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에서 새로운 만남을 가질 때마다 묻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다 베트남에 오시게 되었나요?
사람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최종 선택은 본인이 한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서 생각합니다. 훗날 이 분은 그 선택을 후회할까, 아니면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칭찬할까?
생각해보면 인생은 수많은 갈림길의 선택입니다. 그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겠지요. 요즘 흔히 말하는 다 차원 우주(다중 우주)에 대한 이론을 대입한다면, 그 때 다른 선택으로 만든 삶이 다른 차원의 우주에 있다고 하던데, 그 삶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자신의 선택이 우주를 바꾼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게 들리기도 합니다.
베트남에 살고 계시는 한국인들은 적어도 자신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줄 큰 선택을 한 사람들입니다. 베트남의 생활이 성공으로 이어진 사람은 좋은 선택을 한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덜 좋은 선택을 한 셈이죠. 결과적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좋지 못한 결과를 만든 사람이 과연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까요? 또 반대로, 좋은 결과를 가져온 사람이 다른 선택을 했을 때는 좋지 못한 삶을 만들었을까요?
그 사람들이 다른 선택을 했을 때 펼쳐진 다른 우주에서 펼쳐진 삶은 어떠할 까요? 과연 그들은 그곳에서는 정답을 찾았다고 할까요? 그곳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모습의 삶을 알 수 없다면 판단자체가 무의미한 일입니다.
저 역시 어쩌다 베트남을 선택했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잡지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지 참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이 선택이 과연 잘 한 일이지 혹은 허술한 선택으로 나를 가둔 일인지 아직도 정말 모릅니다.
베트남에서 보내는 중년 이후의 시간은 독특합니다.
고향이 아닌 곳에서 노년을 맞이한다는 건, 고국에서 삶을 보내는 이들은 잘 모르는 고독과 자유를 동시에 품는 일입니다. 젊은 날의 열정이 조금씩 잦아들고,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음을 인정하게 되는 시점이 오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만큼 살아온 내 삶, 이게 과연 정답이었을까?”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 늘 불완전하고, 어떤 길을 선택하든 늘 불안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견디고 걸어왔기에 그 길은 결국 내 삶의 답이 됩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답은 없겠지만, 그렇기에 나는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삶은 결국 정답지를 찾는 시험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만의 문장을 써 내려가는 긴 여정입니다.
그 문장이 좀 서툴러도, 비틀려도 용납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내가 살아온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판단은 언제나 스스로의 몫입니다. 헛된 후회로 자신을 지옥을 끌고 갈 것인지,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오늘의 나를 따뜻하게 바라볼지는 오롯이 자신의 선택입니다.
어쩌면 저도 지금 정답이 없는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정답을 찾느라 애쓰는 대신, 오늘도 나만의 글을 쓰겠습니다. 내가 어쩌다 글쟁이가 되어 돈 안되는 삶을 살아가는지 후회하는 대신, 글 쓰는 재미로 일상을 채우며 나름대로의 보람으로 하루 하루를 쌓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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