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일요일에 만난 음악

홀로 사는 베트남 생활에서 느끼는 행복 중에 하나는 자신의 행동에 관하여 그 누구에게도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긴 보고를 하고 허락을 받고 싶어도 그럴 사람이 없으니 어쩌면 종속적인 삶에 익숙하신 분들은 오히려 불안해 질 수도 있는 요소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숙소의 침실 창문으로 보이는 붉은 석양의 노을을 보며 문득 가족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가?
일요일 아침 서둘러 교회를 다녀오고 숙소로 돌아와 주변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교회에서의 식사는 묘하게 즐거움보다는 부담이 앞 선다. 교회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내가 차지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오랫동안 익숙한 혼밥의 즐거움을 놓치기 싫다는 궤변이 일기도 하고 또, 최근 들어 불청객처럼 찾아온 고혈압 증상이 깊어지면서 식탁을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기도 하다. 웃기는 일이다, 그런 행동 하나에 붙는 이유를 찾아도 수십 가지는 충분히 만들어 낼 것 같으니 말이다) 버릇처럼 컴퓨터를 켜고 이런 저런 사이트를 뒤지다 며칠 전에 그저 스치는 지나쳤던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고별 연설을 뒤늦게 꼼꼼히 챙겨보았다.
미국은 단순히 방문횟수로 따진다면 매우 익숙한 곳이지만 쉽게 정이 드는 곳이 아니다. 뭔가 모를 이질감이 피부를 근질대게 만드는 곳이다. 감당하기 힘든 넓은 국토와 그에 상응하는 다양한 민족, 그리고 공연히 반항하고 싶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경찰들, 이런 저런 이유로 그곳에 살고 있는 형의 강력한 권유에도 아들애를 그곳으로 유학 보내는 것조차 반대하고 유럽 행을 고집했을 정도로 결코 반갑지 않은 나라였는데 오바마의 고별 연설을 보고 처음으로 미국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멋진 대통령을 가진 나라를 어찌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버락 후세인 오바마 2세(Barack Hussein Obama II),
케냐에서 온 소년.
그는 멋지다는 표현으로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인물이다. 지난 번 베트남을 들렸을 때 보여 주었던 그의 행보에서도 맛이 갈 정도로 그에게 빠졌지만 이번에 그의 고별 연설은 정점을 찍고 말았다. 이런, 게다가 그는 아직도 젊고 또, 잘 생기기까지 하지 아니한가? 어쩌자고 신은 이런 특별한 인물을 창조하시었나.
그는 임기 8년 동안 정치인으로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의 아내 미쉘 오바마의 역할이 그를 더욱 빛나게

했지만, 그는 가족과 함께 정치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이웃으로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완벽한 전형을 전 세계인에게 보여주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가급적이면 정치에 관심을 끊자고 스스로를 독려하며 사는 터라, 오바마의 정치적 업적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단지 그가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이고 최고의 연설 능력을 지닌 젊은 정치인, 그래서 블랙 케네디로 불린다는 정도 만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 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 인간에게 그런 관심은 사치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외면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니컬한 인간조차 왜 오바마에게 열광할 수 밖에 없는 가에 대한 이유를 그는 고별 연설에서 스스로 밝혔다. 그의 정치적 신념과 인간적 매력이 더욱 빛나는 멋진 연설이었다. 그의 연설을 잠시 들어보자.
그는 자신의 고향 시카고로 돌아와 이웃들 앞에 모습을 나타났다. 연설을 시작하기 전, 끝없이 환호하는 관객의 박수에 입을 열기 힘들자, 네임 덕을 확인한다는 특유의 유머로 연설을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이룩한 업적, 의료보험, 쿠바와의 수교, 테러분자들 과의 싸움 등을 겸손하게 나열하며 이런 성과를 이끈 것은 모두 국민 바로 당신이었다고 강조한다. 국민이 변화를 만들었고 자신을 좀더 나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술회한다.
민주주의는 경제적 기회의 공정성을 수반해야 한다는 대목은 부의 불균형으로 중병을 앓고 있는 자본주의의 기본 전제 조건을 제시하는 듯 하였다.
그는 미국의 우월한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4년 더” 를 외치는 고향의 이웃들에게 (비록 차기 대통령이 맘에는 안 들지만) 그가 뽑힌 것이 바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청중을 다독인다. 그는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길인가를 민주주의가 위협받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언급하며 청중들의 마음을 일깨운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화합을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240년 동안 미국이 지키고자 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며 그들의 조상이 그러하였듯이 앞으로도 여전히 그 힘든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국민에서 주문했다.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을 때는 외부의 요소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신념과 믿음이 약화될 때라는 말에는, 세상의 모든 일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그의 인생 철학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 했다.
미국의 신문은 그의 연설을 민주주의의 헌사라고 칭송했다.
그가 그의 아내, 미쉘 오바마를 부르며 고마움을 표할 때, 눈물을 닦은 이는 단지 감사를 전하는 남편 오바마 만은 아니었다. 듣는 이 모두에게 공감을 일으킨 진솔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는 인간으로서 그녀를 존경한다는 표현으로 그녀의 처녀 때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줬다.

미쉘 라번 라빈슨(Michelle LaVaughn Robinson),
남쪽에서 온 소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는 김춘수님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자신을 만난 25년 동안 그녀가 스스로 원하지 않았지만 주어진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 아내와, 어린 나이에도 대통령의 가족으로서 받는 스폿라이트의 부담을 잘 견디어 낸 자신의 두 딸을 자랑스러워 하는 그는, 진정 사랑스런 남편이고 따뜻한 아빠다.
Yes, We Can. Yes, We Did. Yes, We Can!
이 구호를 마지막으로 연단을 물러서 가족과 포옹을 하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에, 그토록 사랑한 그의 조국을 그린 음악, 블루스 스프링 스톤의 Land of Hope and Dreams 깔리며 온 시민은 사랑이 담긴 환호로 그의 시카고 귀향을 따뜻하게 맞이 해줬다.
너무 멋진 것 아닌가? 영화의 앤딩 장면을 보는 듯 했다.
며칠 후면 취임할 미국의 차기 대통령과 극단의 비교가 되어 더욱 그의 퇴장이 아쉬운 지 모른다,며칠 후면 설 명절을 보내기 위해 돌아가야 할 한국의 정치 상황이 더욱 아찔하여 오바마가 위대해 보일 수도 있다.
아무려면 어떠하랴, 그저 우리도 언젠가 한번은 그렇게 국민의 마음을 울리며 퇴임하는 멋진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희망을 품는다면, 지나친 과욕이라고 비웃을까?
그래도 가져보자,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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