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미흥으로 이사한 소라쇼핑에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고 나서 베트남과 한국 직원들 사이에 일어나는 미묘한 갈등이나 마찰로 인한 파열음을 보고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한국인 직원 위주의 업무 시스템을 운영하다가 2달 전부터 업무 시스템을 베트남 직원 위주로 바꾸고 아예 베트남 직원을 관리 매니저로 승격시켜놓고 평상의 업무에 관한 한 베트남 매니저의 지시대로 진행하도록 하였더니 예상 못한 반응이 나옵니다. 한국직원들의 베트남 매니저에 대한 반발이 그것입니다. 아침 8시에 열리는 전체 미팅에서 서로 간의 보고가 차이가 나고 업무 사고에 대한 책임도 서로에게 미루며 상대에 대한 불신을 드러냅니다. 그래도 내버려 둡니다. 스스로들 조정하고 합의하여 접점을 찾아 내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 조정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을 적어볼까 합니다. 이들 간의 자체 조정은 참 쉽지 않습니다. 서로 상대에 대한 인정에 인색합니다. 그 시작은 통상적으로 한국인 직원들의 행동에서 비롯됩니다. 한국직원이 한국인 고객과 원활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 한국직원이 베트남 직원들보다 우수한 점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직원들은 베트남 매니저의 업무 지시를 달가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불쾌한 표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베트남 직원들이 일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가벼워 책임있는 일을 맡기기 힘들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베트남인들의 직업의식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업무시간이 끝나서도 잔무를 처리하느라고 스스로 근무를 더하는 직원은 적어도 소라에서는 베트남 직원들입니다. 이렇게 베트남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음에도 한국인 직원들이 반발을 하는 이유는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잠시 짚어보았는데 아마도 한국인의 배타성과 국력의 차이들 개인의 역량을 저울질하는 물질 만능주의의 소산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런 불공정한 평가는 베트남인들에게 여과없이 전달이 되고 그로 인해 베트남 직원들의 불평이 생겨납니다. 이들 역시 한국인직원의 불공정한 태도에 대하여 개인 당사자에게 불평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체 한국인의 행태로 보고 전체 한국인이 그렇다고 치부해버리고 맙니다. 양쪽 다 억울한 일이 일어나는 셈입니다. 왜 이렇게 포용하지 못하고 서로 우위에 서려는 현상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이 원인으로 보입니다. 이들을 위해 참고가 될 만한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논어에서 나오는 공자의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해석은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하다” 라고 하는데, 이에 대하여 성공회대학의 신영복 교수는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 들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 하고 공존하지 못한다.” 라고 해석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신교수의 해석이 이 문구를 더욱 공자님의 말씀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이 글은 앞 문장과 뒤 문장이 서로 다른 반어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和而不同, 同而不和), 전자의 해석은, 앞문장에서 나오는 글자의 뜻과 뒷 문장에 나오는 동일한 글자의 해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좀 의구심을 돋게 만듭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습니다. 다 비슷한 의미가 될 수 있으니까요. 앞의 해석대로 라면 만약 우리가 이곳, 베트남에서 서로 싸워댄다면 베트남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할 소리인 것 같고(소인은 동일함에도 화목하지 못하다), 뒤의 신영복교수 해석은 베트남에 사는 교민들이 반드시 새겨 마음에 담고 행동하여야 할 문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 들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사례에서 보이는 한국과 베트남 직원들간의 마찰과 그에 따른 한국 직원의 행태가 바로 공자가 말한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지배하려 드는 행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이곳에 나와있는 한국인들보다 베트남 사람들이 오히려 다른 문화를 인정하고 그 다양성을 포용하는데 훨씬 익숙해 보입니다. 이들이 프랑스로부터 장기간 지배당한 역사가 그런 수용의 문화를 만들었겠구나 싶지만 천성적으로 베트남사람들은 사교적입니다. 그런 사교적인 정서가 다른 낯선 문화도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현상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반면에 좁은 한반도에서 외국인을 상대한 경험이 적은 한국의 일천한 외교 역사가 이런 다름의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 30대 초반에 처음으로 유럽 출장을 갔을 때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공항에서 내려 벤츠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는 과정부터 충격이었죠. “여기는 벤츠가 택시다” 로 시작하여 좁은 골목길에 돌로 만든 도로와 수백년이 넘은 집들이 아직도 변형없이 사용되는것을 보고 그들이 자신의 역사를 어떻게 관리 보전하는지 느낄 수 있었고, 그 좁은 길을 아직도 말이 끄는 마차가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것을 보니 여기가 도대체 어떤 시대의 어느 곳인가 잠시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리는 현상마저 일어납니다. 거기에 독일에서 스위스나 벨기에 등 인접국가를 넘어갈 때 여권도 보여주지 않고 손만 흔들며 인사를 나누고 그대로 국경을 넘어가는 것을 보고 유럽은 원래 같은 문화를 지닌 공동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그렇게 심심하게 국경을 넘어 고작하는 일이 점심을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독일로 돌아가는데 역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 주는것으로 국경 법무 통과를 대신합니다. 이런 유럽의 개방된 시스템을 보며 우리가 우물안에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또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은 넓고 다양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좁은 한반도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함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다행히도 많은 한국인이 지금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며 한민족의 부흥의 역사를 이곳에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는 역사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다시 한번 새겨보고 개선해야 할 점을 꼽는다면 바로 다양한 문화와 사고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열린마음>입니다.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하여 베트남의 경제부흥에 도움을 준다 해도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이들을 인정하지 않는 한 베트남인들의 눈에는 우리는 그저 돈 벌러 온 외국인이라는 인식에서 헤어나기 힘들 것입니다. 이왕 공자말씀이 나왔으니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붙이고 끝냅니다. 己所不欲勿施於人 기소불욕물시어인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된다. 내가 상대방에게 굽신거리고 싶지 않으면 상대방도 나에게 굽신거리는 것을 바라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