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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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의 세월동안 만들어낸 300호, 이제 스스로 자족하는 책을 만드는 대신 독자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교민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책을 만들어야 할 도약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경고의 소리로 들려온다. 그런 경고와 함께 스스로 가슴을 열어 내 심장의 소리를 듣고자 한다.

베트남에서 교민잡지를 처음 만들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즉, 하고 싶어서 한 것이다.
글도 쓰고 싶고, 베트남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사회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교민들의 소통 창구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시작했다. 그리고 느꼈다, 이런 출판 관련 일을 베트남에서 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이라는 것을.

30여 년 전 직장에 사표를 내고 독립을 할 때 완전히 무일푼이었다. 그래도 두렵지 않았다. 직장생활이라는 안정된 직선도로를 떠나 독립이라는 곡선도로에 무작정 들어섰다. 그때가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의 하나였다. 그러나 내 판단이 옳다고 믿었기에 어려움이 있어도 계속 앞으로 나갔고 결국 지금까지 자기 사업을 하며 호구책을 마련해왔다. 그리고 또 다른 전환점, 2013년 20년을 이어오던 무역 일을 때려 치우고 잡지를 시작했다. 그때는 그 시점이 또 다른 전환점이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며 아침에 희망을 갖고 집을 나섰고 보람을 안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매 2주마다 새롭게 나오는 잡지를 만나면 마치 작은 선물을 손에 들고 기뻐하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미소를 흘리며 지내왔다.
그러나 이렇게 10여 년의 세월을 지나자 개인적으로 슬그머니 꾀도 피어나고, 오랜 세월 아둔한 머리를 짜내며 마감에 쫓겨가며 써대던 이런 저런 글에 치여 사는 것도 지겨워 지난 3월부터 일방적으로 메인 칼럼으로 내세운 중언부언 칼럼의 기고 중지를 선언하고 3개월째 안식 달을 보내고 있던 차에, 300호가 나왔으니 자축 메시지라도 쓰라는 편집부의 명에 따라 다시 자판에 두 손을 올려 놓는다.

벌써 300호라니, 13년 전 처음 시작할 때 이렇게 오랜 시간을 이 일에 묻혀 살 줄 몰랐다.

교민잡지, 생활정보지라는 성격에 비판과 감시가 가능한 언론의 역할을 한답시고 좌충우돌하며 각 교민단체와 공관과도 각을 세우며 진실 보도를 하자는 의지로 이런 저런 잡음을 감수했지만 이제는 많은 교민단체가 생겨나며 교민사회도 스스로 자리를 잡고 순조롭게 돌아가는 덕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자연스럽게 축소되자 이제는 감시를 통한 진실보도라는 초심이 슬그머니 뒤로 밀려나며 자연스럽게 격한 보도로 인한 그들과의 갈등도 많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동안 그 세월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잡지 발간 초기, 총 영사관의 개천절 행사에 영어와 베트남어만 사용하는 진행을 보며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를 어떻게 외국어로 올리는가 하는 비판 칼럼을 썼다가 당시 총영사로부터 잡지 폐간을 불사하겠다는 경고를 듣고 황당해 하던 일, 한국학교 감사를 통해 한국학교의 어설픈 관리상태를 폭로했다가 학교 관련자로부터 엄청난 항의를 받았던 일, 호찌민 한인회의 정관 변조에 대한 폭로 기사를 썼다가 한인회로부터 수 차례의 명예 훼손으로 고소를 당하며 경찰서를 다니던 일,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않은 한인회장의 행실에 대한 칼럼을 썼다가 개인적으로 한인회장으로부터 폭언과 행패를 당한 일, 카지노에서 재산을 다 털어버리고 자살을 한 교민의 사건을 듣고 그 달부터 카지노와 유흥업소 광고에 대한 일방적인 중단을 선언하며 빼버려 광고 수입의 40%를 날리며 한동안 회사의 재정을 흔들어버리던 일, 하노이 카지노 업주가 한국에서 원정 온 조직 폭력배들의 협박으로 카지노 권리를 강탈당한 사건을 보도하자, 한국의 모든 일간지들이 본지 기사를 인용하여 보도하는 바람에 한국 검찰이 조사를 시작하여 그들을 잡아들이고, 그들 조직으로부터 협박 당하던 일, 그리고 그 일을 기화로 <짜오베트남>이라는 이름을 폐하고 <씬짜오 베트남>이라는 이름을 개명한 일 등등, 지난 10여 년의 세월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이 진짜 주마등처럼 다가오고 또 사라져 간다.
그러나 그러한 역경들이 본지를 강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 역경조차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조건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런 과정을 지나고 나니 최근에는 너무나 조용하다. 너무 심심해서 일에 흥미를 잃어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업이나 인생 모두 가장 위험할 때가 별다른 문제 없이 잘 나갈 때라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은 세월을 살며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힌 교훈이다. 자전거는 달릴 때가 가장 안전하고 멈춰서는 순간 넘어진다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니던가?
지난 수년 동안은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불안감을 던져 준다. 또한 너무 오랜 세월 이 일에 매달려 왔다는 것도 삶의 긴장감을 잃어버리는 듯하여 두렵기마저 하다.
그런 불안이 스며들며 이제 또 다른 전환점이 다가왔다는 것을 직감한다.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인데 “결정은 단호하게 행동은 신중하게” 하라는 성현의 말씀을 되새기며 무엇을 어떻게 변화를 줄지 고뇌를 해야 할 시간이 아닌가 싶다.

‘한 쪽 문에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말을 믿기에 변화를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또 한편 이렇게 별다른 고뇌 없이 직선도로를 달리는 듯 잡음 없이 흘러가는 사업에 변화를 준다는 것이 과연 현명한 짓인가 하는 갈등도 밀려든다.
그러나 세상에는 직선도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아니 곧, 속도도 줄이고 시야도 넓히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곡선도로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경험상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직선도로에 익숙해진 안락한 마음으로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곡선도로를 만날 때 과연 이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 뭔가 준비해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그저 눈만 크게 뜨면 될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많은 분들이 (씬짜오 베트남)을 통해 베트남을 배우고 있다며 찬사를 들려준다. 그러나 그런 찬사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지 말고,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더욱 고삐를 당겨야 할 시기라는 사실을 300이라는 숫자로 알려주는 것은 아닌가?

13년의 세월 동안 만들어낸 300호!
이제 스스로 자족하는 책을 만드는 대신 독자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교민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책을 만들어야 할 도약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경고의 소리로 들려온다. 그런 경고와 함께 스스로 가슴을 열어 내 심장의 소리를 듣고자 한다.

10여 년 전에 좋아하던 일을 아직도 좋아할 수 있기를,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수 있기를.

작성자 : 한 영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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