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 70
베트남 전국에 ’40’이라는 숫자로 도배를 해 놓았다.
2015년 4월 30일은 통일 베트남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통일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 주도의 각종 행사들이 많이 준비되고 있다. 통일 베트남을 연구하기 위한 각종 학술대회가 개최된다는 기사도 신문에 소개되었다.
2015년 을미년, 통일 베트남 40년, 한반도 분단 70년, 통일 독일 25년이 되는 해이다. 연초부터 베트남 전국 주요 거리와 교차로에는 ’40’ 이라는 대형 숫자로 화려한 장식을 해 놓았다. 이 대형 장식이 호찌민시에는 베트남 통일의 상징인 통일궁 앞 레쥬언(Lê Duẩn) 대로에 3개가 있으며, 호찌민시의 상징인 벤탄(Bến Thành) 시장 앞 교차로에도 설치되어 있다. 이 ’40’이라는 장식과 함께 분단기간 남, 북의 국기와 통일 베트남 국기의 대형 장식을 레쥬언(Lê Duẩn) 거리 전체에 해 놓았다. 우연이겠지만 이 대형 장식은 한국의 포스코가 호찌민시에 최초로 건설하여 운영하고 있는 다이아몬드 플라자와 금호 그룹이 건설한 3개 빌딩 사이에 설치되어 있다.
’40’ 숫자가 밤에는 화려한 조명으로 빛을 발하는데, 양쪽의 다이아몬드 플라자와 금호빌딩이 발하는 빛보다 더 화려해 보인다.
최근에는 통일궁 앞 레쥬언과 파스터 사거리의 교통을 차단했다. 1개월 전부터 통일 40주년을 기념하는 초대형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무대를 설치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17년째 베트남에 살지만 이렇게 큰 무대를 설치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얼마나 거대한 규모로 화려하게 통일 40주년 기념행사를 하는지 꼭 가봐야 할 것 같다.
60년마다 돌아오는 을미년, 한반도인에겐 참 가슴 아픈 해였다. 1895년 을미년에는 치욕스런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이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1905년 을사보호조약과 함께 1910년 한일합방이 이루어졌다. 1945년 을미년에는 타의에 의한 광복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미, 소에 의해 남북이 분단되었다. 2015년 을미년, 이전의 치욕과 아픔을 치유할 회복의 한반도를 기대해 본다. 통일의 초석을 놓고 다시 비상하는 자랑스런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응원한다.
한반도 분단 70년, 일제강점기에 한 시인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광복을 염원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한반도에 광복이 왔지만 바로 분단이 되었다. 그토록 염원했던 광복은 고통스런 분단으로 이어졌다.
아!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한반도인이여!
통일도 결국 올 것이다. 통일이 쪽박이 아닌 대박이 되기 위해, 통일이 재앙이 아닌, 한민족의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
해방
4월 30일이 공식적으로는 해방일이다. 이 땅의 침략자인 미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낸 해방일이라는 의미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미제국주의자들에 의해 고통당하고 있는 남부지역 동포들을 해방시킨 날이라는 의미이다. 해방이라는 용어와 의미가 베트남 민족주의자들에게는 가장 적합한 역사인식이라고 하더라도, 통일의 의미가 빠진 4월 30일에 무엇인가 허전하고 부족하다는 생각을 필자는 오랫동안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어떤 학술대회에서 베트남인 소장파 역사학자들도 이러한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개혁개방 이후 세계 여러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고 세계화 시스템에 접속한 베트남에게 4월 30일을 해방의 의미만으로 한정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남부해방, 조국통일
2000년도에 베트남 전쟁 종전 이후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클린턴 대통령이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했다. 베트남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특별히 인권, 개신교, 미국과의 관계에서 급속한 변화가 일어났다. 통일 이후 개신교가 종교 법인으로서의 합법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는데, 2001년도에 개신교가 공식 종교 법인으로 합법화 되었고, 개신교 신학교가 정부 인가를 받고 개교를 했다.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4월 30일을 ‘해방’의 용어만 사용하던 베트남 정부가 ‘남부해방’, ‘조국통일’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4월 30일을 ‘남부해방, 조국통일’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4월 30일에 대한 베트남의 역사인식의 변화이며, 세계를 받아들이고 세계와 소통한 결과라고 분석할 수 있다.
조국통일
필자는 4월 30일을 명명하는 말을 ‘해방’에서 ‘남부해방, 조국통일’에 이어 ‘조국통일’로 까지 나아가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다.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은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들어 올 때부터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공식 선언한 가장 강력한 후보로 떠오른 미국의 외무부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우리의 마지막 목표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의 지도적 위치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오바마 정권의 ‘아시아 회귀’ 목표는 분명하다. 강하게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무원칙적인 중국의 ‘공간 확장’ 정책과 주변국들과 긴장을 발생시키는 행위에 대해 지역 안에서 미국의 지도적 역할을 통하여 중국의 행위를 완화시키는데 있다. 중국을 ‘포위’ 하고, 중국의 힘을 ‘약화’ 시키는 목적으로, 오바마 정권은 지역 안의 국가들 (일본, 한국, 태국, 필리핀, 호주)과 큰 규모의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동맹국들 사이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동해 바다에서 베트남의 영토에 대한 중국의 주권 침해적인 행동에 대해 단호하고 강하게 대응하라고 베트남에 격려하며 적극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을 중국에게서 멀리하게하고, 일본, 한국, 대만과 군사적 관계를 강화하며,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도 중국을 제외하고 출범하였다.
중국의 이웃 국가인 베트남, 중국의 ‘남진’ 길에 하나의 장애물이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국가이며, 미국의 행선지중 중요한 국가로 부각한 베트남.
미국, 중국, 베트남 3국간의 아시아 태평양 안에서의 얽힌 이해관계는 지난 역사와 현대의 복잡한 국제 정치적 상황으로부터 발생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베트남은 지혜롭고 합리적이면서도 단호한 외교정책을 실시하여 왔다. 각 국가들 사이의 이익을 조화롭게 균형을 유지하는 반면, 지역 안에서 안정과 국가발전을 보장 받기위해 연관된 국가들의 지지를 받아야만 하는 베트남.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사상적 측면을 보류할 수 있는 베트남, 민족해방, 조국독립을 위해 공산주의를 차용한 저항적 민족주의의 성격을 강하게 띤 베트남, 지극히 현실주의적이고 실리주의적인 베트남.
이 베트남이 4월 30일을 조국 통일로 다시 한번 그 용어와 의미를 전환하며 세계 속의 베트남으로 우뚝 서기 위한 변신을 하지 않을까? 베트남이 4월 30일을 ‘조국통일’로만 명명하는 날에는 어느 경제학자의 예측처럼 아시아의 3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베트남은 통일 베트남의 저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새로운 G2 시대인 중국과 미국사이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균형자 역할을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