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시대는 불행하다. 그러나 영웅이 사라진 시대 또한 불운하다.
우리 시대의 마지막 영웅이 삶을 정리했다.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자 전 아프리카 국민회의 의장이자 흑백 인종 차별에 신음하는 남아공화국의 모든 흑인에게 자유를 찾아준 넬슨 만델라가 지난 12월 5일 95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그의 존재는 우리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넬슨 만델라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인종 차별 정책을 유지하며 흑인들에게 마지막 지옥으로 남아있던 남아공화국에서 1918년 템부족의 족장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으로 현 시대에 들어 가장 비극적이고 희생적인 마지막 영웅으로 가야 할 운명을 시작한다.
그는 결코 두려움을 모르는 타고난 영웅이 아니다. 그의 행실을 보면 그는 그렇게 명석하지도 않고 죽음 앞에 초연한 의지도 지니지 않은 그저 평범하고 꼼꼼한 인성을 지닌 흑인이었다. 단지 일반 흑인과 달리 특정 부족의 족장의 가족으로 궁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백인과 같은 교육을 받는 호사를 누리고 자라면서 자신과 자신들의 동족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자유조차 누리지 못함을 새삼 깨닫고 법률을 공부하여 남아공에서는 흑인 최초의 법률사무실을 개설하고, 자유의 결핍뿐만 아니라 빈곤과 기아마저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동족과 흑인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것을 찾는 흑인 변호사였다.
나는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임을 배웠다, 나는 내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수없이 많은 두려움을 느꼈으나 용기라는 가면 속에 두려움을 감췄다. 용감한 사람이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정복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그는 두려움의 공포를 애써 감춰야 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실제로 그가 처음으로 체포된 것은 백인 전용 화장실에 실수로 들어간 것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청년 조직을 결성하여 본격적인 저항운동을 시작한다.
그는 나이 45세에 내란 음모 혐의로 투옥되어 27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72세가 된 1990년 감옥에서 나온다. 그는 삶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냈지만 그 옥중의 시기에 그는 세계적인 인권상을 수상하며 흑인 인권에 대한 상징적인 인물로 떠오른다.
인생의 말년에 들어선 72세의 나이에 영하의 몸에서 풀려난 만델라는 용서와 화해를 몸으로 실천하며 인류의 위대한 영웅으로 거듭난다.
그는 1993년 흑인 인권탄압의 상징적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 분리 정책)을 철폐하고 350년간에 걸친 인종분규를 종식 시킨 공로로 당시 그와 협상을 벌여 정책의 철폐를 받아들였던 프레데리크 데클레이크(Frederik Willem de Klerk) 남아공 대통령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다음 해 남아공 최초로 흑인에게 주어진 1인 1투표 자유투표에 의해 62%의 지지를 얻어 남아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대통령 출마는 그의 뜻이 아니라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뜻이었다.
만델라를 대통령으로 뽑은 남아공화국은 폭풍의 전야와 같았다. 350년을 핍박 받던 흑인이 권력을 잡았으니 그 복수의 칼이 어디로 갈 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만델라와 아프리카 민족회의는 달랐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구성해서 과거의 인권침해 범죄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그들은 사면했다. “용서한다. 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만델라는 용서함으로 진정한 자유를 찾았고, 화해함으로 자신이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
사면을 받은 한 백인은 “흑인들이 나를 천만번 용서하고,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이 천만번 나를 용서한다 해도 나는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지옥 같은 기억이 나의 머리 속 양심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절규하며 지옥 같은 기억으로 가득 찬 자신의 머리를 폭파시켜 달라고 애원했다.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 정책)아래 백인들이 저지른 만행은 실행자 자신마저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저주스런 기억으로 남을 정도로 잔혹한 것이었다.
5년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만델라는 여전히 흑인의 인권을 상징하는 인물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지내다, 22명의 손자 손녀의 품에서 세계인의 애도 속에서 장엄한 생을 마감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인종차별의 관습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차별이 심한 남아 공화국에서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 믿기지 않는 변화의 중심에 그가 우뚝 서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이토록 위대한 영웅을 필요로 하는 불행한 세상, 시인이자 소설가인 원재훈님은 자신이 쓴 인물 세계사 넬슨 만델라에서 ‘그래도 우리는 불굴의 의지로 고난과 좌절을 이기고 삶과 이상을 일치시킨 참다운 영웅의 궤적과, 진정한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승리를 동시에 목격한 행복한 증인’이라고 역설적 위로를 한다.
영웅의 발언 중에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직도 격변의 잡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한국민을 위해 기억할 만한 한가지를 뽑았다.
남아프리카의 경험이 전 세계에 던지는 의미가 있다면, 그 의미란 다름 아닌, 선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의 선을 위해, 차이를 넘어 함께 모인 곳에서는, 손댈 수 없을 것만 같던 문제조차 평화롭고 정의로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것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