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인가, 겨울인가
이맘때 한국을 찾으면 늘 비가 기다린다.
계절의 경계를 걸쳐 내리는 비는 어디로 가고 싶을까?
바바리 코트 깃을 세우던 낙엽의 낭만은 사라지고
질척한 겨울비가 한 장 남은 달력을 기어이 뜯어낸다.
내딛고 싶지 않은 나를 닮은 계절.
이 계절의 낮 바뀜은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까?
선한 아내와 철부지 아들애,
언제나 아들의 귀환을 기다리는 노모에게
상냥한 미소로 한 해의 수고를 위로하고 싶었는데.
우울한 겨울비가 그만 일을 그르친다.
대체로 과거는 미화되는 게 통상적인데 연말이 되어 돌아보는 그 해의 과거는 그저 아쉬움만 남긴다. 너무 가파른 시간이라 아직은 과거의 틀에 담기지 않은 탓인가 싶다.
마지막 달력에 덤처럼 매달린 신년의 사진이 다시 고개를 들어 앞을 보라고 재촉한다.
동네 근처 E-마트를 찾았다. 오늘보니 지하 주차장에 어르신을 위한 주차자리가 따로 마련되어있다. 오호 제법인데, 그런데 저 자리에 차를 대는 어르신을 어떻게 구별을 할까? 세월의 흔적이 남긴 엉성한 치아로 구분을 할까?
어르신이라는 말은 그럴 듯하지만, 아제 개그를 하자면, 그저 어른신발 정도로 취급 받는 것이 요즘의 일반적 분위기인데 이렇게 따로 주차자리까지 마련하며 우대를 하다니 참 고마운 일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세대갈등이 심하고 또 최근에는 청년실업과 서로 물리면서 그 골이 더욱 깊어 가는 마당에 말이다. 못된 정치꾼들이 청년실업이 마치 기성세대의 탓인 양 호도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그 얘기 좀 하자. 마치 기성세대 때문에 자신들의 삶이 각박하다고 생각하는 듯한 다음 세대에게 말 좀 해보자. 해가 넘어가기 전에 할 소리 하고 묵은 감정을 털어내자는 거다. 그리고 상큼한 새해를 함께 맞이 해보자.
아들아, (아들 세대에게 얘기하는 것이니 내 아들을 대상으로 하자) 이 아비는 어려서부터 갖고 있는 헛된 소망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키가 한 5센치만 더 컸으면 하는 것이었지. 우리 집 가족이 키가 작은 편은 아닌데 유독 나와 삼촌 2명이 작지. 왜 일까? 유감스럽게도 전쟁 전후에 태어나서 가장 궁핍한 시절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 그래. 제대로 먹을 것이 없었을 거야. 하긴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인데 과분한 소망을 품은 게지. 그때는 그저 죽지 않고 사는 게 모두의 목표였지. 그래도 이만큼 큰 것은 너희 할머니가 전쟁 중에도 악착스럽게 거친 일 마다 않으며 열식구를 먹여 살린 덕분이다. 우리 집안의 영웅이고 삶의 스승이다,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아직도 건강하시니 너무나 고마운 일이지. 암튼, 그런 환경 덕분에 작은 키가 고착이 되고 그렇게 생긴 키에 대한 콤플렉스 탓인지 네가 태어난 후 나를 대신해서 너는 정말 크기를 바랬지. 그리고 다행하게도 네 키는 180이 훌쩍 넘어, 또 고마운 일이야.
바로, 그런 키 차이가 우리 세대와 너희 세대를 가르는 증표인 듯 싶다.
너도 능히 짐작하겠지만 아비 세대는 태어나면서부터 위세대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라고는 가난과 빈곤 그리고 폐허가 된 국토가 전부였어. 물론 덤으로 사막의 선인장 같은 강인한 생명력을 물려 받았지. 그냥 앉아서 죽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서 태어난 너희들에게 니 아비 세대는 어떤 세상을 넘겨주려 하니? 지금과 그때는 비교자체가 불가능한 형국이니 구체적인 수치는 접자. 그냥 한가지, 이미 180이 훌쩍 넘는 네 큰 키에 우리가 너희에게 넘기려는 세상이 상징적으로 담겨있다고 봐도 되는 것 아닌가? 모든 것을 다 접어두고 그것만 봐도 너희는 무지막지한 행운아야.
이 아비는 너희들이 참 부럽다.
물질적으로도 그렇고, 자기의사를 표현하는 것에서도 그렇고, 하고 싶은 것을 실현하는 환경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그런 너희들이 사회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으면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 지 참 난감할 뿐이다. 물론 요즘은 직업을 구하는 게 힘들긴 하다고 하지만 그것이 과연 사회 탓일까?
내가 이해를 못하는 걸까?
네 할머니는 학교 근처도 안 갔지만 아무 것도 없는 폐허 속에서 열식구를 거뜬하게 먹여 살리셨어. 그에 비해 너를 봐. 네가 가진 것을 봐. 단지 젊다는 무기만이 아니야.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으며 공부하고 배웠는지. 사실 너희는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장 풍요롭고 가장 사랑 받고, 가장 많은 공부를 한, 그야말로 천상의 축복을 누리며 자란 유일한 세대야.
그러니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셈이지. 이제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불평이 아니라, 단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 뿐이야.
이성적으로 믿고 감정적으로 그 믿음을 즐기면 돼. 그러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져.
먼저 이 말을 믿어. 그러면 네 인생은 네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져. 이루어지지 않으면 네가 믿지 못했기 때문이야.
어떤 경우든지 불평은 안돼!
불평을 하면 안 되는 이유는 수 만 가지가 되겠지만, 가장 큰 이유를 하나만 들라면 불평 속에는 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야. 꿈은 희망과 긍정 안에 존재하지, 불평 불만에는 절망과 부정, 포기만이 가득 차 있지 않니?
불평 속에는 꿈도 계획도 존재하지 않아.
스스로 잘 된다고 믿고 네가 계획하고 꿈 꾼대로 첫 계단을 올라봐. THAT’S ALL. 그게 전부야.
곧 새해가 다가온다. 새해는 네가 꿈꾸었던 일을 행동으로 실천하기를 기대한다.
참, 그리고 말야,
올 연말에는 네 부모에게 올 한 해 또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위로 한마디 해주면 어떨까?
네 아버지 세대 사람들은 감정이 메마른 사람들이야. 감정을 보살필 여유가 없었어.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에게도 그 흔한 사랑한다는 소리 한 번 못하고 살아왔어. 이제는 너희가 봐줘야지. 앞으로 오래도록 부모의 노후를 돌보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그 동안 조건 없이 베풀어 준 부모의 노고를 이해하는 듯한 폼 한 번 잡아보는 것은 어떠냐는 말이지, 가정과 사회의 평화를 위하여 말이야.
고마워. 긴 얘기를 참고 들어줘서.
새해에는 너에게서 더욱 다양한 좌충우돌 스토리가 나오길 기대하는 아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