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회관의 秘史
요즘 한국의 상황을 보면서 과연 정치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정치란 모든 국민이 자신의 직분에 합당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아비는 아비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선생은 선생답게, 학생은 학생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이런 막중한 일을 하는 것이 정치인데, 한국은 정치판에 자신의 모두를 다 바쳐서 정치 외에는 할 것이 없는 막다른 인간들이 이 키를 잡고 있으니 나라가 이 모양으로 뒷걸음을 하고 있는게다.
교민사회에도 정치와 닮은 것이 있기는 하다. 정치에 올인 하는 점이 닮은 게 아니라 대중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한인회도 정치조직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호찌민 한인회는 실질적으로 호찌민 12여 만 명의 교민을 대표하기에는 너무 왜소한 조직으로 움직인 탓에 좀 어정쩡한 상태로 정확히 20년을 흘러 왔다. 보통 상황이라면 한인회 창립 20주년 파티라도 성대하게 치러야 할 판인데 요즘 한인회는 바빠서 그런 정신이 없다. 최근에는 한인회관 내에서 폭력 사건마저 일어났다. 결국 총영사관에 의해 한인회 사무실이 패쇄되고 말았다. 이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그 한인회관은 과연 무엇인데 그리 난리인가? 아마도 한인회관을 차지한 사람이 한인회의 정통성을 이어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문제의 한인회관은 베트남전 당시 한인들이 자금을 모으고 한국군 공병이 인력을 제공하여 건설한 한국의 재산이다. 일단 민간인의 재산이긴 하지만 당시 월남 정부에서 민간단체의 재산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편의상 주 호찌민 대한민국 공관(당시 대사관) 소속으로 등록할 수 밖에 없었다. 종전 후 당연히 베트남 정부에 흡수되었다가 국교가 수립된 이후 다시 돌려 받아 총영사관 별관으로 등록을 했다. 그러나 반환 받은 후 총영사관에서는 이 건물을 교민에게 돌려 주지 않고, 한국의 외국어대학교에 20년 동안 무상으로 임대를 하는 바람에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총 영사관에서 이 건물의 숨은 역사에 대한 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자신들이 맘대로 활용할 수 있는 별관인 양 활용했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근거로 나라 재산을 특정 단체에 20년 동안 무상으로 임대를 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당시 안기부장이 외대 출신이라 그런 일이 가능했다는 소문이 흘렀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 당시 총영사인 허방빈씨가 호찌민에 있다고 해서 수소문을 하고 있는데 아직 만나지 못했다.
어쨌거나 당시 영사관 부속 건물로만 알고 있던 별관이 실제로는 한인들이 자금을 모아 지은 한인회관이라는 사실은 당시 안기부 소속 박창택 영사의 도움으로 그 자료가 공개 되면서 밝혀졌다. 그에 따라 교민들이 한인회관의 당연 사용권을 주장하게 되었고 결국 총 영사관은 이에 응하여 한인회가 건물의 일부를 양도받아 사용하고 있는데 여전히 이 회관의 소유권은 대한민국 정부로 되어있다. 그 운영 역시 총영사관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터라 한인들이 자발적으로 회관 운영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마도 호찌민 한인회장의 최우선 과제를 꼽는다면 제일 먼저 국가에 행정소송을 내서라도 이 건물부터 교민의 소유로 돌려주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일을 추진한다는 소문도 들리지 않는다.
한인회관의 역사 중에 한인회 사무실의 패쇄를 거론된 적이 또 한번 있다. 제 5대 장기호 한인회장 시절이다. 장기호 회장은 무슨 생각인지 서울에 호찌민 한인회 지사를 세웠는데 그게 문제가 된 것이다. 그 당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김지영 총영사는 그런 장 회장의 서울 사무소 개설을 사익을 위한 사업으로 보았다. 거기에 더불어 한인회 잡지를 만들면서 그 소위권에 대한 분쟁으로 찌라시가 교민사회를 돌며 각종 소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자, 한인회의 상임고문으로 지정된 총영사가 그 상임고문 자리를 전격적으로 사퇴하며 한인회장을 불신임을 선언해다. 한인회와 총영사관의 정면 충돌이다. 김 총영사는 한인회장을 인정할 수 없으니 한인회관에서 나가라고 통고를 했다. 그러나 장회장이 불응하자 며칠 후 수도 공급을 끊고 그래도 나가지 않자, 전기 공급마저 차단을 하겠다고 통고를 하자 결국 장기호 회장은 자진사퇴를 하고 회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호찌민 한인회의 회장 중도 사퇴 역사의 서막을 열었다. 그 후 마땅히 회장을 하겠다는 인사가 나타나지 않자 당시원로회원을 중심으로 베트남에 온지 2년 밖에 안 되는, 공군 사관학교를 중퇴한 허종씨를 추천하여 회장에 세웠는데 태생부터 베트남 거주 5년 이상의 회장 자격 조건을 채우지 못한 결함을 안고 출발한 인사라 그런지, 임기 내내 잡음이 그치지 않았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코참과 한인회의 통합을 전격 선언하기도 하고, 자신의 행실에 대한 비판을 가한 언론 사주를 교민들이 모인 공관의 행사장에서 “네가 조선일보냐” 하며 물리적인 공격을 가하는 등 천방지축의 행동으로 교민들의 빈축을 자초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 방문 당시 엄청 큰 목소리에 건배 제의를 하며 노통이 놀라게 만들기도 하고, 또 골프장의 샤워실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어른을 구타하려다가 교민의 손에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 나오는 등, 끊임없는 돌출 행동으로 교민사회의 해프닝을 양산한 인물이었다. 덕분에 교민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한 회장이기도 했다.
필자에게는 한인회관이라는 건물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이지 않다. 아마도 가깝게 다가서면 직업상 그냥 물러갈 수 없는 전투력을 만들어 내는 곳이라 그런지, 아니면 뭔가 뒤져 볼 것이 많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제 개인적 느낌이 그렇다는 거지 실상은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건물을 새롭게 들여다 보기로 했다.
현재 그 건물에는 맨 위층부터 한국 문화원이 자리잡고 있다. 초대 한지숙 원장이 귀국을 한 후, 현재 김태형 원장이 운영하고 있다. 그 아래 층에는 코참과 국가유공자 월남전참전자회 베트남해외회 라는 긴 이름의 단체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2층은 강당으로 현재 사이드 건물에 입주해있는 아세프라는 단체에서 교육실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일층은 한인회가 자리하고 있는데 현재 한인회의 현 상황을 나타내듯이 무거운 자물쇠가 굳게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언제 다시 한인회관이 활기를 찾아 교민들이 수시로 찾아가는 진정한 한인회관으로 그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