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 화가는 나쁜 사람이에요.”
한 학생이 화집을 펼쳐서 보다 말고 갑자기 씩씩거리며 말합니다. 누군가 하고 보았더니 화가 프리다 칼로가 그린 오늘의 주인공 초상화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이자 화가인 프리다 칼로의 삶이 영화와 소설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유명해져 그녀의 대중적 인지도와 인기가 올라가면서 전세계적으로 ‘나쁜 남자’로 찍혀버린 화가.
소개합니다. 멕시코의 국민 화가, 벽화의 거장, 조금은 낯선 이름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 입니다. 피카소 못지 않은 많은 여성 편력으로 유명해 그를 향한 관심이 거의 사생활 이야기로 쏠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가에게 관심이 향해야 할 곳은 바로 작품이어야 할 것 같아서 이번 칼럼을 통해서 그의 진면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리베라는 어린 시절도 남달랐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에도 피카소 못지 않은 재능과 데생 실력이 뛰어나 12세라는 어린 나이에 미술 학교 입학이 허락되었습니다. 멕시코로 돌아와서 벽화 화가로 명성을 얻기 전에도 이미 그는 유럽에서 입체파 화가로 활동하며 유명했습니다.
리베라는 멕시코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작품을 통해서 멕시코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살아있을 때도 지금에도 여전히 그는 멕시코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리베라는 시케이로스, 오로츠코와 함께 멕시코의 벽화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문맹률이 높았던 멕시코에서 미술이 화랑과 미술관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생활 공간 속에서 가까이 접할 수 있게 한 벽화 운동은 20세기 예술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운동으로 꼽힙니다. 특히 리베라는 벽화를 이해하는 데에 언어가 필요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그림을 소장하기 위해 벽에서 캔버스로 이동했던 미술사의 흐름을 역행하는 벽화가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화랑과 미술관에 갇혀있던 그림들이 대중 속으로 옮겨간 것이지요.
그럼 이제 그의 그림을 볼까요? 이 그림은 ‘알라메다 공원의 일요일 오후의 꿈’ 입니다. 이 그림 속에서는 멕시코 독립 투쟁의 영웅들이 한꺼번에 등장합니다. 중앙에 낯익은 소년이 보입니다. 해골의 손을 잡고 있는 장난끼 있는 표정의 소년으로 리베라 자신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의 유년 시기의 멕시코는 정치적 혼란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초청을 받아서 그린 벽화도 있습니다. 그 중 디트로이트 미술학교에 그린 벽화 중 하나인 ‘엔진과 변속기의 생산 및 제조’ 입니다. 이 그림을 본 순간 그림을 빽빽이 채우고 있는 사람과 기계들이 계속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기계음과 사람들의 일하는 소리가요.
“내게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민과 희망을 아주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는 출신 배경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해주고더 나은 세상을 보게 해줘야 한다는 게나의 희망입니다.”
디에고 리베라 작품 중에 카라가 등장하는 그림들인 ‘꽃장수’ 와 ‘꽃축제’ 입니다. 벽화들은 스케일과 그의 스킬에 압도된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 그림들은 참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름다운 카라이지만 삶의 무게처럼 꽃을 지고 있고, 안고 있는 이들에게 살짝 버거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을 향한 화가의 따뜻한 연민이 느껴집니다.
프리다 칼로의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디에고 리베라’ 였지만 디에고 리베라의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그림’ 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리베라는 프리다 칼로가 자기 인생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림을 그렸다던 프리다 칼로와는 다르게, 남을 위해서 그림을 그렸던 그, 디에고 리베라를 향한 따가운 시선이 조금이라도 잠잠해지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칼럼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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