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September 18,Wednesday

독자기고-휴대폰 없이 세상과 단절되어 보낸 며칠의 시간

아뿔사! 휴대폰을 집에 두고 온 것이다.
몇몇 지인들과의 달랏 골프 여행을 위해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오는 동안 조용히 온 것이 휴대폰이 없었기 때문임을 깨닫았다. 약속장소에 도착하고서야 휴대폰을 집에 두고 온 것을 알았지만 어찌하겠나, 그냥 떠날 수 밖에.

차를 타고 가는 도중 일행 중 한 명은 버스 터미널에 가서 일정비용을 지불하면 달랏 행 버스 기사를 통해 휴대폰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적절한 방안을 제안했지만 나는 오히려 이 기회에 며칠동안 휴대폰없이 지내는 경험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속으론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과연 휴대폰 없이 지낼 수 있을 까?

달랏까지의 5시간의 여정동안 휴대폰없이 철저히 창밖의 경치만 감상하며 지내는 시간도 새삼스러운 경험이었다. 휴대폰없는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지인이 운영하는 달랏의 호텔은 가정집 형식으로 시내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조용한 곳에 위치하였고 나에게 배정된 방은 이층의 넓은 테라스 있는 창이 큰 방으로, 큰 창 너머로는 소나무가 울창한 산이 펼쳐진 곳이었다. 일단 경치를 감상할 만한 곳이라는 것이 맘에 들었다.
저녁 식사시간, 일행이 모여 한창 골프에 대한 이야기 꽃을 피울 때, 가끔 휴대폰 문자 수신음이 들리고 그것들은 확인하고 답장하고 하느라 대화의 맥락을 놓치는 분도 있고 이야기가 재미없는지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는 분도 있지만, 나는 그들과의 다른 영역에 앉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주위 사람들의 행동이 눈에 쉽게 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일찍 방에 돌아오니, 티브이는 있었지만 인터넷사정이 좋지 못하여 시청할만한 것이 없다. 그래 이참에 티브도 끊어보자.
이제 고작 저녁 7시다. 평소라면 달랏에 잘 도착했다고 집사람에게 이야기라도 해줘야 할 시간인데 전화기가 없다는 정당한 이유로 애써 넘어가기로 했다.

뭘하지?
책도 없고, 아무 읽을 거리도 없다. 휴대폰이 없으니 평소에 확인하던 메시지도 검색을 하지 않으니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직 세상과 동 떨어 졌다는 생각까진 들지 않지만 조금은 불안하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공백의 시간이 이어졌다.
별로 무겁지도 않은 가방을 풀고 가져온 옷들을 정성스럽게 정리정돈을 해본다. 이런 옷들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다시 다시 찾아온 정적, 다이어리와 볼펜을 꺼내서 이번 여행에 해야 할 일들을 극적여본다. 시간이 더디 간다. 9시경 자리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이다 잠이 들었지만, 아침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단잠을 잤다. 체념한 마음이 받는 선물같은 꿀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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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휴대폰 없이 지내는 2일차이다.
아침 일찍 한 라운드의 골프를 마치고 오후 2시경 호텔로 돌아와 잠시 환담을 나눈다. 일행들은 휴대폰을 통해 뭘 하느라 바빴다. 연신 카톡하는 소리와 여기 저기 전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역시 나만 따로 다른 세상에 빠져 있는 듯하다.
여전히 세상과 소통하느라 바쁜 일행을 떠나 방으로 돌아와 테라스에 나가 앉는다. 호치민에서는 보기 힘든 소나무들이 빽빽한 산을 보니 마치 한국의 시골에 와있는 착각이 들기까지 했고, 혼자서 의자에 앉아 물끄러미 자연만 쳐다 보니 절로 아름답고 평화롭다는 느낌에 잠겨진다. 이곳에서 노후를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달랏에서 한달 살기를 해 볼까? 그런 상상의 나래에 빠져 있으니 이미 휴대폰 생각은 잊어져 간다. 시원한 공기를 만끽하고 있을 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비가 만들어 내는 지붕 때리는 소리 그리고 물보라가 내 몸을 조금 적시기도 하였지만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그 광경을 즐기고 있었다.
언젠가 읽은 책 “월든”이 생각이 났다. 미국의 철학자 핸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오두막을 짓고 스스로를 사회와 격리하여 생활했던 2년여 기간의 생활을 기술한 명작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책의 한 장면은, 그가 월든 호숫가를 걸으며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 바람소리 등을 몸의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 느끼며 자연과 일부가 되는 체험을 했다는 부분이다. 나 역시 지금 그의 느낌을 공감한다.

비를 피해 방으로 들어와 샤워를 하고 소파에 앉아보지만 아직도 많이 남은 시간, 휴대폰이 없으니 시간이 더디 감을 또 느낀다. 다시 다이어리를 꺼내어 재산 상황을 정리 해 보기도 하고, 사업에 대한 구상을 적어보기도 하고,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계획도 만들어 본다. 이 모든 것들이 휴대폰이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휴대폰이 있었더라면 그 시간에 카톡을 하거나 뭔가를 검색하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했을 것이다. 마음 한편에서 와이프가 전화가 없다는 핑계로 너무 연락이 없다고 화가 나지는 않았는지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도 하다. 다행히 주말이라 회사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저런 생각이 잠을 부른다.

3일차 이다
아침 골프를 하고 점심시간을 좀 넘기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다들 피곤했는지 그냥 뿔뿔히 흩어져 쉬기로 했고, 나도 휴식을 취한 후 오늘은 산으로 난 길을 한 번 걸어보기로 했다. 조용한 산길로 접어들자 길 양쪽으로 곧게 뻗은 소나무들이 싱그럽다. 산길을 걸으며, 고독을 씹는 철학자가 된 기분을 느낀다.
휴대폰이 없는 산책은 예전과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듯한 착각을 느낀다. 아무에게도 연락오는 일 없고, 연락을 할 방법도 없다. 이러한 기분은 외로움이나 고독일 것이다. 폴틸리히 라는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는 말했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며,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이다”
휴대폰 없이 지내는 시간 동안의 사회로부터의 격리를, 특히 내가 산길을 걷는 동안이라도 외로움이라는 감정보다는 고독이라는 즐거움으로 내면을 채우고 싶었다.
산길에서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돌아왔다. 일행들이 모여 있었고 맥주를 한 잔하면서 나를 한참 찾았단다. 휴대폰이 없으니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고 투덜댄다. 일행들은 휴대폰이 없는데 잘도 버틴다고 이야기 하면서 도대체 혼자서 뭘하고 시간을 보내는지 사뭇 궁금해 한다. 휴대폰이 없는 자유로움을 설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4일차 이다
아침 골프를 하고 오후에 호치민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이제 슬슬 두고 온 여러가지 것들이 걱정이 되기 시작하고 궁금해지기도 해서 전화를 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인의 휴대폰으로 와이프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별일 없었는지를 확인했다. 와이프는 “누구세요?” 하며 짐짓 쏘아 붙인다. 휴대폰을 두고 집을 나선 것을 알았겠지만 그렇다고 며칠간 연락 한번 안한 것이 못내 서운한 모양이다.
호치민으로 돌아와 와이프를 재회 했을 때 약간은 서먹한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기간 동안 1년여간을 떨어져 있어도 매일 카톡과 페이스톡 등을 해서 별로 서먹하지 않았는데 며칠간의 아무런 연락 없이 지낸 시간의 골이 더 깊은 모양이다. 하지만 서먹한 만큼 고작 3박 4일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를 긴 해외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보다 좀 더 반갑게 맞이 해 주는 것 같았다.
휴대폰 없이 지낸 며칠의 시간은 정말 길게 느껴졌고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남아도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할지 방황하였지만, 그대신 주위의 모든 사물과 자연은 좀더 가깝고 진지하게 느낄 수 있었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우리는 휴대폰, 인터넷, 미디어, 그리고 사회적 연결의 중독 속에 살고 있어 느리게 사는 즐거움이나, 고독을 친구 삼아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반추해 보는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경험한 며칠간 휴대폰 없이 보낸 시간 동안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도 한달에 하루 정도는 휴대폰을 꺼놓고 살아보면 자신과 주위의 많은 것들을 새롭게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 글. 박우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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