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보리에게 쓰는 편지

우리 순둥이 보리야~ 안녕? 나는 너의 겁쟁이 주인이란다. 개들은 주인 성격을 닮는다는 말이 있던데 그래서 너도 나처럼 겁이 많은가보다. 누군가 큰 짐을 들고 지나가도, 산책을 하다가 검은 비닐봉지가 바람에 굴러다녀도,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그림자만 보아도 뒤로 펄쩍 뛰고, 자전거가 옆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꼬리가 내려가며 내 뒤로 숨어버리는 세상 모든 것이 무서운 너. 니가 착하고 순해서 그렇지만 아마도 어릴 적 누군가 혹시라도 너를 훔쳐 갈까 봐 너무 겁이 난 나머지 조심스럽게만 키운 내 탓도 있을 거야.

보리야. 언니도 어렸을 적에는 겁이 진짜 많았어. 초딩 시절에 ‘난 커서 화가가 될꺼야!’하고 결심했다가 후다닥 급하게 꿈을 접었던 기억이 나. 그 당시에 언니 또래들 사이에 유행하던 미니북이 있었어. 문방구에서 팔았던 책인데, 손바닥만해서 손에 쏙 들어가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는 책이였어. 가장 인상적이여서 아직까지 기억나는 내용은 매일 밤마다 어느 학교에 걸린 ‘모나리자’ 그림이
있는데 자정이 되면 그림 속의 머리카락이 매일 자라난다는 그런 내용이였어. 지금 생각하면 정말 유치하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만 그 때는 읽고선 ‘너무 무섭다. 그림 그리는 것은 무서워. 화가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지’하고 굳은 결심을 했었어. 그래서 그 날 집에 오자마자 전시회를 갔다가 구입했던 ‘모나리자’그림이 인쇄되어 있는 기념 엽서를 꺼내서 어떤 상자의 맨 아래에 쳐박아버렸어. 사실 너무 버리고 싶었지만 버리면 왠지 더 무서운 일이 생길까봐 용기를 쥐어 짜내서 겨우 그림이 보이는 면을 아래로 향하게 뒤집고서는 그 상자는 두고두고 손도 대지 않았지.
나의 옛날 이야기가 지루했구나. 보리가 잠이 들어 버렸네. 열심히 앞다리 뒷다리를 휘젓고 있는 걸 보니, 너 꿈속에서 달리고 있구나? 이젠 잠꼬대까지 하네! ‘끙끙’거리는 걸 보니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아. 널 깨워야겠어 “보리야. 괜찮아. 이젠 괜찮단다.” 무슨 꿈을 꿨길래 니가 그렇게 끙끙거리며 힘들어했을까? 혹시 오늘의 주인공 화가의 그림을 본 건 아니지? 자 소개해줄께. 마치 꿈 속에 있는 듯한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그림을 그린 화가, 오딜롱 르동이야. 사실 이 화가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생각했던 건 2년 전인데, 이 화가의 그림은 홀로 깨어있는 밤에는 외눈박이 괴물들이 등장하는 화집을 차마 펼칠 수가 없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은 보리가 옆에 있어줘서 용기를 내어 쓰고있어.

무섭고 묘하게만 느껴졌던 오딜롱 르동의 그림들을 다시 보니, 마치 판타지 소설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해. 특히, 그는 인상주의의 시대를 살았음에도, 인상주의자들에 휩쓸리기보단 혁신적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고독, 불안, 공포가 담긴 악몽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아름답고 환상적인 꿈의 세계를 그렸어. 그래서인지 외눈박이 괴물이 무섭게 느껴지다가도 외로워보여서 연민이 느껴지기도 해.
보리야. 너와 산책하다보면 가끔 고개를 갸우뚱하고 궁금해질 때가 있었어. 여기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차도에서 인도로 쉽게 올리려고 놔둔 철제받침대를 니가 너무 무서워했었잖아. 그위를 건너뛰거나 지나가지도 못하고 벌벌 떨기만하고. 그럴 때 ‘나한테 오기 전에 철과 관련된 안좋은 기억이 있나보다.’하고 추측밖에 할수 없어서 너무 답답하고 속상해하곤했었지.

오딜롱 르동의 그림이 어둡고 우울하면서도 왠지 감싸안아주고 싶은 나약함이 느껴지는 것은
그의 유년 시절에서 겪은 고독감과 소외감과 관계가 있단다.

“나는 당시 우리 토지를 관리하던 늙은 외삼촌 집에 맡겨졌습니다. 눈동자가 푸른 외삼촌의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은 내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의식의 먼 상태를 가능한 되살리고, 또한 살아남은 의식의 변화에 의해서, 이러한 추억을 더듬어 보면 그 무렵의 슬프고 허약했던 내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 나는 어둠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커다란 커튼 뒤라든지 집안의 어두운 구석 등에 남몰래 숨어, 그로부터 묘한 기쁨을 맛보곤 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밖에 나가 들판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얼마나 멋지고 매혹적이었는지! 그곳에 누워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훨씬 후에 입니다. 다만- 몇 살 때 일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또한 말할 용기도 나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나를 모자라는 인간으로 취급할 테니까요. 나는 몇 시간이나 아니 하루 종일 사람이 없는 들판에 누워 순간순간 변하는 요정과 같은 눈부신 형상에 무한한 즐거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나는 어떠한 육체적인 노력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다만 나 자신 속에서만 살고 있었습니다.” – < 오딜롱 르동>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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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병약하고 수줍음 많고 내성적이던 르동은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어. 후대에는 19세기 낭만주의와 20세기 초현실주의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킨 화가라고 칭송받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혁신적이면서도 주류인 인상주의를 역행했기에 종종 잘못된 평가나 혹평들과 투쟁하느라 더욱 고독해하곤 했어.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문학가들이 그의 편이 되어서 그를 옹호하곤 했어. 르동 역시 어린 시절부터 함께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음악, 시, 문학,
철학을 그림 위에 상징적으로 표현해냈단다.

보리야. 네가 옆에서 날 지켜준 덕분에 한밤중에도 ‘오딜롱 르동’의 그림을 보며 글을 쓸 수 있었어. 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림이 아닌 몽환적인 그림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책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져서 내가 보고 있는 동안 그림이 움직일까봐 너무 쫄곤했었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작업실 책꽂이 사이사이에는 학창 시절의 미술실보다 더
많은 석고상들이 뒤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고, 저기 왼쪽 창문 앞에는 한 학생이 설치해놓은 ‘기사’ 형태의 조각 작품의 팔이 자꾸만 바닥으로 떨어지고, 저 멀리 창고 앞에는 의상 디자인을 위한 마네킹도 세워져 있고, 화실 문 앞 받침대에는 한 학생의 작업 중인 기괴한 초상화가 담긴 캔버스가 놓여있고, 저기 구석에는 전신 거울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보리, 네가 옆에 있어서 참 다행이다.
지금 떠오르는 한가지 바람은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보리 너는 화실 개 3년, 아니 4년이니까 그림 좀 그려보지 않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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