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실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유독 ‘수채화’ 그리기를 두려워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익숙한 연필로 그릴 때의 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수채화는 어려워요.” 하고 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학생들을 보면 처음 제대로 미술을 시작했을 때의 제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아동 미술을 배울 때 말고 미술 전공을 결심한 후 입시미술 학원을 다닐 때의 모습 말입니다. 몇 개월간의 기초 수업이 끝나고 본격적인 입시 준비로 수채화를 처음으로 배울 때 익숙한 ‘정육면체’를 자신있게 끝내고는 선생님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원장 선생님께서 실기실에 들어오셨었는데 제 그림을 보시고는 갑자기 실기실이 떠나갈 정도로 호통을 치셨습니다.
“명암만 넣을꺼면 뭐하러 수채화를 해?” 라고요. 그림을 보니, 제 화판 위의 정육면체는 마르지 않은 곳에 쌓여버린 붓 자국들로 흐물흐물한 형태는 물론이고, 수채화 특유의 투명함도 없이 마치 흘러내릴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소묘 위주로 연습했기에 명암만 신경 쓰다가 ‘수채화’ 재료의 특성을 놓친 것 입니다.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부끄러우면서도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된 너무도 강렬한 ‘수채화’의 첫 인상이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화가는 수채화 특유의 느낌을 시원시원한 화풍으로 자유롭게 작업하여 수채화 작품을 많이 남긴 프랑스의 화가 ‘뒤피’ 입니다. 이 화가의 그림을 보는 순간 요즘엔 주로 유화와 거울 그림 작업을 하느라 조금은 등한시 했던 수채화를 그리고 싶어서 손이 간질간질해지기도 했습니다.
뒤피의 그림을 보면 시원함이 느껴집니다. 마치 폭포수 아래에 서 있는 것처럼 속이 뻥 뚫리는 느낌입니다. 수채화를 그릴 때에는 간략히 스케치를 하기도 하지만 주로 스케치를 꼼꼼히 하고 색을 올리곤 합니다. 빨리 색을 쓰고 싶은데 스케치를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 마음을 억누르느라 답답하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뒤피’의 그림은 거침이 없습니다. 선(先) 스케치, 후(後) 채색이 아닌 스케치하듯 빠르고 날렵하게 그어진 그의 선과 색들은 그림 속에서 춤추며 살아있습니다. 또한 뒤피는 그 선들을 마구 남발하지 않고 그림마다 다르게 쓸 줄도 알았습니다. ‘헨리의 요트 경기’ 라는 작품을 보면 경기 참가자들이 구령에 맞춰서 힘차게 노를 젓는 시끌벅적한 분위기라면 ‘카우스의 요트 경기’ 는 잔잔하고 한가롭습니다. 어떻게 그 시대에 이렇게 그림을 그릴 생각을 했는지 참 신기합니다. 그림 속의 붓놀림에서는 붓이 어디론가 헤매지 않는 자신감도 느껴집니다.
‘멕시코인의 합주‘ 라는 이 작품은 뒤피의 그림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신기하게도 멕시코 음악이 들립니다. 11명의 연주자 개개인의 악기 소리가 일일이 다 들리는 것 같아 그 자리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시원시원하면서도 생생한 신기한 그림을 그렸나 했더니 뒤피는 이 그림을 마음에 들 때까지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렸다고 합니다. 또한 극심한 관절염 치료로 인해 손에 붓을 묶어서 작업했다고 합니다.
다시 저와 수채화의 첫 만남의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그 후 제 수채화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깨달았으니 다음 그림부터 바로 잘 하게 되었을까요? 제가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이었다면 가능했겠지만 역시 냉정한 현실답게 제대로 그것을 익혀서 제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많은 연습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혹시나 수채화를 잘 그리고 싶은데 망칠까봐 두려워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런 문제를 해결할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망치는 것 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구태의연한 말처럼 수채화는 물론이고 모든 그림은 두려워하고 움츠러들면 제대로 그려지지가 않습니다. 좀 틀려봐야 망쳐봐야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습니다. 좀 엉성해도, 서툴러도 다음 그림을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시고 마음 편히 망쳐보세요. 그러다보면 어느새 ‘물 조절’도 습득하게 되고 ‘실력’도 생기게 되어 수채화가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고 보다 나은 그림과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