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선뜻 가을인 모양입니다.
최고의 골프 환경으로 개인적으로 한국의 가을을 꼽습니다. 삼라만상이 형형색색의 낙엽의 옷을 갈아입으며 차가운 겨울을 준비하는 바쁜 계절, 가을의 산하에서 내뿜는 샷은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요즘은 이름이 바뀌었을 듯한데, 30년 전에는 <양지>라는 이름의 골프장이 서울 근교 산악지대에 있었는데, 파 3, 15번 홀에서의 티샷은 좀처럼 잊을 수가 없군요. 높은 산 중턱에 설치된 티 그라운드, 그곳에서 깊은 계곡아래, 검붉은 낙엽 속으로 샷을 날리곤 했죠. 그래서 찬바람이 조금씩 불며 낙엽 탄 내음이 살포시 올라오기 시작하면 그 골프장으로 달려가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합니다. 죽기 전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골프의 기원을 한 번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죠.
골프의 기원에 대하여는 몇 가지 가설이 등장하는 데 그 중 한 가지는, 스코틀랜드 지방의 양치기 목동들이 끝이 구부러진 나뭇가지로 작은 돌을 날리는 민속놀이가 구기로 발전했다는 설과 기원전 네델란드에서 어린이들이 실내에서 즐겨하던 콜프(KOLF) 라는 경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기원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그렇게 시작한 골프는 14세기경부터 게임의 형태로 나타나 스코틀랜드에서는 국민적 인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당시 정부에서는 골프라는 게임이 국민들의 신앙생활에 방해가 될 정도로 성장하자 칙령으로 골프 자체를 금지하거나, 혹은 안식일에는 플레이를 못하게 하는 등 골프 관리에 관여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당시의 골프 인기가 지금에 못지 않았나 봅니다. 16세기에 들어서는 왕족을 포함한 귀족 계급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까지 합류하여 즐기는 국민 스포츠로 각광받으며 잉글랜드까지 진출하게 되죠.
세계 1차 대전이 끝나자 영국의 국력이 약화되어 골프도 역시 침체기를 맞이 하는데 이때 등장한 팀이 바로 미국 골퍼들입니다. 심판이 없는 젠틀멘 게임으로 알려진 골프, 그래서 오직 영국인들 만이 즐길 만한 게임이라는 지부심이 강하던 골프가 정치적 상황으로 시들해 지자 이제 영국의 또 다른 식민지였던 미국이 영국 대신 팔을 걷고 나선 것입니다.
그 시기에 지금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기라성 같은 골퍼들이 등장합니다. 주로 1900년 이후 태어난 골프계의 영웅들입니다. 바비 존스를 비롯하여 벤 호건, 게리 플레이어, 샘 스니드 아놀드 팔머, 그리고 잭 니콜라스 등이 등장하며 골프계의 황금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특히 벤호컨, 샘스니드 그리고 바이런 넬슨이라는 동년배 삼두마차의 등장은 골프라는 운동을 대중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골프라는 마차를 지금의 위치로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3두 마차의 인물을 한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바이런 넬슨, 그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막내로 골프를 신앙 생활을 위한 생활기반을 마련하는데 활용합니다. 그는 1945년 한 해에 18번의 토너먼트를 우승하고 그 중에 11번을 계속해서 우승하는 전무후무의 기록을 달성합니다. 골프라는 불가측의 게임 특성상 11번을 줄지어 우승하는 경우가 생겼다는 것은 진짜 경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이런 넬슨이 당시 그렇게 독주를 하게 된 원인에는 2차 대전으로 벤 호건 등, 다른 선수들은 징집을 당하는데 혈우병 환자였던 바이런 넬슨은 징집을 면제 받은 덕분에 다른 선수들보다 유리한 환경에서 리그를 이끌었다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골프라는 게임에서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고 또 앞으로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기록을 만들어 낸 바이런 넬슨은 골프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기억될 위대한 선수로 남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넬슨은 자신은 한번도 공을 함부로 친 적이 없었다고 술회합니다. 즉, 한타 한타를 최후의 스윙으로 간주하며 게임을 했다고 합니다.
좀 아쉬운 것은 그것으로 그는 은퇴를 합니다. 농장을 살만큼 충분한 자금을 모으자 그는 다음 해에 망설임없이 은퇴를 합니다. 안정된 생활을 바탕으로 선교활동을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그가 계속 게임을 했다면 과연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요? 또 궁금한 일입니다. 그는 은퇴 다음 해에 마스터스를 세운 바비 존스의 초대로 마스터스에 출전을 합니다. 몇 달 동안 골프채를 잡지도 않았던 그는 그 대회에서 준우승을 합니다. 그만큼 그의 스윙은 간단 명료하여 몇 번의 연습스윙으로 다시 감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설명을 듣고 보니 바이런 넬슨의 11회 연속 우승이 조금 이해됩니다.
3두 마차 중 가장 대중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사람은 벤호건 입니다. 교통사고로 거의 목숨을 던지고 나온 사나이는 그 사고를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고 다시 필드에서 최고의 스윙을 구가합니다. 지금까지 골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연습으로 보낸 사나이입니다. 그는 샘 스니드의 재능을 부러워했지요. 그는 샘 스니드가 대충 연습을 하면서도 필드를 장악하는 것을 보며 “그가 조금이라도 골프에 대하여 생각을 한다면 골프의 모든 기록 위에 그의 이름을 써 놓을 수 있을 텐데”하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골프 외에서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함께 치는 플레이어가 홀인원을 했는데도 제대로 인지 못하고, 그 그린에서 버디 퍼팅을 넣고 나오면서 상대에게 “자네는 이번 홀 뭘 했지? 나는 오랜만에 이 홀에서 버디를 했네 그려”하며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니 참 재미없는 양반입니다. 그의 무뚝뚝한 성격은 대중과의 거리를 두게 만듭니다.
이 둘 외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샘 스니드 입니다. 샘 스니드, 밀짚 모자를 항상 쓰고 다니던 천상의 골퍼였습니다. 1912년 생으로 5월 27일 생인 그는 무려 82회의 PGA투어에서 우승을 합니다. 최고령 우승은 52세에 이룹니다. 그리고 그는 67세에 67타 에이지 슛을 기록한 선수입니다. 그 것뿐 일까요? 전 세계적으로 그는 140회 이상의 우승을 기록합니다. 즉, 그는 최다승 우승에 최고령 우승, 그리고 최고령 에이지 슛까지 기록하고 있는 명실공이 금세기 최고의 골퍼임이 확실합니다. 그는 그의 나이 90세를 이틀 앞두고 파란만장한 골프 생을 접고 영면합니다.
그를 금세기 최고의 골퍼로 치는 이유는 개인적인 선호가 작용을 하긴 했지만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그의 부드러운 스윙입니다. 그의 스윙은 마치 발레를 연상케 합니다. 그렇게 부드러운 스윙에서 나오는 샷은 가공할 정도로 멀리 나갑니다.
그는 재능이 너무 많아 연습을 별로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벤 호건이 전성기에서 밀려난 후에도 그는 계속 우승을 하며 골프계를 장악합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유 분망한 성격을 갖고 태어난 최고 재능의 골퍼였습니다. 그의 스윙을 한번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다시 잊었던 스윙을 찾아 낼 수 있으리라 믿을 정도로 완벽한 스윙을 갖고 있는데 코치도 없이 스스로 터득한 스윙이라고 합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한번 인터넷을 뒤져 그의 스윙을 찾아보시죠. 잊었던 스윙이 다시 살아날 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