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분기별 라운딩의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고 마지막 분기를 넘기고 새해를 맞이 했지만 새해를 기념하는 시타조차 하지못하고 정월을 다 보냈습니다.
그러다 진짜 예기치 않은 라운딩을 만납니다.
어느날, 낯선 전화번호가 뜹니다. 바쁜 시간에는 절대로 낯선 전화번호에 응답을 하지 않는데 그날은 아마도 한가했던 모양입니다. 낯선 전화 저편에서 공손한 목소리로 자신이 경성고교 십여년 후배고, 호찌민 경성동문회 총무라며 인사를 합니다.
순간 당황스런 기분은 든 것은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워낙 학창시절의 생활이 방정하지 못한 탓에 한번도 출신학교를 밝히지 않아, 베트남 생활 20여년 동안 학연으로 인한 만남이 한번도 없었는데 지난 해 캐나다에서 살던, 몇 안되는 가까운 동기 녀석이 수십 년 만에 한국을 찾아오는 바람에 그나마 소식이 닿는 고교 동기들을 만나고 그 만남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 단초가 된 모양입니다. 이제는 감추고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한 장의 사진으로 제 정체가 벗겨졌습니다. 그렇게 옛 인연이 다시 줄을 대어, 고교를 졸업한지 근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보내고 난 후에 호찌민에서 생활하는 고교동문 3명과 트윈도브스 골프장에서 새해 첫 라운드를 나섰습니다.
동반자는 미국의 타겟이라는 유명 쇼핑몰의 베트남 에이전트를 수십년 동안 하면서 베트남 섬유산업을 쥐고 흔들다가 지금은 빈증에서 대규모 봉제 공장을 운영하는 김창수 사장, 이름만 남아있던 월드 옥타 호찌민 지부를 단 일년만에 세계 최우수 지부로 개혁한 손영일 전 옥타회장, 한국 증권 호찌민 지점의 박원상대표 등, 기라성 같은 교민사회 인사들이 알고 보니 제 후배들인 것입니다. 이들과는 호찌민에서 20여년을 같이 지내며 우연히 혹은 공식적인 모임에서 자리도 같이 했지만 개인적인 연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동문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모두가 세삼스럽습니다. 세상에 제일 어렵고 무서운 사람이 집사람입니다.
그 이유를 말할 것도 없이 저를 세상에서 가장 잘 알기 때문입니다. 눈만 봐도 뭔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는 생명학적 타인이 결코 편안하기만 한 것은 아니죠. 이 친구들 마찬가지입니다. 동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지냈을 때는 별 관심도 없었고 특별히 신경을 써야할 이유도 없었죠.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은근히 신경이 쓰입니다. 베트남 생활 막판에 눈치보며 살아야 할 친구들이 새로 생긴 셈입니다. 그러나 결코 부정적인 기분은 아닙니다.
그날 라운드는 물론 즐거웠습니다만 왕년 챔피언의 흔적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된 터라 후배들에게 보여 줄 것이 없어서 민망했습니다. 선배의 입장에서 선배답게 골프에서도 모자라지 않은 스윙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오랫동안 방치한 몸은 바람직한 움직임은 커녕 공 맞히기에 급급했었습니다.
이 라운드를 복기한다면 기본적으로 두가지 면에서 무례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첫째, 무려 6개월 만에 필드에 나서면서도 전혀 준비되지 않은 몸으로 동네 산보 가듯이 나섬으로 골프 자체에 대한 무례를 저질렀고, 둘째, 후배들과 게임을 하면서 선배로 준비한 것이 전혀 없는 라운드를 가짐으로 후배 동반자들에게 민망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 역시 맘에 걸리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골프를 잘 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라운드를 준비함에 있어서 필요한 이런 저런 준비에 전혀 기여한 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보니 저녁식사마저 후배의 대접을 그냥 받기만 했습니다 그려. 나이가 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이나 열라고 했는데 할 말도 다하고 지갑을 여는 것 마저 인색했구나 하는 자책이 몰려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을 열라” 는 격언. 이것에 대한 얘기를 좀 할까요? 이글을 읽은 다른 분들이 저같이 우매한 짓거리를 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다시한번 이 의미를 상기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먼저 입을 다물라는 말, 이 말은 그저 입을 다물라는 말이 아니라, 두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자신보다 어린 사회 후배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배려 정신을 발휘하라는 의미가 첫째고 둘째로는, 말을 하려면 나이에 맞는 올바른 말을 하라는 것이죠. 그냥 별 의미 없는 소리라면 젊은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되니 차라리 듣고 그들의 사고를 배워라 뭐 그런 뜻이 아닌가 혼자 생각을 합니다.
지갑을 열어라 하는 말의 뜻은 어떤가요?
이 말도 그저 돈 좀 써라가 아닐 것입니다. 이 역시, 돈을 바르게 쓰라는 것이라 믿습니다. 사람의 인성을 측정하는 방법 중에 가장 쉬운 것이 바로 돈을 쓰는 품새입니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쓰는가, 남을 배려하기 위해 사용하는가. 그 정도 나이가 들었으면 이제 돈 쓰는 법도 익혔을 만하니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돈 쓰는 방법의 실례를 몸으로 보여줘라, 뭐 이런 뜻이 내포된 것 아닌가요? 후배들을 데리고 술집이나 카지노에 가서 돈을 펑펑써라는 아닐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 올해의 시타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빈증에 있는 [쓰시야]라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같이 했습니다.그 음식점은 베트남 골프계의 선구자 역할을 한 김운영 웅 내외가 운영하는 일식집입니다. 골프장을 다닐 때는 자주 들렸던 곳인데 골프와 거리를 두고나서 몇 년을 찾지못하다가 이번에 오랜만에 찾았습니다. 아주 반갑게 맞아 주시는 김옹의 내외분을 만난 것이 이번 라운드의 또 다른 소득입니다. 제 골프 칼럼의 애독자라고 자청을 하시는 김옹 부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오랜만에 가진 즐거움이었습니다. 어쩌다 골프장을 한번 가보니 이런 이야기 거리가 나오는군요. 좀 자주 골프장을 찾을 필요가 있겠구나 싶습니다.
아, 또 한가지, 진짜 골프 소식을 전할 것이 있습니다.
트윈도브스 골프장에서는 지난해 말 효성 그룹에서 스폰서로 나선 LPGA 개막전을 개최한 이후 이번에는, 한국 증권에서 스폰을 하는 또 다른 LPGA 한국 여자프로 게임을 개최한다고 합니다. 일정은 3월 9일에서 11일까지 입니다.
지난 해 개막전이라고 하긴 했지만, 해가 넘어오기 전에 치뤄진 것이라 개막전이라는 타이틀이 좀 어색했는데 이번 3월에 열리는 대회는 올들어 처음 열리는 대회이니만큼 실질적인 개막전이라고 볼수 있죠. 이번에는 더욱 많은 교민들이 참관하셔서 아무데서나 쉽게 볼 수 없는 우리 한국 낭자들의 멋진 스윙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아마추어 골퍼에게는 남자 프로들의 스윙보다는 여자 프로들의 스윙이 훨씬 참조가 됩니다. 무식하게 강한 남자 프로들을 흉내 내다가 스윙 자체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여성프로의 스윙이 아마추어에게는 좋은 공부가 될 터이니 꼭 참관하셔서 좋은 성과 거두시길 바랍니다.
그러고 보니 베트남이 이제는 여러가지로 한국과 관계를 맺는 듯합니다. 그런데 골프장 좋은 곳은 하노이에 많은데.., 아마도 이렇게 호찌민에서 대회가 두 번씩이나 열리면 하노이에서 가만히 구경만 하겠습니까? 그쪽에 한국의 진출 대기업도 많으니 누가 나서도 나설 것이라 사료됩니다.
올해를 넘기지 않고 하노이에서도 한국의 골프대회가 열릴 것이라는데 막걸리 3병을 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