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일부로 본지 사무실이 빈탄 군에 있는 옹반킴 거리의 EMB 빌딩으로 이전하였습니다. 시내에서 2군으로 넘어가는 사이공 다리를 건너기 전 왼편에 늘어서 있는 고만고만한 빌딩 중에 하나입니다. 비록 이름있는 빌딩의 사무실은 아니지만 일단 사무실 이전을 완료했다는 것 자체에 한숨을 돌립니다.
이번 사무실 이전은 참으로 힘겨운 과정이었습니다.
베트남 생활 20여년을 넘기지만 아직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쉽지 않은 베트남 특유의 낯선 상황을 마주할 때 대응하는 솜씨가 20여년 전 당시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에서는 통하지 않는 상식을 마치 만고의 진리인양 내세우며 밀어 부치다가 결국에는 자신이 그 손해를 고수란히 감수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주장하던 상식이 당연하고 마땅하다는 증명을 보이기라도 하듯이, 적지않은 손실을 감수하며 밀어 부친 새로운 사무실과의 새로운 계약에도 그 상식은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다시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베트남을 배웁니다.
지난번 푸미흥 외각에 위치한 사무실은 사실 많은 면에서 아쉬운 점이 별로 없던 괜찮은 사무실 이었습니다. 푸미흥 외각에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단독 빌라라 주변 분위기도 좋았고, 공기도 맑고, 적당한 마당도 있어 마음에 여유도 주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사무실을 두고 복잡한 시내로 이전을 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렀습니다
단지 한가지 이유가 이전을 정당화 시켰습니다.
그 이유는 잡지사라는 회사의 정체성입니다.
독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생활에 도움을 주어야 할 잡지사가 한가한 외각에 묻혀 일을 한다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곳에서 지내다 가끔 시내를 나가면 거리가 몰라보게 바뀐 것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랍니다. 잡지사를 운영하는 인간이 이렇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멀리 떨어져서 물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 엄격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직무유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무실 이전을 밀어 부친 것인데, 좀 급하게 서두르다 보니 면밀하게 살피지 못한 실수를 한 것입니다.
사실 그런 실수의 이면에는 ‘내가 베트남 생활 20여년이다’ 라는 자기 확신의 함정이 깔려 있는 듯합니다.
그런 오만한 마음은 항상 무슨 일을 할 때 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질문,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생각했는가? 라는 자문마저 생략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은 그 댓가를 지불합니다.
아무튼 예정보다 무려 2개월이나 늦게 사무실 이전을 마치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안도의 한숨이 나옵니다. 이제 이 사무실에서 또 몇 년을 보내고 다음에는 전혀 논란거리가 없는 본지 명의의 사무실로 이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탈 많았던 사무실 이전을 마치고 새로 꾸민 사무실 제방에 앉아 잠시 머리를 비워봅니다. 이 방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는가?
호구책을 마련하기 위함이라는 생존의 목적은 접어두고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 이 일을 하고 있는가? 거의 15년이라는 한 개인의 황금시절을 지불하며 만드는 이 잡지가 과연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이런 생각이 흘러 결국 지금하는 일의 결과물인, 교민잡지가 갖는 의미로 사고가 모아집니다.
이 교민잡지가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다면 제가 하는 일 역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결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저희 직원들이 이 잡지를 위해 쏟아부은 15년의 세월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 씬짜오베트남>이라는 교민잡지가 갖는 목적과 의미를 애써 찾아 봅니다.
누군가 동의를 하던 말던, 본 교민잡지의 목적은 교민이 모두 행복하게 지내기 위함입니다. 구체적으로, 베트남이라는 이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의 호흡을 서로 느끼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입니다.
우리의 이웃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기사나 글을 통해 접하면서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함께 하도록 하는 것이 저희 잡지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만들어 갑니다.
‘이웃들의 소식’이라는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본지는 우리 이웃들이 살고 있는 이 곳, 현지의 소식 만을 전합니다. 그리고 우리 이웃들의 소식을 전할 때는 우리 이웃의 실명을 그대로 명기합니다.
본지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인터넷에서 떠도는 한국의 소식이나 한국에서 사는 인사들의 글을 적당히 카피하거나 각색하여 전하는 일은 거부합니다. 그런 소식은 여타 다른 미디어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씬짜오베트남>이라는 교민잡지는 이름 그대로 베트남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위한 지역잡지입니다.
그래서 본지는 베트남 현지의 뉴스와, 본지 기자들과 우리 이웃들의 손으로 작성된 현지의 정보만을 게재합니다. 이것이 “이웃을 연결하는 도구가 되자”는 본지의 기본 편집강령이기도 합니다.
이런 본지의 지역화 정책은 우리가 이 책을 만드는데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고 있는 저희 광고주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베트남을 처음 진출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정보를 구할 때, 신규 진출한 기업들이 현지의 협력사를 구할 때, 그들이 필요로 하는 현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지역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적절한 광고는 현지에서 새로운 사업의 연을 맺어주는 결정적 끈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현지 정보가 부족한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자체 정보망을 갖추었을 싶은 대기업들마저 베트남에 진출하여 필요한 협력사를 구할 때 현지정보가 담겨있는 < 씬짜오베트남>의 광고와 기사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술회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역활은 지속적으로 활용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렇게 이국의 땅에서 교민잡지를 만드는 일이 한 사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에는 속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남의 허락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그리고 남들보다는 조금 잘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면에서 이 일도 그리 폄하받을 일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채워봅니다.
이렇게 구구절절한 이유를 들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미를 찾았다면 이제 이 일이 갖는 가치의 효능을 높이기 위하여 사업의 파이를 키워야 할터인데…,
그 나이에 뭔 사업을 또 벌려? 이제 그만하고 쉬지.
요즘 세월이 좋아서 나이가 좀 젊어졌지요. 이렇게 아직도 일할 수 있는 건강을 주신 것에 감사하고 또 더불어 새로운 기회를 주신다면 어찌 거부할 일인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개인의 힘으로 해서는 안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회사 조직이 자연 번식을 하듯이 스스로 새 사업을 만드는 창조의 틀을 만들어 놓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창업주가 사라져도 회사는 남아있겠지요. 그런 미래를 꿈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