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장이 과거에 은행 지점장을 했건, 노가다 판에서 십장을 했건, 현시점에서 그것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하지는 못한다. 그의 직장동료와 학교 동기들이 과거의 흔적이 되어 현재를 잠깐이나마 먹여 살려 줄 수도 있겠지만 그의 신용은 이미 은행을 나온 후 몇 년 동안 정수기와 보험을 팔면서 다 이용해버렸기에 동료들도 그들의 전화기에 김사장의 이름이 뜨면 받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가 한국에 살면서 더 이상 동료나 동기들의 도움을 받아 무엇을 하기란 불가능 하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베트남을 선택한 이유는 이런 궁핍하고 비젼 없을 것 같은 중년의 한국 삶이 한 몫 하기도 했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직장시절 베트남에 잠깐 여행 갔을 때의 가이드가 SNS로 연결되어 베트남에 가라오케 사업을 제안 했기 때문이다.
김사장도 가라오케는 아무나 하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가이드는 설득력이 있었고 그가 시장조사차 베트남에 왔을 때 그 가라오케는 비어있는 룸이 없을 만큼이나 성업 중이었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부인의 만류로 많은 고민을 했지만 더 이상 한국에 있다가는 노년기에 파고다 공원이나 장충단 공원에서 바카스 할머니나 찾는 추태의 삶을 살다가 죽을 것 같은 생각이 지배적이었기에 결심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는 내려 놓지 않으면 다른 것을 들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과거의 삶이 현재를 만든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한국에서의 과거가 베트남에서까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에 과거 은행 지점장 시절의 모든 권위를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니 그는 이미 보험과 정수기를 팔면서 더 이상 내려 놓을 것이 없는지도 몰랐다.
그가 가족이 살 수 있는 몇 개월의 생활비만 남겨 두고 모든 것을 정리하여 가라오케를 하기 위에 베트남에 내리기로 결심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라오케를 소개한 가이드가 SNS로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계약 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그가 예약금 1만불을 입금 시키고 떤선엿 공항에 내렸을 때 가라오케를 연결시켜준 가이드는 마중 나와 있었으며, 그는 그의 짐을 택시에 싣고 탕롱의 깊숙한 골목 끝자락에 있는 하숙집에 내려 놓았다.
김사장은 우기가 깊숙할 쯤 택시를 타고 베트남의 탕롱이라는 축축한 하숙집에 급하게 내렸다.
정과장은 2주 전 베트남 근무를 발령 받았다. 사실 정과장이 2년전 신설된 베트남지사 발령을 희망한 것은 1년 전의 일이다. 그는 이미 2년 전부터 외국 지사 근무를 위하여 퇴근 후, 아무도 몰래 영어 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일요일에는 필리핀인 강사를 불러 회화를 공부하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외국 지사발령을 몇 년 전부터 준비했던 이유는 올해 9살된 딸과 이제 6살이되는 아들 때문이다. 외국지사에 근무하면 사택은 물론 외국인 학교에 다닐 수 있는 학비를 모두 지원해 주기에 2명 모두 어렵지 않게 영어를 마스터 할 뿐만 아니라 재수가 좋으면 특례의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1개월전 그룹 기조 실에서 인터뷰 지시가 내려왔고 그가 2년동안 밤마다 배운 영어는 몇 마디 밖에 답변 되지 못했지만 다행히 같이 인터뷰한 다른 계열사 직원들은 몇 마디 마저도 대답하지 못했기에 기회는 그에게 돌아왔다.
“발령일로부터 소속은 베트남 법인이 됩니다. 과장급이니 숙소는 3,700$까지 지원될 수 있고, 급여와 별도로 주재수당은 3,500$이 지급됩니다. 기사가 있는 차량이 지원될 것이고 2명의 자녀까지는 국제학교 또는 국제 유치원의 비용이 실비로 지원됩니다.”
물론 가족모두가 이사할 경우에는 컨테이너 비용 일체와 비행기표가 지원 될 것이며 그룹인사팀장의 설명은 길었지만 말의 마디 마디는 짧았다.
그렇게 그가 3년기간의 발령을 받고 가족보다 2주 먼저 떤선엿 공항에 내렸을 때 공항에는 베트남 지사의 통역원이 그룹마크가 새겨진 A4용지에 ‘정OO 과장님’ 라고 적혀있는 팻말을 들고 서 있었고 이노바를 몰고 온 기사는 그의 짐을 받아 대신 차 안에 실었다. 그리고 그는 축축하지만 먼지 없는 날에 푸미흥의 어떤 고급 빌라 촌에 여유 있게 내렸다.
오늘도 떤선엿 공항에는 두 가지 경우의 사람들이 내리고 있습니다.
정과장의 베트남 삶은 셋팅되어 있을 것입니다. 내일 아침이면 그의 숙소 앞에 운전기사가 몰고 온 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그의 사무실에는 그가 앉을 심플하고 고급스러운 책상과 의자가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내일 먹을 점심 식당까지 미리 예약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주말이면 골프장은 부킹되어 있을 것이며 그가 입고 갔다 온 옷들은 메이드가 매일 세탁하여 다려 놓을 것입니다. 그의 베트남 삶은 이미 셋팅 되어 있을 것 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주재원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반면 김사장의 베트남 생활은 셋팅되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하숙집의 방은 생각보다 좁을 것이며 조그만 TV가 방 구석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침마다 주인집 식모가 차려 놓는 밥상은 어제와 똑 같을 것이며 아침식사 후에는 갈 곳이 없어 하루 종일을 방에서만 지내야 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김사장의 계획대로 가라오케를 할 수 있을지 할 수 없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왜냐하면 베트남 생활은 외국에서 사는 것이고 외국이라는 곳은 살아온 기간만큼만 무엇을 허락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고 행운스럽게 김사장이 계획대로 가라오케를 할 수가 있다고 한들 장사가 되고 안 되고는 두고 볼 일입니다. 왜냐하면 김사장이 시장조사차 방문했을 때와 상황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김사장의 베트남 생활은 셋팅 되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장기적으로 교민이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셋팅 되어진 정팀장의 베트남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셋팅되어 있지 않은 교민 김사장이 베트남에서 살아남는 과정을 지켜볼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록으로 남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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