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나홍진 감독 / 곽도원, 황정민, 천우희 출연

사람이냐 귀신이냐…공포의 롤러코스터
입소문이 남달랐다. ‘역시 나홍진이다’ ‘2시간 50분간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러닝타임 동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와 같은 평가가 이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그 수많은 평가들 가운데 도대체 ‘곡성’이 어떤 이야기인지 시원하게 줄거리를 설명해주는 평은 없다는 것이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매혹적인지 구체적인 평가를 해주는 이도 거의 없었다. 그저 ‘대단하다’ ‘어마어마하다’와 같은 정서적 평가가 채워질 뿐이었다. 그 실체를 드러낸 ‘곡성’을 보면 왜 평가가 대부분 추상적이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곡성’은 ‘왜’라는 질문을 갖고 보는 영화가 아니라 그저 미끼를 물면 낚시꾼의 손질에 하염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주는 혼동은 ‘곡성’이 매우 사실주의적인 촬영 기법과 배경 가운데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곡성이라는 지명도 사실적이며, 등장하는 인물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평범한 곳에서 평범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발생한다. 이 온도 차에서 ‘곡성’의 새로움과 신비함, 낯섦이 발생한다.
주인공은 시골 경찰인 종구다. 조그만 시골 마을에 발생할 수 있는 강력 사건이란 게 뭐 그리 대단할까? 그런데 이 마을에 기괴한 몰골로 망가질 뿐 아니라 그 몰골의 누군가가 일가족을 살해하는 사건들이 자꾸만 발생한다. 환각 증상을 일으키는 야생 독버섯이 원인이라고 밝혀지지만 이 또한 석연치 않다. 적어도 사건을 처리하는 종구는 이 끔찍하고 이상한 사건에 조금 거리를 두고 직업적인 관심만을 갖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신열이라도 앓듯 며칠 끙끙대던 딸이 벌떡 일어나더니 생전 먹지도 않던 생선살을 야수처럼 발라먹고, 아버지에게 상욕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이상한 일의 중심에 외지에서 온 사람, 일본인이 언급된다는 사실이다. 이미 마을엔 외지에서 온 일본인이 마을 여자를 겁탈했다거나 고라니를 맨손으로 뜯어 먹더라와 같은 소문이 있었다. 그리고 이 소문은 서로 시너지를 일으켜 지금 마을에서 발생하는 기괴한 사건이 바로 외지인과 관련이 있다고 증폭된다.
영화는 과연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사실일지, 그러니까 외지인이 살인범인지 귀신인지 혹은 악마인지를 헷갈리게 만들며 관객들을 뒤흔든다. 현실에서야 이 중 하나만 가능하지만 영화 속 허구라면 모든 이야기가 장르적으로 가능해진다. 다만 리얼리즘극이라면 살인범을 의심해야 하고, 오컬트나 미스터리라면 귀신이나 악마일 수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과연 이 영화의 장르가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는 채로 최종적 결말 지점에 닿게 된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궤도나 속도를 계산할 수 없는 것처럼, 눈앞에 발생하는 호기심과 두려움을 처리하느라 급급하다보면 어느새 결말에 이르러 있게 되는 것이다.
‘곡성’은 말 그대로 영화적인 영화며, 영화에 미친 영화광이 만들어낼 수 있는 순도 높은 영화적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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