이었나 보다. 벽은 어디에나 있다. 한국 땅에도 있고 지구 반대편인 브라질의 리우에도 있고 그리고 여기 사이공에도 있다.
동나이 현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차가 신호를 받고 빈터이 사거리에 잠시 정차했을 때, 한 까무잡잡한 피부의 소녀가 다가왔다. 운전석의 차창을 두드렸다. 기사는 항상 겪는 일이라는 듯 무심하게 신호만 응시했다. 아이가 내 쪽으로 이동 해 차창을 두드렸다.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반대편 차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거기에 코파카바나의 소년이 비춰 보였다. 차창을 내려야 해. 속에서 누군가 외쳤다. 하지만 차는 출발했고 소녀는 무심하게 도로 경계석에 걸터앉았다. 내가 나에게 말했다. 그 아이 뒤에는 악당이 도사리고 있어, 그건 아이를 돕는 길이 아니야, 너의 얄팍한 동정심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니까? 차의 유리창이 코파카바타나의 건물 벽처럼 견고하게 내가 속한 세상과 소녀의 세상을 분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여전히 수많은 변명의 이유들로 낙서된 채로.
리우에서의 그날 오후 예수 동상이 선 산에 올랐다. 거대한 예수상은 손을 벌리고 도시를 내려다본다. 손바닥엔 십자가에 박혔던 못자국이 선명하고 표정은 진지하기만 하다. 진지하다 못해 고뇌하듯 했다. 아름다운 도시에 어울리지 않게 무슨 고뇌를…? 발 밑으로 구름이 지나 갔다. 도시는 평화로웠다. 예수께서 손에 빵을 쥐고 벽 안쪽으로 들어 가는 것을 먼발치로 보는 환상에 빠졌다. 리우의 몽롱하게 만드는 더위가 짜증나기 시작했다.
현장에서의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의 하노이대로를 차장에 기대고 바라보았다. 불과 5, 6년 전만 해도 대로 옆 안푸지역의 개천 주변은 무허가 주택과 그들이 폐자재를 모아 지은 상가들이 난립했는데 그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벽 너머로? 창에 비춰 보인 내 모습이 추레해 보인다. 아직도 나는 내 손에 있는 빵을 내 입으로 가져가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나 보다. 한 해가 다시 저물고 있고 벽 너머를 바로 볼 용기가 없는 나는 여전히 평안한가 보다. /夢先生
박지훈
건축가,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베트남 법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