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리크 바지유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가끔 이런 장면들이 나옵니다. 중요한 대회나 오디션을 앞둔 주인공의 발레 슈즈 속에 누군가 압정을 넣어 놓아서 모르고 신다가 발을 다치거나, 요리 대결이 열리기 전날 주인공의 재료가 없어지거나 못쓰게 망가져 있고, 미술 작품을 제출하기 전에 누군가가 몰래 작품을 망치거나 찢어버리는 장면 등등.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주인공들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정정당당히 대결을 할 경우 실력으로는 승산이 없으니까 ‘질투심’ 과 ‘욕심’에 사로잡혀서 치사한 방법을 써서라도 이기려고 하는 경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항상 결과를 보면 우여곡절을 끝에 주인공들은 늘 이기곤 하죠.
과연 이러한 일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등장하는 일일까요?
오늘 소개시켜드릴 화가는 이런 질투심과 시기심 대신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화가입니다. 이 화가가 없었다면 인상주의의 등장이 늦었거나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소개합니다. 모네와 르누아르와 함께 야외에서 같이 풍경화를 그리며 작업했던 친구이지만 그 둘에 비해 비교적 많은 분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 ‘프레데리크 바지유’ 입니다.
자, 그럼 먼저 바지유의 그림을 볼까요?
이 작품은 ‘콩다민 가에 있는 바지유의 아틀리에’ 입니다.
“제 집엔 지금 글레르 화실 시절 같이 배웠던 한 친구가 숙박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화실이 없는 친구죠. 이름이 르누아르인데, 그 친구는 대단히 열심히 작업합니다. 내 모델들을 같이 쓰고 있는데, 그 비용에 보태라며 뭘 내놓기까지 한답니다.”
1867년 바지유가 부친에게 쓴 편지
다른 친구들보다 비교적 부유했던 바지유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가 있으면 큰 공간을 빌려서 화실을 같이 쓰며 재료도 빌려주고, 그들의 작품을 구입하면서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림 속 작업실 속 벽에는 그의 그림 뿐만 아니라 모네와 르누아르의 그림도 함께 걸려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니 마네의 모습도 보이고 모네와 르누아르로 추정되는 인물들도 보입니다. 이젤에 서서 그림 설명을 하는 사람은 바지유네요.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제 아틀리에를 그렸는데,
그림 속의 제 모습은 마네가 그려주었습니다.”
마네를 존경했던 바지유는 존경의 의미로 마네에게 자신을 그려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다음 작품은 바지유의 ‘임시 야전병원’ 입니다. 그림 속의 낯익은 인물이 보이시죠? 바로 그의 절친 모네입니다. 사고를 당해 다리가 부러진 모네를 모델로 그린 그림입니다. 다친 모네가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모델로 그렸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제가 마치 바지유가 되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네요. 말을 걸면 모네가 바로 대답을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은 ‘가족 모임’ 입니다. 그를 그의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살롱전에 입선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그의 대화에서 겸손함 또한 엿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분명 무슨 실수가 있었을 거야.”
이건 실수가 아니야. 바지유 자네는 우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게 분명해.”
이렇게 재능 많고 넉넉한 마음씨를 가진 그가 어이없고, 안타깝게도 인상주의 시대가 열리는 것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1870년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이 일어나자 자원입대로 전쟁에 참전한 후 전사합니다. 그 때가 그의 나이 29세였습니다.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간혹 ‘이기심’과 ‘질투심’에 사로잡혀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을 만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내 친구가 나보다 더 잘 그리면 어떡하지’ 하면서 안절부절하고,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난 쟤 보다만 잘 그리면 돼’ ‘우리 학교에서 내가 제일 잘 그려야 돼’ 하고 아직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꽉 막히고 좁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나보다 더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에 대한 부러움, 시샘, 질투라는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감정을 어떻게 표출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앞서 가는 사람의 뒷덜미를 잡아채서 자기 옆이나 뒤에 두려는 사람과 자신이 노력해서 그 사람 옆에 서려는 사람은 삶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확연히 다릅니다.
미술, 더 나아가서 예술은 경쟁의 도구가 아닙니다. 세상에 잘하는 사람도 많고 재능 많은 천재들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날 때마다 질투심에 사로잡혀 그들의 작품을 망치고 그들의 삶을 방해할 것인가요? 그들을 보면서 자신을 더욱 발전시키며 그들과 대등하게, 자신 있게 웃으며 친구가 되는 것이 더욱 즐겁지 않을까요?
자신보다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마음은 아프겠지만 웃으면서 박수를 보낼 줄 알며 끊임없이 노력하여 자신만의 색깔을 찾기를 나의 제자들에게 기대해 봅니다.
프레데리크 바지유 Frédéric Bazille
1841.12.6 ~ 1870.11.28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초기 인상주의의 대표적 화가였으나 1870년 보불전쟁 당시 29세의 나이로 전사함으로써 1874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인상주의의 만개를 경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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