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가 흔히 보았던 꼽추,
앉은뱅이 그리고 난쟁이 아저씨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책을 덮은 후 문득 이런 의문이 스쳤다. 그들은 석양이 질 무렵 누렇고 닳아빠진 대형천막 안에 동네어른들과 아이들을 초대했다.
그리고 기괴한 몸뚱이로 온갖 묘기를 선보이며 전국을 돌며 약을 팔곤 했다. 그 중 유달리 난쟁이 아저씨들이 곰 못지않은 재주를 부렸다. 이제 그들은 찾아 볼 수도 없으며 단지 우리의 오랜 기억의 창고 속에 웅크리고 있다. 아마도 86년 아세안게임과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보기 흉한 무허가 건물들이 헐려 버렸듯이 그들도 포악한 행정의 난도질을 피할 길이 없었으리라.
그들이 그나마 자유로이 활개치던 시절에는 있는 자와 없는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들이 극명하게 구분되던 시절이었다. 대도시에 새로운 빌딩이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그 어두운 그림자는 더욱 길게 드리워졌던 세상이었다.
나는 1970년생이고 1989학번이다. 내가 태어난 해에 전태일 열사가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자살 하였고 고교시절에는 이한열 열사가 87년 6월 항쟁 기간 중에 최루탄에 맞아 죽었다. 둘 다 20대 초반이라는 방년(芳年)의 나이였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20~30년 차이 나는 많은 선배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시대에 저항했다. 선배들은 오로지 책에서 배운 대로 이 세상이 펼쳐 지기를 바랬을 것이다. 책은 항상 진리를 담는다고 그들은 확신했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꿈 꾼 세상은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 하지만 괴물 같은 이 사회는 그들 바램과 철저히 반대로 흘러갔다. “노동자들은 아침 일찍 공장으로 걸어 들어 갔고 늦은 밤에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공장 주인은 노동자들이 시계를 갖는 것을 금했다. 이들 노동자와 가족들이 공장 주변에 빈민굴을 형성하고 살았다. 노동자들은 싸고 독한 술을 마셨다.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복음만이 그들에게 위안을 주었다.”(‘잘못은 신에게도 있다’편 속에)
세월이 많이 흘렀다. 배가 부른 만큼 정신은 너무 가난한 시절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배가 부르니 헛말이 많고 주위의 소음은 갈수록 심해진다. 학교는 책을 통해 진리를 가르치던 시대는 지나갔고 가정에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전통에 대한 가르침을 은연중에 손 놓고 말았다. 엄마가 딸에게 순결을 입에 닳도록 가르친다는 것이 요즘은 비웃음거리가 된 세상이다.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돈벌이에만 혈안이다. 그러나 극소수만 부를 이룰 뿐이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본문 중에서)
기성세대들이 젊은이들과 함께 이런 막대한 덩어리의 순환에 묻혀 그냥 굴러가서는 안 된다. 과거가 화려했던 초라했던 우리의 값진 경험과 지난 날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을 분명히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 난쟁이가 벽돌 공장의 높은 굴뚝에 올라가 피뢰침을 잡고 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종이 비행기를 날렸던 바로 그 시절을!
작성자 : 박동중 – 영남대 영문과 졸업/조흥은행 안국동 근무, 現 창작활동 및 백산비나 근무중 (frog09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