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다 보면 기쁠 때나 즐거울 때에 작업이 수월할 때에도 있지만, 어떤 날은 열 받을 때, 슬플 때 작업이 더 잘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밤 새서 그림 작업을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 따라 문득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가 갑자기 떠오르며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올라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하던 작업을 멈추고, 옆에 있던 새로운 캔버스에 그 강아지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엉엉 울며 그 그림을 완성을 한 후 갤러리에 걸어놓았는데, 신기하게도 관객들이 그 그림을 보면 어딘가 슬퍼 보인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또 어느 날은 화실 수업이 끝나고 화실을 정리하던 중에 꾹꾹 참고 있던 힘든 일이 생각나 혼자서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책꽂이에 꽂혀 있던 한 화집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손이 가는 대로 꺼내서 펼쳤더니 하염없이 뚝뚝 떨어지던 눈물이 정말 거짓말처럼 ‘뚝’ 그치게 되었습니다. 화집 속 작품이, 자화상 속의 화가(오늘 칼럼의 주인공)가 신기하게도 제 눈을 바라보며 말을 걸더군요. “괜찮아.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곧 지나 갈거야. 울지마.” 라고요.
오늘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지난호 ‘고정관념 깨기 – 디에고 리베라’ 편에 살짝 등장했었던 화가인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 입니다. 생전에는 ‘디에고 리베라’의 부인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오히려 리베라가 칼로의 남편으로 불릴 만큼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그녀의 그림을 볼까요?
이 그림은 ‘부서진 기둥’ 입니다. 그림 속의 그녀는 울고 있습니다. 눈으로만 우는 것이 아닌 온 몸에 못이 박힌 채 만신창이가 되어 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6세 때는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게 되고, 18세 때에는 그녀가 타고 가던 버스와 전차가 충돌하는 사고로 인해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으로 여겨질 만큼 끔찍한 중상을 입게 됩니다. 그 후 죽기 전까지 끝없는 육체적 고통에 시달립니다.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에는 배경이 황량하고 적막해서 그 곳에 서서 울고 있는 그녀가 고독해 보이기만 했습니다. 여러 번 더 보고 난 후 그녀의 꿋꿋한 성격이 느껴지며 고통스러운 현실을 잘 견디고 있는 것 같아 대견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살아있음이 행복하다.”
다음 그림들은 그녀의 자화상들입니다. 그림 속에는 마치 컴퓨터로 복사 붙여 넣기를 한 것처럼 같은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만 그녀 주변은 다 다르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배경이 실내가 되었다가 정글이 되기도 하고, 그녀의 뒤에 원숭이가 보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제 시선을 끄는 것은 모든 그림 속 인물이 감상자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마치 사람과 대면하고 있는 것처럼 또렷하고 강렬한 눈빛이 느껴집니다. 그녀의 시선이 느껴져 그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녀 생전에는 육체적으로 보통 사람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있었지만, 또한 그녀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 의 여성 편력으로 인해 정신적으로도 많은 고통도 받았습니다.
“나는 결코 꿈을 그린 것이 아니다. 나는 내 현실을 그렸다”
끝 없는 불행과 고통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세계적인 화가가 된 프리다 칼로. 절망 속에서 키운 그녀의 독창적인 작품은 사후에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영화와 패션 분야에서도 그녀를 따르는 팬 층이 생겨날 정도로 영향력이 있습니다.
어느 예술 학자는 ‘예술 학자의 입장으로 보면 그녀가 아이가 없는 게 다행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고통과 슬픔을 원천으로 그녀의 그림이 창작되었고, 지금 문화 유산으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좋은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물론 더 할 수 없이 좋은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이 이야기를 듣는데 굉장히 마음이 아프며 불편했습니다. 그림을 통해 느껴지는 그녀의 삶이 너무 생생해서 친한 친구의 불행을 지켜보는 것 마냥 마음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또 혼자 상상해봅니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행복했다지만 만약 지금 우리가 그녀의 그림을 볼 수 없을지라도, 그림이 아닌 그녀가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살았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사후에 그녀의 그림이 유명해질 것이란 사실을 몰랐으니까요.
우리도 너무 먼 미래와 목표를 바라보며 현실의 절망과 고통을 참으며 살기 보단 잠시 현재를 바라보며 주위의 소소한 행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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