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깨기- 인공지능과 미술

인공지능과 미술

지난달 전 세계를 들썩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의 세기의 바둑 대결입니다. 기계와 인간의 대결로 전 세계인들이 주목을 했었던 이번 대국에서 저는 간절히 인간인 이세돌 9단이 이기기를 기원했지만 아쉽게도 결과는 알파고의 4승, 이세돌 9단의 1승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아이코 큰일이네 이러다가 어떤 영화에서처럼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잠시 들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불안을 잠재워 준 신문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을 직업은? 그중 1위가 자랑스럽게도 ‘화가 및 조각가’였습니다.

정교한 동작이 필요한지 / 비좁은 공간에서 일하는지 / 창의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 예술과 관련된 일인지 / 사람들을 파악하고 협상·설득하는 일인지 / 서비스 지향적인지 등을 주요 변수로 삼아 분석했다고 합니다.

인문학이 위기인 시대, 예술이 괄시를 받는 시대에 예술을 하는 저로서는 절로 어깨가 으쓱하지 않을 수 없는 기사였습니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인간의 창작 능력을 기계나 로봇이 대신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사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인공지능 화가는 이미 개발되었습니다. “고흐풍 그림을 그려주세요.” 하고 구체적인 주문을 하면 알아서 척척 고흐의 느낌으로 초상화나 풍경화를 그려주기도 합니다. 고흐의 그림풍을 따라서 그림을 확장시키기도 하고요.

4월 6일 BBC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와 네덜란드 기술자들과 공동 개발한 AI가 렘브란트의 화풍을 그대로 재현한 그림을 그려냈다고 합니다. 여러 점의 렘브란트의 작품을 입력해서 분석하고, 그림의 특징을 학습한 후 구체적인 명령 없이 “렘브란트 화풍으로 그려라”라는 명령에 따라 초상화를 그려냈습니다. 3D 프린팅으로 인쇄된 그림은 유화의 질감마저도 똑같이 재현했다고 합니다. 곧, 그림 복제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이 로봇들이 대신할지도 모르겠네요.

지금까지 나온 로봇들은 ‘잘’(대상을 똑같이) 그릴 수는 있겠지만, 분명 아직 한계가 보입니다. 스스로 주체적으로 창작은 힘들어 보입니다. 학습해야 할 원작이 필요하고, 명령에 의해 작업하기 때문입니다. 추상화를 그리는 로봇도 있지만 역시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외부 자극에 의해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작, 창작이 재미있고 즐거운 이유는 항상 완성한 후 결과물을 마주할 때만은 아닙니다. 작업 전 예상했던 결과물과 작업 후의 결과물이 다르기도 하고, 편안하게 항상 익숙한 작업을 하다가도 갑자기 다양하거나 파격적인 것을 시도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작업하다가 도중에 중단을 하며 작품을 끝내버리기도 합니다. 똑같은 대상을 똑같은 작가가 똑같이 그리거나 만들더라도 작업하는 환경, 감정에 따라 달라 보이기도 하고요. 의도일 수도 있고, 우연일 수도 있고요. 작가에 의해 어떻게 완성될지 작가 자신이 알 때도, 모를 때도 있습니다.

로봇이 인간을 능가하며 결과물 뿐만 아니라 창작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느낄 시간이 빨리 다가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직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작업이 아닌 학습된 결과로 재조합해 일을 하기 때문이죠. 그래도 제 작업실에 팔레트들을 깨끗하게 긁어주거나 유화붓들을 깨끗이 빨아줄 보조 로봇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미술을 하면, 특히, 회화 전공을 하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고정관념들이 많은데, 미래에는 로봇에게 일자리를 뺏길 일이 없다고 ‘예술을 하는 것이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모처럼 학생들에게 큰소리 한 번 쳐볼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인간의 예측할 수 없는 창의성을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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