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5,Monday

고정관념 깨기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대학 시절, 실기실에서 모델 수업이 끝나면 그 실기실 안의 모든 사람의 그림을 한 쪽 벽에 맞추어 펼쳐 세워놓곤 했습니다. 그림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놓고 보니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같은 모델을 그렸기에 그림 속의 모델의 모습은 모두 실제 모델과 비슷하거나 거의 똑같지만 크게는 얼굴에서 혹은 몸매나 다른 특징들이 그 그림을 그린 사람과 닮아있었습니다. 코가 유난히 낮았던 학생 속 그림의 모델은 실제 모델보다 코가 살짝 낮게 표현되어 있었고, 눈이 몰려 있는 학생의 그림 속에는 눈이 몰려 있거나 심지어 조금 통통한 학생의 그림 속 모델은 실제보다 통통하게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여러 명이 같은 모델을 보고 그린 그림이지만 따로 서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제각기 다른 그림이 되어 자신을 그린 주인들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칼럼의 주인공의 그림을 봤을 때, ‘당연히 이 화가는 목도 길고, 코를 포함한 얼굴도 길고, 눈동자도 흐릿할꺼야.’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미술의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으신 분은 벌써 눈치채셨을 것 같습니다. 소개합니다. 목이 긴 여성 인물화로 유명한 오늘의 화가 ‘모딜리아니’ 입니다. 경험을 토대로 예상해봤지만 제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화가 ‘모딜리아니’ 는 그의 그림처럼 얼굴이 길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의 외모는 미술사에서 가장 잘생긴 화가로 손 꼽힐 만큼 잘생겼습니다.

길거리의 거지도 잘생겼다는 이탈리아 태생이라서 그런 걸까요? 그래서 그런지 ‘몽파르나스의 왕자’라 불리며 그의 주위에는 항상 여자들이 많고 인기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럼 이제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볼까요? 실제 사람 같지 않은 길쭉한 얼굴이 있는 그의 그림들이 이상하고 기괴해 보일 법도 한데 이상하기는커녕 보는 사람을 끝없이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림마다 모델의 개성이 잘 강조되어 표현되어 있고 색채 또한 분위기 있게 어우러져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의 그림 속에 살아 있습니다.

첫 번째 그림은 ‘잔느 에뷔테른느’ 입니다. 그의 연인이자 아내, 그리고 뮤즈인 ‘잔느’를 그린 그림입니다. 아내를 향한 그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어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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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작품은 ‘안토니아’ 입니다. 그의 그림 하면 항상 길쭉한 얼굴의 작품들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동그란 얼굴도 있네요. 하지만 우뚝 솟아있는 기둥 같은 긴 목이 그의 그림이라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다음은 ‘젊은 롤로트’ 라는 작품입니다. 그의 그림들은 눈동자가 없기로 유명한데 이 그림은 눈동자를 그려 넣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장 콕토’ 라는 작품을 보니 그가 항상 여성만 그린 화가인 줄 알았는데 남성 인물화도 그렸나 봅니다.

모딜리아니는 사실 조각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회화보다 재료비가 많이 들어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어렸을 적부터 몸도 약해서 도저히 조각을 할 수가 없어 다시 회화로 전향합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원시 조각에 매료되어 타원형의 긴 얼굴, 길쭉한 코, 동공이 없는 눈, 목과 부드럽게 연결된 어깨를 가진 인물화를 그리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단순한 형태와 색으로 표현된 그림을 보고 있다가 보면 조각을 그린 그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모딜리아니에 관한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아 그의 삶을 미화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서 제 마음대로 예측을 해봅니다.

화가가 살아있다면 화가에게 묻거나 대화를 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하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마음대로 상상해봅니다. 전시를 가거나 작품을 볼 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바로 작품과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어떤 작품이던 간에 다른 사람들이 부여하는 의미나 해석보다는 작품의 진정한 의미는 그 그림을 그린 화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요. 하지만 이제 그를 실제로 만날 수 없으니 혼자 추측해봅니다. 모딜리아니의 외모가 그의 그림처럼 얼굴이 길거나 코가 길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의 그림을 볼 때 전체적으로 머리 속에 떠오르는 느낌이 있습니다. 물론, 아주 개인적인 제 느낌입니다. 바로 ‘귀여움’ 입니다. ‘왠지 이 그림들을 그린 사람은 성격이 귀여울 것 같다.’ 하고요.

미술 작품 감상을 할 때 꼭 배경 지식을 달달 외우며 그 틀에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생각 나는 대로 느끼며 다가간다면 더 한층 즐겁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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