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시리즈가 돌아왔다. 맷 데이먼에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2012년 ‘본 레거시’가 토니 길로이 감독에 호크아이 제레미 레너로 변화를 꿈꿨지만, 관객들 저항이 생각보다 심했다. 제임스 본드에 정통성이 있다면 본 시리즈엔 본이 있기 때문이다. 맷 데이먼이 등장하지 않는 본 시리즈는 그러므로 본 시리즈가 아니었다. 대체 본 시리즈란 무엇일까? 말하자면, 영화계에서 본 시리즈는 일종의 상징이자 코드다. 본 시리즈는 액션의 호흡과 체위, 표정, 반응 그 모든 것을 바꿨다. 액션 영화에도 패러다임이 있다면 본 시리즈는 그 패러다임을 바꾼 새로운 형태였다.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리얼 액션이다. 그전까지 액션 영화들은, 주로 몸집 큰 액션 배우들이 각과 합을 맞춘 연극적 액션으로 과장돼왔다. 하지만 제이슨 본은 깔끔하게 동선을 줄이고, 살상 액션이라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했다. 공작원이라면, 게다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살인병기라면, 화려하거나 억지스러운 무술을 할 리가 없다. 간결하면서도 파괴력 있는 액션, 본 시리즈는 바로 그런 새로운 액션의 호흡을 가져왔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을 관통하는 과감함도 본 시리즈의 매력이다. 워털루역, 런던, 모나코, 라스베이거스와 같은 대중적 명소들에서 제이슨 본은 실제를 방불케 하는 추격전과 은닉, 탈출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적으로 꾸며진 인공성이 아니라 마치 실제 같다고 여겨질 만한 상상의 리얼리즘을 제대로 구현한 것이다.
2016년 여름 개봉한 ‘제이슨 본’은 본 시리즈의 원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맷 데이먼과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2007년 ‘본 얼티메이텀’ 이후 재결합한 작품이다. 제이슨 본다운 본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기대감이 예열된 작품이라는 의미다. 아무리 뜨겁게 예열돼 있었다 하더라도 ‘제이슨 본’은 본 시리즈의 충실한 관객들에게 충분한 만족을 줄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첫 번째 군중 액션인 그리스 장면은 가히 백미다.
다중이용시설 속에서의 군중 액션신과 동선을 짜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감독은 이번엔 아예 시민들의 소요 사태와 이에 맞서는 공권력의 혼란,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시위 현장의 격렬함 안에 쫓고 쫓기는 첩보전과 추격전을 배치했다. 거의 3초 단위로 추적 가능해진 SNS 세상 속에서 속도감이 높아진 추격전은 사실감을 넘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명품 액션과 동선만큼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흡입력 높은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다. CIA 국장 역을 맡은 토미 리 존스는 눈빛 하나로 분노와 가소로움을 모두 표현해낸다. 맷 데이먼과 오랜만에 조우한 줄리아 스타일스도 초반 그리스 추격전에 대단한 탄력을 선사한다. 새로운 여성 캐릭터로 등장한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나약한 듯 강인한 브레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사실 ‘제이슨 본’에서 다루는 주제는 최근 첩보, 액션 영화에서 늘 다뤄지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정보를 차지하려는 오래된 권력과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 하는 자의 대결이라는 소재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본은 본이다. 비슷한 이야기라고 해도 본 시리즈로 만들어진 이야기에선 핍진성이 배가된다. 명불허전이란 이런 수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액션 영화에 한 획을 긋고 하나의 문법을 만든 본 시리즈, 본은 여전히 본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 강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