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칼럼의 주인공은 작년에 8번째 칼럼 ‘고정관념 깨기 – 에드가 드가’ 편에 잠깐 등장했었던 화가 ‘메리 카사트’ 입니다. 메리 카사트는 제가 좋아하는 화가들 중 한 명입니다. 대학 시절 이 화가의 그림에 푹 빠져서 몇 일씩 밤을 새며 이 화가의 그림을 보고 또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메리 카사트의 그림을 좋아했던 이유들을 말로 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굳이 꼽자면 작품에 쓰인 색이 매우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고, 그림 속에서 보여지는 과감한 구도와 정확한 뎃생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그림 속에 귀여운 어린 아이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린 아이를 주제로 그리기를 좋아하는데 아마도 그 때 메리 카사트의 그림을 많이 보면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메리 카사트(Mary Cassatt)’ 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녀는 여성 작가입니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칼럼 중 처음으로 등장하는 여류 화가(女流畵家)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유명 작가들(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고야, 다비드, 밀레, 르누아르, 드가, 고갱, 고흐, 쉴레 등등)은 대부분 남자입니다. 지금은 여성 작가, 남성 작가 굳이 구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작품 활동을 하며 인정을 받고 있지만 여성 작가들이 등장해서 활발히 활동하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이후 페미니즘이 국제적인 운동으로 대두되면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서구 여성작가들이 등장합니다.)
남성 화가들이 주를 이뤘던 시대에 살았던 메리 카사트에게 화가가 되는 일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 속에서 자란 메리 카사트는 그림을 취미로 하길 바라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문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녀는 기존 사회의 통념을 깨는 큰 결심을 품고 미술 공부를 하러 갔으나 전문적인 화가가 되기 위해 그림을 배우는 여학생은 드물었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사교계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하나의 기술로서 미술을 배우곤 했습니다. 이러한 엄숙하고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여학생들은 남학생들과는 다르게 누드 모델을 직접 보고 그릴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제대로 그림을 그리려면 모델을 그리며 연구를 해야 하는데 단지 여자라서 안 된다니 얼마나 답답했을지 조금은 상상이 갑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훗날 그녀는 필라델피아 학원에서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인생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습니다. 파리의 Ecole des Beaux-Art 역시 그 당시에는 아직 여성을 학생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녀는 화가들에게 개인 교습을 받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작도 하며 전통적인 미술 양식을 공부하며 끈기 있게 파리 살롱에 그림을 출품합니다. 그렇게 화가의 길을 걷던 그녀가 그녀에게 많은 영향을 준 에드가 드가를 만나며 인상주의 그룹 전시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 전시로 그녀는 많은 이에게 인상파 화가로 각인됩니다.
그럼 이제 그녀의 많은 그림들 중 제가 좋아하는 그림들을 볼까요? 이 그림은 ‘목욕’ 이라는 작품입니다. 제가 처음 메리 카세트라는 화가를 알게 된 그림이기도 합니다. 정성스레 아이를 감싸 안아 씻기는 어머니와 귀여운 아이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실적으로 그려졌음에도 그림 전체에 녹아 있는 부드럽고 따뜻한 감정과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그녀 특유의 색감, 그리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임에도 보여지는 정확한 형태력과 구성력에 한번 더 감탄하게 됩니다. 다음은 그녀의 아름다운 색감이 더욱 더 잘 드러난 작품 ‘아침’ 과 ’ 파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어린 소녀’ 입니다. 그림 속의 푸른 색이 매우 아름답게 쓰여져서 그림을 볼 때마다 ‘와! 어떻게 색을 이렇게 아름답게 쓰지?’ 하고선 한참을 넋 놓고 두 그림을 바라보곤 했었습니다. 인위적으로 설정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소녀들의 동작들이 그림을 한층 더 부드럽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미국 인상주의의 어머니’ 로 불리는 메리 카사트. 그녀의 대부분의 그림에는 어머니와 아이가 등장합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카사트가 아이 어머니였겠거니 생각하지만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녀가 독신으로 산 이유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전문화가로서 성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화가의 길을 선택한 대신 결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평범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또한 질병 때문에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음에도 불구하고도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아 결국 실명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기가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하여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그림에 올인하여 열정적으로 살다간 메리 카사트….
여성으로 살면서, 여성으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다지 많은 제제와 편견을 받지 않는 시대에 사는 것에 감사하며 메리 카사트처럼 열정적으로 무언가에 몰두하는 그런 삶을 살기를 기원하며 칼럼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