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약 60평 정도의 면적)를 10초 만에 휙 둘러본 한 한국 손님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여긴 팝아트 같은 건 없어요?”
그 짧은 순간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혼란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이 물어본 ‘팝아트’는 과연 어떤 ‘팝아트’일까? 한국에서 유행하는 선물용, 기념용 팝아트스타일의 초상화일까? 아니면 팝아트의 대표 작가인 앤디 워홀이나 리히텐슈타인의 원작을 묻는걸까? 아니야. ‘팝아트 같은 거’라고 표현했으니까 그게 아닌 것 같아. 그렇다면 혹시 여행자 거리에 있는 복제 화랑에 널브러져있는 팝아트 복제화를 찾는 것일까?’
마음대로 들어오셔서 마음대로 묻더니 제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생각하는 그 짧은 시간에 아무 말도 없이 바람처럼 그냥 가버렸습니다. 스스로를 손님이 아닌 침입자 그리고 도망자로 인식된 그 사람. ‘팝아트’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아직도 연관 검색어처럼 따라 올라오는 악몽 같은 기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는 황당했지만 그런 사람이 한 둘도 아니고, 정신 건강을 위해 그냥 좋게 좋게 생각한 후 까먹어 버리려고 합니다. ‘그 순간 옆에 서 있던 내가 안 보일 정도로 엄청 급한 일이 있었겠지. 뒤끝 작렬은 이제 그만……
이제 기분도 전환하고 화제도 전환할 겸 어서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야겠습니다. 지난 호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앤디 워홀’ 그리고 ‘데이비드 호크니’를 잇는 네 번째 팝아트 칼럼의 주인공 작가를 소개합니다. 팝아트의 시조, 팝아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처드 해밀턴’ 입니다.
작가의 이름이 다소 낯설죠?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작가인지 어떤 작품이 있었는지 쉽게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작가입니다. 바로 이 작품을 통해서요. 미술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작품이자 팝아트의 시대를 연 첫 작품으로 여겨지는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입니다.
이 작품은 리처드 해밀턴이 1956년 ‘이것이 내일이다’ 라는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입니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고, 곳곳에 각종 광고 문구나 사진들을 안 어울릴 듯하면서도 잘 어울리게 붙여놓았습니다(콜라주 기법). 잡지와 광고사진만 이용해서인지 감각적인 요즘 광고 사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학창시절,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와 각종 대량생산품들의 홍수 속인 그 당시 사회를 담아내어 쾌락적이고 소비적인 대중문화를 풍자적으로 표현했다고 미술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의 작품 중 소개해드리고 싶은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리처드 해밀턴의 <피카소의 시녀들>입니다. 맞습니다. 원작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인데 피카소가 모방한 <시녀들>을 리처드 해밀턴이 또다시 패러디했습니다. 그래서 그림 속 ‘벨라스케스’가 서 있어야 할 곳에 ‘피카소’가 서 있고, 뒷 부분에도 모두 피카소 그림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시녀들>원작이 기억이 안 나신다구요? 2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분들을 위해 아래에 그 칼럼을 붙여놓았습니다.
팝아트의 물꼬를 튼 ‘리처드 해밀턴’. 사실 팝아트라는 단어는 POPULAR ART(대중 예술)의 줄임말이랍니다. 대중적인 예술인 팝아트가 단순히 색채가 강렬하고 재미만 추구하며 대량생산으로 많이 찍어내는 작품들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 시대, 그 사회를 그대로 담아내기도 하고, 그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의도와 시선을 담아 풍자를 하기도 합니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미국에서 전성기를 맞은 후 이제는 두 나라를 포함해 서양뿐만이 아닌 한국, 중국,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팝아트 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베트남에서도요. 과연 그 손님이 원했던 ‘팝아트’는 무엇이었을지 정말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