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5,Monday

고정관념 깨기. 한국 전위 미술의 선구자 김구림


가끔 전시를 보다 보면 힘이 쭉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 작품의 작가에게나 다른 감상자들에게는 그 작품이 좋은 작품일 수도 있겠지만, 저에겐 그 작품이 그저 죽은 작품으로 느껴질 때입니다. 회화나 조각 작품들 보다는 설치 미술과 행위 미술(퍼포먼스) 작품들을 만날 때 이런 기분을 더 많이 느끼기도 합니다.

아마도 설치 작품과 행위 미술에 대한 제 기대치가 더 높아서 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저의 작품 해석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전시회를 보다 보면 가끔 유명 작가 또는 유행을 쫓아서 흉내내기에 급급한 아류의 느낌을 풍기는 작품, 작가의 고민과 생각이 담기기 보단 전시 참가를 위해, 전시 경력에 한 줄이라도 더 추가하기 위해 급하게 가져다 놓은 느낌을 주는 작품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꼭 설치 미술과 퍼포먼스가 아니라도 회화와 조각에서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과정과 개념이 중요한 현대 미술이라지만 재미도 없고 관심 없는 이야기를 억지로 강요하는 느낌을 주는 이런 죽은 작품들을 마주할 때면 ‘안구정화’를 위해 그 전시실에서 한시 바삐 뛰쳐나가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생생히 살아 있는 작품들을 만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작품이 스스로 내는 목소리, 감상자를 잡아 끄는 힘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만날 때 입니다.

오늘 칼럼의 주인공의 작품들을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 너무 신이 나게 감상을 하느라 전시실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릅니다. 오늘 칼럼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작품 하나하나에서 힘이 느껴지는 ‘한국 전위 미술의 선구자’ 또는 ‘아방가르드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구림 작가입니다.

김구림 작가는 회화와 판화, 조각, 설치미술, 오브제미술, 대지미술, 비디오아트, 퍼포먼스, 메일 아트, 무대미술, 연극의상디자인 등의 한 사람이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폭넓은 활동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예술이란 기술이 아니었어요. 사상과 철학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는 거였습니다.”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교수들을 보며 미술 대학에서 제대로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자퇴한 후 헌책방에서 우연히 외국 잡지를 보며 독학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가 시도한 다양한 작품 중에는 유독 한국 ‘최초’ 라는 타이틀을 가진 작품이 많습니다.

“시대를 앞서 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외로운 일입니다. 예술가에게는 특히 더 그렇죠. 다음 세대가 오늘의 작업을 이해하고 가치를 인정하리라고 믿더라도, 동시대의 냉담한 반응은 아픈 상처로 남기도 하지요.”

김구림 작가는 1958년 첫 개인전을 가진 후 많은 활동을 통해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습니다. 그리고 작품이 조금씩 팔려나가자 안주하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이건 내가 매너리즘에 빠진 증거” 라며 뼛속까지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그답게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미국에서도 많은 활동과 당대 작가들과의 교류를 하고, 1992년에는 백남준 작가와 2인전을 엽니다. 하지만 한국으로 귀국했을 때 국내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2012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기획전에 초대되어 잭슨 폴록, 데이비드 호크니 등 세계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과 같이 전시에 참여하며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그의 진가를 알아보게 됩니다.

그럼 이제 그의 작품들을 볼까요? 첫번째 작품은 ‘현상에서 흔적으로_얼음과 빨간 보자기’ 입니다.
이 작품은 1970년 경복궁 미술관의 전시를 위해 준비했던 작품이었으나, 미술관 바닥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다른 작품이 얼음물에 손상이 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출품 거부를 당합니다.

이 작품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녹아 내리고, 얼음을 싸고 있는 빨간 보자기는 젖었다가 무너져 내린 후 마르는 과정을 보여주며 마지막에는 흔적처럼 빨간 보자기만 남아 있게 됩니다. 알고 보니 물이 흐르는 것에서 끝이 아닌 그 작품이 녹아서 벽에 부딪히고 미끄러지다가 마당에 있는 흙으로 스며드는 것까지 계산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할 생각을 했을까요? 당시 작품계획서를 받아 든 당황했을 큐레이터가 상상되어 웃음이 나옵니다.
다른 작품은 자연을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로 생각한 작품인 ‘현상에서 흔적으로’ 입니다. 김구림 작가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전날 강둑에 혼자서 도랑을 하나하나 파고, 다음날 불을 질렀습니다. 그 도랑을 따라서 불에 탄 네 개의 삼각형이 드러나게 한 것 입니다. 불에 탄 것으로 끝이 아닌 시간이 지나서 다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으로 작품이 완성되었습니다.
작품 속에 나타난 의미와 작업 과정은 진지하면서도 살며시 드러나는 그의 앞서가는 감각에 감탄이 나옵니다. 그 당시 신문에서는 ‘그는 정상인가’ ‘그게 미술이냐’ 등의 비평을 들었습니다.

앞의 두 작품처럼 그가 시간을 보여준 작품들이 있습니다.
낡은 삽, 전구, 의자, 빗자루, 걸레를 설치한 작품입니다. 작품들을 보는 순간 너무도 신기했습니다. 그 사물들과 마주한 순간 다른 공간 속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낡은 빗자루일 뿐인데, 깨진 삽일 뿐인데 먼 옛날로 돌아간 느낌도 들고 주변에 정적이 흐르는 듯 하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작품을 보며 머릿속에 ‘대단하다’ 라는 생각만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개 시켜드릴 그림은 <태양의 죽음> 이라는 작품입니다. 제목과 작품이 이렇게 일치할 수가 있을까요? 유화 물감 대신 검은 비닐을 불에 녹여서 실험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검은 비닐로 감싼 나무 패널에 불을 붙인 후 어느 시점이 되면 담요로 덮어서 불을 꺼서 완성한 과정까지도 작품 속에 잘 녹아 있습니다. 실제 작품에서 느껴지는 힘을 사진으로 전달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제 삶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어요.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펼치며 산다는 것 역시 지난한 작업이었죠. 다만 청년작가처럼 치열하게 삶을 살아와 지금도 예술 의지가 증식되고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할 뿐이죠.”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청년 작가라고 불리는 김구림 작가. 그의 어떤 작품들은 60~70년대 정부의 반대로, 어떤 작품들은 그 당시 기술의 한계로 발표하지 못했었다고 하는데, 그가 다시 살려낸 작품들을 보면 요즘 작가들의 작품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실험적이고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지금도 공간적 한계와 작업 비용의 한계로 하고 싶어도 아직 실현 못한 많은 작품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꽃그림(화랑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느니 차라리 막노동을 하겠다고 했던 김구림 작가. 그는 작품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자신도 모르기에 무조건 오래, 건강히 살아야 한다며 술, 담배도 일절 하지 않는다 합니다. 운동도 하지 않고 패스트 푸드 음식도 즐겨먹는 저를 참 부끄럽게 하는군요..

누구나 가는 길은 쉽습니다. 그저 지나온 발자취를 따라 가면 되니까요. 여러 명이 함께 가는 길은 외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 길 조차도 없어서 길을 만들어 가야 하는 사람은 힘듭니다. 그리고 외롭습니다. 가면서도 제대로 된 길인가 의문도 듭니다. 그래서 그 길은 참 어려운 길입니다. 이런 길을 거침없이 간 김구림 작가에게 무한한 찬사를 보내면서 저도 그런 길을 가고 싶다는 옹골찬 소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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