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개 두 마리
우리 회사 바로 옆집에는 개 두 마리가 산다. 항상 밖에 묶여 있기에 키우는 것인지 그냥 크도록 두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대문을 열어 놓고 재봉 질만 하는 할머니라 부르기가 애매한 늙은 아주머니가 가끔 호스로 물도 뿌려 주고, 목욕도 시켜주기에 방치는 아닌듯하고 그렇다고 요즘의 애완견처럼 상전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닌 듯하다. 개에 대한 지식이 없어 어떤 종류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내 어릴 때 촌 집에서 키우던 똥개하고 크기와 생김새가 비슷하기에 나는 그 둘을 그냥 똥개라 부른다. 한 마리는 흰색이고 한 마리는 검은색인데 사무실을 옮기고 첫 출근 할 때, 유독 검정색 똥개가 입술 사이로 흰 송곳니를 밖으로 드러내고는 “어르릉” 거리기에 직원의 도움을 받아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기억이 난다. 내가 개를 사랑하기보다는 식당에서 즐기는 편이라 ‘나에게 적의를 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기에 그 일로 그를 미워해 본적은 없는듯하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똥개들도 내가 옆집 사무실 대표라는 것쯤은 알았는지 차에서 내리면 꼬리를 바로 내리고 눈깔을 아래로 깔며 머리를 앞으로 내민다. 요즘에는 재봉 질만 하는 할머니 같은 아주머니 보다 똥개하고 더 친하다. 베트남 똥개나 한국 똥개나 쉽게 정 주는 것은 마찬 가진가 보다.
미용실
사무실을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3번째 집이 동네 미장원이다. 지나다가 몇 번인가 안을 둘러 보았는데 다른 미용실처럼 전면이 모두 거울로 되어있고, 염색을 하거나 파마를 하면 머리 위에서 빙빙 돌아가는 미용 기계도 갖추고 있지만 아직 손님이 커트를 하는 모습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간혹 여자 손님이 누운 듯이 의자에 앉아 손톱이나 발톱 손질 받는 것을 몇 번 보았기에, 손가락을 머리 위에 올려 가위 모양을 흉내 내며 “정말 머리 깎는 곳이 맞냐?” 고 직원에게 몇 번 물어 보았는데 “짝짱” 이란다. 미용사인지 맛사지사인지 결론을 내지 못했지만 그분의 남편은 내가 사무실에 있을 시간에 항상 그 미용실에 있다. 남편의 하루 일 과중 가장 중요한 일이 오토바이로 애들의 등 하교를 시켜주는 일인 것 같기에 나는 아저씨의 직업을 ‘무직’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우리 직원말로는 서비스로 귀도 후벼준다는데 무직 아저씨 때문에 아직 한번도 손님으로 가보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그 미용실에 손님으로 갈 생각은 없는 듯 하다.
약국
사무실을 들어오는 골목입구의 왼쪽 첫 집이 3층 건물인데 1층이 약국이다. 감기가 있을 때 한번씩 이용하는 편인데 한번만 먹어도 몽롱하니 “뿅” 간다. 한마디로 약효는 죽인다. 골목길 약국치고는 있어야 할 약은 다 있고 약 값도 한국의 ‘껌’ 값보다 싸다. 아직 의약 분업이 되지 않아 한국에서는 병원 가서 쪼가리를 받아야 살 수 있는 전문 의약품들도 우리 골목 약국에서는 쉽게 살 수 가 있다. 우리 직원 말로 베트남의 약대는 2년제도 있고 3년제도 있고 4년제도 있단다. 4년제 정규 대학을 나온 약사는 실력이 좋아 보통 큰 병원에 취직을 하게 되고 동네 약국의 젊은 약사는 2년제 대학을 졸업한 경우가 많단다. 우리 동네 약국에는 약사가 3명이나 있다. 2명은 젊은 여자 약사이고 1명은 늙은 남자 약사인데 난 2년제 대학의 실력과는 상관없이 항상 젊은 여자 약사에게만 약을 산다. 물론 앞으로도 약사의 실력과는 상관없이 4년제 약대를 졸업했다는 늙은 남자 약사에게 약을 살 마음은 전혀 없다.
카페
골목입구 약국 맞은 편은 카페다. 유리가 없는 개방형 카페 인데 골목 건너편에 있는 카페와 달리 손님이 아주 많은 편이다. 지나다 보면 손님의 대부분은 검은색 ‘까페 다’ 를 시켜놓고 거물처럼 엉겨놓은 쇠 의자에 비스듬하게 앉아 도로 쪽으로 ‘멍’ 때리고 있는 듯 한데, 지나칠 때 마다 차를 세우고 “자오 나이 람지?” 라고 꼭 한번 물어 보고 싶었지만 아직 한번도 물어 보지 못했다. 오래 전 사무실에 근무 하다가 귀국한 한국인 직원이 하루는 카페의 여주인이 너무나 미인 이란다. 아침 회의를 마치자 마자 카페로 가서 만오천동짜리 ‘까페 다’를 시켜 놓고 여주인을 확인하고는, 그 한국인 직원에게 한말이 있었다. “니 하고 내 하고 여자 때문에 싸울 일은 절대로 없겠다” 그리고 그 후 1년이 넘도록 한번도 그 카페의 고객으로 가본적이 없는 듯하다. 스타일에 맞지 않는 여주인의 미모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베트남의 쓴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베트남에서 오래 살았지만 아직도 커피는 ‘핫 아메리카노’ 스타일 인가 보다.
외국인
난 똥개도 살고 있고, 늙어가는 아주머니도 살고 있고, 백수 아저씨도 살고 있는 베트남의 어느 골목길의 여섯 번째 집에서 그들 삶의 구성원 중 한 명이 되어 외국인으로서 사업을 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국적을 취득한 진짜 국민이 되진 못하겠지만 나는 그들의 세금으로 닦아놓은 골목길을 이용하고 그들이 설치한 전기와 수도를 제한 없이 사용하고 있으며 그들이 판매하는 감기약을 이 나라의 인민과 차별 없이 싸게 살 수도 있기에 난 이 국가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 국가의 인민을 존중하고 이 국가의 인민이 키우는 똥개에게까지 정을 주며 오랫동안 사업을 하고 싶고 내가 목표한 부와 삶의 가치를 성취하고 싶다.
물론 한반도에 있는 어떤 공단처럼 하루아침에 내리는 국가의 명령으로 철수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없어야 할 것이며, 어떤 군사적 외교적 문제로 양국간의 마찰이 심화되어 대한민국 국민인 나에게 이 나라에서 경제적 보복을 가하는 상황이 없어야 가능한 일이 아닌가 쉽다. 그래서 난 내가 개성공단에서 사업을 하지 않은 것을 행운으로 알고 있고, 그래서 내가 중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아니고 베트남에 거주하는 외국인인 것을 다행으로 생각 할 뿐이다. 적어도 지금 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