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Book Column-인간과 상징 – 칼융

‘나는 누구인가?’ 우리를 평생 따라 다니는 질문입니다. 예전에 유행했던 ‘타타타’란 유행가 가사중에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라는 가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삶의 고달픔을 정말 한마디로 요약한 명가사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나를 모르고, 너도 나를 모르고, 나도 너를 모르니 사람관계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심리학책이 꾸준히 읽힌다고 생각이 듭니다.

요즘 유행하는 뇌과학도 결국은 나와 너를 알고 싶다는 인간의 소망을 최신 과학의 방법으로 충족시켜주는 심리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엄마 마음이 있듯이 나도 내 마음이 있어’라는 말로 자신의 답답함을 호소하고, 고백에 실패한 젊은이는 ‘왜 내 마음을 왜 몰라줘?’하며 차가운 상대방에게 절박하게 매달립니다. 도박판에서 ‘이게 마지막이야’ 하면서 끝내 자리를 뜨지 못하는 도박중독자는 결국 블랙홀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경제적 피해를 주고, 스스로를 최악의 불행으로 몰아갑니다. 직장에서도 나이 어린 사람들은 꼰대들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고, 상사들은 자신들과 너무 다른 생각을 하는 부하직원들이 외계에서 온 생물체로 보입니다.

과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는데, 남녀의 생각 차이도 벽시계의 6시와 12시만큼 떨어져 있습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우리는 ‘나’를 만나게 되고,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며 ‘너’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지만, 결정 장애는 평생을 따라다니고, 오해해서 미안한 일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니가 그런 사람인줄 몰랐다’는 원통함은 주기적으로 반복됩니다.
이러한 인생의 고통을 해소하고자 19세기말에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현대 심리학이 자리를 잡습니다. 지금은 ‘비엔나 커피’로만 기억되는 ‘빈’이지만 1차 세계대전 전에는 상류층 문화와 세계 유행의 중심지로 지금의 뉴욕 같은 위상을 가졌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현대 심리학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심리학의 황제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정립한 곳이고, 심리학의 황태자이고 훗날 ‘분석심리학’이란 자신의 제국을 일으킨 칼융과 프로이트의 만남이 이루어진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는 인류에게 ‘무의식’의 개념을 소개하여 알수 없는 열길 물속으로 여겨졌던 사람의 마음 지도를 그려낸 문화혁명의 주인공입니다.
프로이트 이전의 심리학이 대동여지도 였다면, 프로이트 이후의 심리학은 고속도로 위치까지 표시된 ‘전국 관광지도’로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신입사원때 ‘전국관광지도’ 책자 하나 믿고 처음으로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열심히 회사 연수원을 찾아가던 패기있던 젊은 시절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목표로 했던 나들목을 지나쳐버려 결국 지각을 하게 되었고, 첫 강의 강사로 오신 영업 2팀장님께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악몽이 떠오르네요. 칼융의 심리학은 네비게이션 같습니다. 처음으로 네비게이션을 달고, 길바닥에서 헤메는 일 없이 담당구역 곳곳을 누비며 신세계를 맛보았습니다. 프로이트보다 19살이 어렸던 칼융은 프로이트의 후배로서, 동료로서 그의 학문을 흡수했고, 인간정신의 근원을 지나치게 성(性)적인 부분에서만 찾은 프로이트와의 의견 차이로 인해 학문적 결별을 한 이후에 정신분석학을 더욱 풍성하게 발전시켰습니다.

칼융은 페르소나(사회생활을 위해 인간이 실제 자신을 감추기 위해 쓰는 가면), 그림자(자신이 피하고 있는 자신의 욕망) 이론을 통해 신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열어줍니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 생일이라 집에 빨리 가야 하는데 퇴근 안하고 있는 부장님 때문에 모니터로 신문 보면서 일하는척 하고 있는 사무직 직원, 부부동만 모임을 가는 길에 차안에서 대판 싸워서 말도 안하다가 약속 장소에 가서 활짝 웃음을 짓는 부부, 성질 같아서는 싸다귀 한대를 날리고 싶은 진상 고객 앞에서 예의를 지키고 있는 식당 주인 아저씨. 그들의 얼굴이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 페르소나입니다.
정리하면 사회적 요구에 부합하는, 보여주고 싶은 얼굴입니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데, 가난한 삶이 싫고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아 대기업 직원으로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회사원,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은데 대학갈때까지 참고 있는 고3학생, 짬뽕이 먹고 싶은데 부장님과 과장님이 짜장면을 시켜서 짜장면을 시키고 있는 대리님을 지켜보고 있는 신입사원의 마음속에는 모두 그림자가 있습니다. 철이 든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각자가 몇개의 페르소나와 그림자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진정한 자기 자신을 잃고 살아간다는 뜻이죠. 칼융은 정신문제의 원인을 페르소나와 그림자에서 찾았고, 자신의 그림자를 대면하여 받아들이고, 그림자를 실제 자신(자아)과 맞추어 나가는 정신적 모험을 통해 구원을 얻을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개성화’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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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에 사망한 칼융의 마지막 저서 이책 ‘인간과 상징’은 난해하기로 소문난 칼융의 이론을 칼융 자신과 그의 제자들이 일반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쓴 칼융 입문서입니다. 1장은 무의식과 꿈에 대해 칼융이 스스로 쓰고, 2~5장은 그의 제자들이 고대신화, 개성화, 회화, 상징에 대해 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쉽게 썼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이 독서후 무의식속으로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입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던 기억은 남아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심리학, 신화, 회화에 관심있으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MBTI 이론이 칼융의 성격분석이론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도 알려드리고 싶네요. 칼융의 이론에 대해서는 유투브에서도 짧고 실용적으로 정리된 내용들이 많이 있으니 꼭 한번 만나보실 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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