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영어를 습득하고 사용하는 데 소위 “콩글리시”라고 부르는 “한국식 영어”를 극복하고 영어를 영어답게 배우고 사용하는 원칙을 소개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공부하면서 국제회의통역사(동시통역사)가 되기까지, 그리고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과 수 년간의 강의 현장에서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한국인이 영어를 마스터하는데 효과적인 원칙과 영어 사용법을 나누고자 합니다.
통역에는 크게 동시통역과 순차통역 등 두 가지 형태의 통역이 있습니다. 순차통역은 연단에 통역사와 연설자가 함께 서서 연설자가 한동안 발표/연설을 하고 나면 통역사는 노트를 하며 기다렸다가 연설자의 말이 끝나면 “순차적으로” 통역을 하는 형태이고, 동시 통역은 말 그대로 연사가 말하는 “동시에” 통역을 하는 형태입니다. 동시통역이 사용될 때는 청중들은 미리 제공되는 이어폰을 통해서 통역의 말을 듣게 되지요.
국제 회의에서 동시 통역을 하는 통역사들은 통역 부스booth 안에서 통상 2인 1조로 들어가서 일을 합니다. 동시통역 부스 안에는 간단한 동시통역 장비들이 있지요. 기본적인 장비는 물론 헤드폰과 마이크입니다. 그 외에도 마이크 전원 버튼, 채널 버튼, 무음mute 버튼 등 몇 가지 부수적인 것들이 있고요. 필자가 통역대학원 2학년이 되어 처음 동시통역을 배우던 수업시간이 기억이 납니다.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되던 첫 동시통역 수업시간. 연단에 계신 교수님의 배정에 따라 처음으로 동시통역 부스에 들어가서 동시통역 준비를 위해서 헤드폰을 쓰고 마이크와 몇 가지 버튼 등의 작동 상태를 확인합니다. 바깥에 계신 교수님이 마이크를 통해서 통역사들의 준비 상황을 확인합니다.
“통역사들 내 목소리 다들 잘 들리나요?”
교수님이 확인하는 순서에 따라 각 부스에 있는 통역사들이 각자 마이크를 통해서 대답을 합니다. 곧 첫 동시 통역 훈련이 시작될 참입니다. 교수님의 다음 지시가 이어집니다.
“자, 모두 다 준비되었으면 이제 한쪽 헤드폰은 빼세요.”
연설을 귀로 들으면서 실시간으로 그 말을 반대편 언어로 옮겨서 마이크로 내보내야 하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집중력이 요구되는 통역을 해야 할 참이라 연사의 연설을 빨리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는데 한쪽 귀를 빼고 들으라니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동시 통역을 하다 보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연사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을 때는 초보 동시 통역사들은 양쪽 헤드폰을 다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양쪽 헤드폰을 다 쓰고 동시 통역을 하면 한쪽을 빼고 했을 때 보다 훨씬 결과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훈련된 통역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굳이 훈련된 통역사가 아닌 일반인이라도 헤드폰을 낀 채로 말을 하면 본인이 하는 말조차 (음량뿐 아니라 내용까지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통역사들은 동시 통역을 할 때 연사의 연설을 한쪽 귀로는 듣고(input), 머리로는 반대편 언어로 바로 옮기고(processing), 입으로는 통역을 하는(output) 과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내뱉은 말을 열려있는 다른 한 쪽 귀로 들으면서 조절(critique)하는 단계까지를 동시에 수행해야 합니다.
때로는 손으로 메모를 하는(note-taking) 경우도 있으니 실시간으로 통역을 하는 일이 대단히 복잡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복잡해 보이는 과정도 열심히 훈련하면 자동차 운전을 하듯이 매우 능숙해 집니다. 여기서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고자 하는 일반인으로서 기억할 점은 바로 “열어 놓는 한쪽 귀”입니다. 동시 통역사들이 늘 한쪽 귀를 열어두듯이 듣고 생각하고 말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늘 “내가 지금 말을 따라가고 있는지 의미를 따라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예로 번역사들끼리는 “한쪽 눈은 번역하는데 쓰고 다른 한쪽 눈은 내가 번역한 것을 교정(critique) 하는데 써라”라는 말을 합니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최소한 정상적인 지구인이라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개념적으로 즉 머리 속에서는 그 두 가지 다른 일을 충분히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장시간 번역을 하다보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의미”를 따라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말”옮기기를 하고 있는 경우가 훈련된 번역사들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통역번역대학원을 다닐 때 일어통번역을 전공하던 동기와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흔히 한국어와 영어는 어순이 반대여서 동시통역하기가 쉽지 않지만 한국어와 일어는 어순도 같고 말도 비슷한 게 많아서 동시통역하기가 쉬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런지가 궁금했습니다. 그 동기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한국어와 일어는 어순도 같고 말도 비슷하게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일어의 말만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기만 해서 통역할 수 있다. 한국어에서 일어로 갈 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어 동시통역이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일어는 문맹에 가깝지만 그 말을 단숨에 믿었습니다. 어순과 어휘가 비슷하기 때문에 두 언어 간에 있을 문화의 차이, 그로 인한 의미의 미묘한 차이들을 꿰뚫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지요.
굳이 통번역사가 아니더라도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나 내공이 높은 비즈니스맨이라면 “제3의 눈The Third Eye”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미간에 제3의 눈을 가지고 있는데 그 눈을 뜨게 해서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혹은 비즈니스를 할 때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간파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상대의 제스쳐나 표정, 어조 등을 통해서 “말”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 이상의 정보를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일본 출장을 여러 번 다니면서 일본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이 아닌 한은 “No”라는 대답을 면전에서 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중요시 하는 일본의 문화는 면전에서는 가급적이면 상대의 말에 직접적으로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일단 “Yes”라고 대답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자칫 비즈니스에서 오해를 살 수도 있는데 그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말이 아니라 그 이면의 속 뜻을 효과적으로 알아차릴 줄 알아야 비즈니스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을 듯 했습니다. 그런 이면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훈련이 바로 “제3의 눈”을 뜨게 하라는 원칙입니다.
한국어와 영어의 두 가지 다른 사고방식을 넘나들기 위해서는 언제나 “한쪽 귀를 열어두고” “제3의 눈”을 사용해서 “말”을 따라가지 않고 “의미”를 따라가는 훈련을 습관화하여야 합니다. “이해하다”라는 우리말을 영어로 할 때 과연 “understand”외에 어떤 다른 표현이 쓰이는지 찾아내고 스스로 구사해 보면 영어의 전반적인 사고방식이 내 것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