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골프를 치는가? 이런 질문에 대답을 명확히 할 수 있는 분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왜 산에 오릅니까? 하는 질문과 같이 우문입니다. 산이 있기에 산에 오른다는 답처럼 골프가 존재하기에 골프를 친다 가 현답이 될까요? 너무 단순하고 재미 없습니다, 물론 철학적인 답이 될 수는 있겠지만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답은 아닌 듯 합니다. 좀 더 실리적인 답을 구해봅니다. 제가 30년 전 골프를 시작한 이유는 점점 불어나는 허리 둘레를 줄이기 위해 허리 운동을 많이 하는 골프에 관심을 가졌고 또한 당시만 해도 상류 사회로 진입하려면 골프 정도는 해야지 하는 세속적인 풍조에 생각없이 동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가 골프를 왜 치는가 하는 현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좀 격이 떨어지는 듯합니다. 좀 그럴 듯한 답을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답은 어떨까요?
행복해지기 위해 골프를 친다. 제법 그럴 듯하지 않습니까? 조금은 철학적이고 덜 세속적인 답이 될 것도 같습니다.
사실 골프 뿐만은 아니죠. 세상의 모든 일은 다 행복을 추구하기위한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스스로 불행해지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살마저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위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함입니다. 단지 인간에 따라 각자 다른 방법들을 사용할 따름이죠.
그렇다면 행복을 골프를 통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바로 골퍼입니다. 그런데, 골퍼 여러분 솔직히 골프에서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많던가요? 골프를 시작하기 전에 누구나 작은 설렘을 느낍니다. 푸른 잔디를 걸으며 점잖은 동반자들과 여유로운 대화를 나누며 때때로 파안대소를 날리는 장면을 연상하면서 그런 장면의 주인공이 되는 자신에 대한 설렘입니다. 혹은 오늘이야 말로 그간의 굴욕을 모두 씻고 라이프 베스트를 기록하는 날이 될 것이라는 허황된 희망이 만들어 주는 설렘입니다. 이런 설렘이 행복이라면 이미 골프를 통한 행복 추구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한 셈입니다.
그런데 그런 희망을 품고 시작한 라운드가 희망대로 결론을 만드는 경우가 얼마나 되던가요? 결국 골프를 마칠 때마다 기분이 우울해집니다. 희망대로 되는 경우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스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개선되지 않은 답답한 솜씨에 스스로 바보가 되는 기분입니다. 에잉, 이넘의 골프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매번 반복합니다. 골프가 스트레스의 근원으로 자리 합니다. 매번 후회만 남기는 골프, 그러나 희한하게도 망각이 발동되어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시 희망을 품고 접근하는, 헛된 망상을 반복하는 이런 골프를 생활의 한 축으로 지속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고민입니다.
사실 지난 여러해 동안 골프를 멀리 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이렇게 반복되는 희망과 절망의 사이클을 견디기 힘들어 도망한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골퍼는 골프를 버리지 못합니다. 저도 5년 여를 피신해봤지만 다시 잡혀서 필드에 끌려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과 절망의 사이클에 다시 발을 담급니다.
골퍼가 가장 행복해 보이는 순간은 마지막 홀을 마치고 장갑을 벗을 때입니다. 환한 미소로 동반자와 악수를 나누고 오늘 재미있었어 하며 다음에 언제 다시 칠 것인가를 기약하는 행복한 골퍼 말입니다. 그 얼굴에서 피어나는 행복의 의미가 반드시 좋은 스코어로 인함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대다수가 지옥같은 미스샷의 만행이 이제는 끝났다는 의미의 행복일 수도 있지요.
이런 저런 얘기를 해보며 골퍼의 행복을 찾아보지만 별로 그리 절대적인 행복의 방법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좀더 명확한 행복의 통로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좋은 동반자들과 운동했다는 사회적인 합의 말고 개인적으로 진정으로 실감할 수 있는 행복은 무엇 일까요?
백 년 전 영국의 저명한 수필가이자 아마추어 골프 챔피온이었던 호러스 허친슨이라는 양반이 한 말이 있습니다.
“가장 행복한 골퍼는 솜씨가 향상되는 골퍼다”
동의하십니까? 저는 백번 동의합니다. 이제서야 골프에서 제대로 행복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찾은 듯합니다. 실제로, 골프 라운딩에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멋진 샷을 의도대로 날린 후가 아니던 가요? 결국 골프에서 찾을 수 있는 궁극적인 행복이란 골프를 기대이상 잘 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대 이상의 성적이 기록된 스코어 카드를 보면 남모를 미소가 피어나지 않던가요?
자신의 핸디캡과는 상관없이 매번 조금씩 골프 솜씨가 좋아진다면, 아마도 이세상의 모든 골퍼는 행복에 빠져 동북아 어느 나라를 흔들어 망조의 길로 치닫게 만들고 있는 천하에 몹쓸 정권이 교체된 듯이 콧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 매번 골프 솜씨가 좋아지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매번 솜씨가 향상되어 행복을 느끼는 경우는 아니라 하더라도 필드에서 한 두 번의 잘된 샷으로 행복을 맛 볼 기회가 있는 게임방식을 채택하는 것은 어떠한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우리가 주로 하고 있는 스트로크 게임은 18홀 내내 긴장을 풀지 못하는 힘든 게임입니다. 행복을 맛보기 힘든 게임이죠. 오히려 지워지지 않은 미스샷으로 스트레스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게임 방식입니다. 그리고 미스 샷이 쌓이면 만회하기가 힘든 게임입니다. 그래서 중도에 아예 게임을 포기하고 체념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미스샷을 밥먹듯이 하는 아마추어 골퍼에게는 실로 잔인한 게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권장하고 싶은 게임이 홀 매치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스트로크 게임의 지속되는 긴장감에서 벗어나 매홀 새롭게 투지를 돋우며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게임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지옥 같은 미스샷의 기억을 곧 지워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매홀 새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사실은 이 방법은 제가 아직도 샷이 잡히질 않아 미스샷을 연발하는데 전혀 양보없이 몰아치는 동반자가 원망스럽고 미스샷으로 의기소침해지는 지옥같은 고통에서 벗어나 가끔은 승부를 가르는 멋진 샷 하나로 행복을 느끼며 라운딩을 할 방법이 없을까 하는 궁리를 하다 만들어낸 얄팍한 술책입니다. 그래도 일견 타당한 생각이라고 자위 합니다.
엄격한 스트로크 게임 만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신봉하는 단골 동반자 강 사장님, 다음에는 게임방식을 좀 바꾸면 어떨까요?
상대가 잘 쳐도 그리 원망스럽지 않은 홀 매치 게임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