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커피 칸타타

아침마다 베트남 로컬 커피숍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한국 또한 커피 수요가 날로 증가 한다고 하는데 오늘은 커피에 대한 이야기로 클래식을 좀 더 이해해보려 합니다.

베트남은 브라질에 이어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인데요. 전 세계적으로 커피 생산국은 널리 분포되어 있지만 대부분 남위 25도부터 북위 25도 사이의 열대 아열대 지역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커피는 6 ~7 세기경 에티오피아의 칼디(Kaldi)라는 목동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네덜란드 사람들 덕분에 17세기 중반에는 거의 모든 유럽에 커피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유럽은 바로크음악의 시대였는데 바흐 헨델 비발디로 설명되는 시대였지요. 이 당시에는 기악음악이 종교음악의 반주에서 슬슬 벗어나면서, 다양한 형태의 음악이 만들어 집니다. 오늘은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을 소개하려 합니다. 대표적인 곡은 그 중에서 Air (G선상의 아리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사실 귀족을 위한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아마추어 음악가에 의한 공연을 염두에 둔 작곡이었죠. 구체적으로 음악 시민단체인 콜레기움 무지쿰(Collegium Musicum)을 위한 작품인데 노래 같은 느낌이죠. 콜레기움 무지쿰이라 하면 저는 커피 한 잔이 생각면서 또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커피 칸타타>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바흐는 독일 여러 곳으로 직장을 옮겨 다니다 마지막으로 자리를 잡은 곳이 라이프치히였는데요. 마침 그 도시에서 커피가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지금으로 말하면 카페들이 늘어 났습니다.

처음에는 맥주나 포도주를 파는 선술집이 경쟁 상대였지만 카페하우스들이 순식간에 늘면서 카페끼리 경쟁이 더 심각해졌죠. 이런 분위기에서는 독특한 마케팅 전략이 생존에 필수적이었습니다. 그 묘안의 하나가 손님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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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카페 짐머만(Café Zimmermann)이라는 곳에서 바흐에게 그런 부탁을 해 온 겁니다. 바흐는 자신이 지도하던 대학생 중심의 콜레기움무지쿰과 함께 이 커피하우스 연주회를 위해 여러 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에 커피 찬가인 <커피칸타타>가 들어 있죠.

원래 칸타타는 루터파 교회 예배시 연주되는 음악 양식으로 합창, 독창, 중창으로 구성됩니다.

바흐는 교회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예배를 위한 칸타타를 남겼들 뿐 아니라 교회 밖 행사를 위한 용도의 세속 칸타타 20여곡이 전해지고 있죠. 사냥칸타타나 농민칸타타가 대표적이지만 커피칸타타도 있습니다. 소나타가 기악곡이면 칸타타는 성악곡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최근 한국에서 유행하는 커피이름에<칸타타>라는 이름은 이런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바흐의 <커피칸타타>는 일종의 상업광고 음악이었어요. 노랫말을 한 번 볼까요?

, 커피 맛이 얼마나 기가 막힌지

천 번의 키스보다 황홀하고

달짝지근한 무스카트 포도주보다 더 부드럽다네.

누구든지 나를 원하시거든,

, 제게 커피를 주세요!

– 4번째 아리아, ‘커피는 어쩜 이렇게 맛이 있을까’ 중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오늘날 광고카피 보다 더 직설적이지 않나요? 당시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는 항해술의 발달과 상업혁명으로 아라비아와 인도, 동남아, 라틴 지역의 식민지에서 커피가 수입되어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14세기 흑사병이 창궐한 이후 유럽인들이 마실 수 있는 음료는 주로 술 밖에 없었고, 차는 아직 널리 보급되기 전이었죠. 그러다가 커피가 알려지기 시작하고 커피숍이 생겨나자 사람들이 열광했던 겁니다. 이렇게 형성된 커피 문화가 독일에서 문화 선진도시인 라이프치히에 1720년대 이후 자리를 잡은 것이고, 바흐는 이 새로운 문물에 관심을 가진 거죠. 덕분에 여유로워진 시민들이 음료와 함께 음악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요즘도 그렇습니다만, 커피숍에 모여 얘기하다보면 주제가 여러 가지로 흐르지요. 당시에도 주제가 문화나 예술에 대한 논의를 넘어 종교 비판이나 정치적 논의로 번지기 일쑤였습니다. 그 반작용으로 종교계나 정치계가 커피를 규제하려고 시도하기도 했죠.

교회는 커피를 ‘사탄의 음료’라고 매도했고, 영국 국왕 찰스 2세는 1675년에 커피 유통을 억제하기 위해 일부 국가와 통치자들은 커피하우스의 운영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1675년 영국 국왕 찰스 2세는, 커피가 남자에 좋지 않다는 소문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남편들이 커피하우스에만 가면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주부들의 원성이 커지자 커피 유통을 규제하기 위해 그랬다는 것인데요. 진짜 이유는 대중들이 모여 반역이라도 모의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겠죠? 실제로 영국과프랑스의 민주주의혁명은 커피숍에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던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모의되었다고 합니다.

 

황영택

목원대학교 관현악과 졸업

독일 Dusseldorf Conservatory 수료

現 Saigon Strings 리더/ 드림교회 성가대 지휘자

호찌민시 한인 청소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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