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보테로
수업을 하다 보면 가끔 새로 들어온 학생은 단번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쓸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보통 연필로 그리는 소묘 수업 중에 ‘이 부분을 좀 눌러야겠다.’라는 말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림을 손가락으로 혹은 연필로 꾸~욱 누르라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연필 선을 그 자리에 좀 더 쌓아서 명암 정리를 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표현입니다.
또 화실 밖으로 나가면 다른 사람들이 잘 못 알아 듣지만 화실 안에서만 상용되는 용어들도 있습니다. ‘선생님, 짤쭉이 어디 있어요?’
‘짤쭉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물감 튜브를 알뜰하게 짜기 위한 ‘물감 튜브 압축기’ 를 귀엽게 칭하는 말 입니다. 몇 년 전에 우연히 한 학생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해서 저희 화실 안에서는 하나의 고유 명사처럼 자리잡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부쩍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유행어 또는 화가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보테로’ 입니다.
‘앗? 보테로다’
‘형태를 보테로처럼 잡았네.’
한 학생이 기초 수업을 하는 도중 스케치를 하다가 들은 말 입니다. 과연 무슨 뜻일까요? 가만히 있는 정물을 그렸음에도 ‘보테로’ 그림의 느낌이 살아 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다시 그려야 하지만, ‘보테로’ 와 닮은 매력 덕분에 지움을 당하지 않고, 아래 편에도 ‘보테로’ 라고 적혀져서 남게 되었습니다.
이 쯤되면 ‘도대체 ‘보테로’ 가 어떤 화가지?’ ‘어떤 그림을 그렸지?’ 하고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소개합니다. 그림 속 사람, 동물, 정물 등을 모두 통통하게 그린 콜롬비아의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 입니다.
보테로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그림 속 인물들이 뚱뚱하긴 하지만 달라진 비례에서 오는 거부감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아서 기본기가 참 튼튼한 화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거장들의 형태와 색에서 나의 유형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단지 뚱보를 그린 것이 아닙니다.”
보테로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곳은 미술관이라고 합니다.
그 곳에서 보테로는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도 하고 연구도 하면서 그림 공부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그럼 이제 보테로의 그림을 볼까요? 그의 그림들을 보면 우울하다가도 웃음이 나올 수 있을 것 처럼 유머감각이 잘 녹아 있습니다. 뚱뚱하고 귀여우면서도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보테로의 인물들을 보다 보니 항상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역시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집니다. 저 세계에 간다면 저 혼자 날씬하겠죠? 다이어트에 애쓰지 않아도 되고 이래저래 행복할 것 같습니다.
다른 그림들도 볼까요? 이 그림은 너무도 낯이 익죠? 맞습니다. ‘모나리자’ 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신비의 모나리자가 어느새 뚱뚱하고 뚱해져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다음 그림은 ‘벨라스케스를 따라서‘ 입니다. 이 귀여운 작품도 낯이 익죠? 맞습니다. 예전 ‘나의 화가 I – 벨라스케스’ 편에서 소개했었던 ‘흰 옷의 왕녀 마르가리타’ 를 보테로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사람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만돌린이 등장하는 정물화를 보니 사물들이 터질 듯이 통통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말랑말랑할 것 같기도 하구요.
지금은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받고 있는 보테로이지만, 사실 그가 막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때에는 그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아직도 그의 작품을 ‘키치’ 혹은 ‘B급’이라며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가지 않은 어려운 길을 자신의 소신대로 꿋꿋이 묵묵히 간 보테로. 다양한 소재와 주제들을 자신 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확립하여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죠. 보테로처럼 그려도 좋고, 쉴레처럼 그려도 좋고, 아니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스타일을 그려도 좋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공장에서 나오는 물건처럼 획일화되지 않게 자신 만의 개성이 살아 있는 그림을 그리며
그 과정 자체도 즐기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칼럼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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