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강북에 살지 말입니다!

6개월 정도 글을 게재하지 못했다. 편집실로부터 몇 번인가 “휴가를 그만 즐기시지요~”라는 압력을 받았지만, 늙은 몸뚱어리가 편하지 않았고, 편하지 않은 몸뚱어리가 맘을 편하게 두지 않았기에 글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맘 먹고 책이라도속 깊이 읽어보려 했지만 언제부턴가 스마트폰 속의 흥미기사만 흩는 눈깔들이, 오랫동안 책속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먹지 못한 야윈 창자에서 배설 할 것이 없듯이 책 읽지 않는 텅빈 대가리는 아무 글도 토해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책을 읽지 않아 감정이 없을 것 같은 텅빈 대가리를 책상 앞에 잡아 두고, 위기감 때문에 가장 긴 손가락을 입속에 집어넣어 글 같지도 않은 것을 토해본다.

나는 경북 고령군 고령읍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나의 아버지와 내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대구에서 공부를 하고 대구에서 자라났다. 내가 태어난 고령의 촌집의 마당 앞에는 윗동네의 누구 집 앞 마당에서도 흘러내린 또랑이, 맑은 물을 담아 내려 보내고 있었고, 그 또랑의 물들은 우리 집을 지나고서도 한동안 흘러내려 뚝이 처져 있는 냇가에서 수십 개의 다른 또랑의 물과 뒤엉키며 부딪치며 쉼없이 흘러 내려 갔지만, 난 그 물들이 어디까지 흘러 내려가는지 한 번도 확인해본 기억이 없다.

학교를 가야하는 시기기가 되었을 때 고령군 고령읍에서 태어난 촌놈의 인생도 또랑물이 흐르듯이 대구까지 흘러 있었고 성주의 골짜기와 현풍, 덕곡, 쌍림과 합천 그리고 다사와 상주의 골짜기에서까지 흘러 내려온 수많은 촌놈들의 인생들이 대구에 있었기에 그들과 부딪치며 싸우며 같은 시기의 젊음을 같이 흘러 내렸다. 그렇게 대구에서 공부하고,대구에서 밥벌이하고, 대구에서 마누라를 만나고, 대구에서 새끼를 까고 키우면서 젊어있을 때를 흘려 보냈지만, 지금은 호찌민의 푸미흥에서 밥벌이를 하며 6년 넘게 늙어 가고 있다.

내가 밥을 빌어 먹으며 늙어가고 있는 베트남 푸미흥의 서북쪽은, 7군의 롯데마트를 지나 야베로 가는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면서 전체가 시작이 되고, 푸미흥의 동남쪽은, FV병원의 사거리를 기준으로 병원 쪽으로 직진을 해도 시작되고, 크리센트몰 쪽으로 좌회전을 해도 푸미흥 전체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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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강남은 한강을 기준으로 형성된 강변의 남쪽에 계획된 도시를 강남이라고 칭하고, 서울의 강북은 한강의 개발되지 않은 구도심을 강북이라 칭하지만 어떤 대만 회사가 계획하고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에 의해 허가된 계획도시 전체를 푸미흥이라 칭하지만, 교민의 입속에서 나온 말들이 푸미흥을 많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롯데리아 사거리를 기준으로 미칸쪽으로 우회전을 하면  ‘강남’이라 칭하고, 흥붕쪽으로 좌회전을 하면  ‘강북’으로 칭한다는 말이 많다.

교민들의 입 밖으로 나오는말 때문에 푸미흥에 돌아 다니는 말 중에는, 강남은 미칸에서 그랜드 뷰를 거처 한국인 학교를 가는 다리까지 조그만 강이 흐르고 있지만 흥붕과 스카이 쪽으로는 흐르는 강이 없기에 강북이라 말한다고도 한다. 강남쪽 헬스장의 헬스트레이너는 젊어있는 한국인 총각이라 강남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스카이쪽의 헬스트레이너가 베트남인이라고 강북이라 말하기도 한다고 머리에 머리카락이 몇 개 없는 선배가 말하기도 했다.

푸미흥의 강남쪽 여학생들이 강북쪽 남학생들과 미팅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 내 아들이 베트남에 살지 않기에 나는 잘 모른다. 강남의 사모님들이 강북의 사모님과 골프를 같이 하는지 하지 않는지, 내 마누라가 베트남에 있지 않는 나는 모른다.

그렇지만 강북의 흥붕에 살고 있는 나는 강남에 살고 있는 선배와 주말이면 10차선이 넘는 도로를 넘나들면서 어떤날에는 이쪽에 있는 “행님아”라는 해물집에서 먼저 마시고, 저쪽에 있는 “고향집”이란 식당으로 건너가서 다시 마실때도 있고, 어떤날에는 저쪽의 “고구려”에 앉아 양념갈비로 먼저 마시고, 이쪽의 “장독대”에 앉아 섞은 홍어삼합으로 다시 마시기도 하기에 나에게 이쪽과 저쪽의 경계는 10차선이 넘는 도로밖에는 없다.

푸미흥은 강북에 있는 것이 강남에 없는 것이 없고 강남쪽에 있는 것이 강북 쪽에 없는 것이 없을 만큼이나 씨갈이 X만 하기에 푸미흥은 그곳이 이곳이고 이곳이 그곳이다. 그래서 푸미흥의 강북과 강남의 경계는 10차선이 넘는 도로를 기준으로 강 있고, 강 없고 하는 것이 내가 정한 기준이다.

내가 영업 때문에 어떤 지역의 공장을 방문하여 담당자를 처음 만나게 되면 항상 받게 되는 질문이 들이 많다. 가장 많은 질문은 “베튼남에 얼마나 살았어요? 이고 두 번째의 질문은 “어디에 살아요?   ”라는 것인데, 두 번째 질문에 “푸미흥에 살지 말입니다”라고 대답할 때 마다 “푸미흥 어디에 살지 말입니까?”라는 질문이 후발로 날아온다. 베트남에서 살아온 알람미의 밥그릇이 있기에 연식으로 서열을 정하자는 첫 번째 질문에는 꿀릴 것이 없다.

하지만 흥붕 아파트에 6년째 똑같은 집에 살고 있는 나의 주거지가 강남이 아니라 강북 지역이라 10차선 도로만을 기준으로 강 있고, 강 없고로 구분하는 나도 답변을 할 때마다 흥붕이라 말하지 않고 그냥 푸미흥에 있는 아파트에 산다고 대답할 때가 많다.

난 고령군 고령읍 촌놈이었고, 지금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허가한 푸미흥의 흥붕 아파트에서 합법적으로 살고 있는데 난 그 곳을 경북 고령군 고령읍의 촌구석만큼 보다 더 자신있게 말해 보지 못한다. 그래도 푸미흥의 강북은 서울의 강남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못하는 것이 없고 서울의 강남에서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롯데리아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면 치킨으로 베트남 인민을 사로 잡아가는 짜오치킨도 있고 파파스치킨도 있다. 한 그릇만 먹어도 벌떡 선다는 국물 찐한 영양탕도 먹을 수 있고, 춘천 명동에서나 먹을 수 있는 닭갈비도 먹을 수 있으며, 그 유명한 쪽갈비도 먹을 수 있다. 우리 쪽에는 마사지만 받을 수 있는 곳도 있고, 마사지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으며, 노래만 부를 수 있는 노래방이 있고 노래도 부를 수 있는 노래방도 있다.

그래서 나는 강북에 산다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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