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많은 고민은 인간 관계에서 옵니다. 대부분의 고민의 원인은 바로 ‘누구 때문’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돌아가는 그날까지 사람들 속에 둘러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어딘가에선가 우연히 태어나서 부모님, 형제 자매, 동네 친구 , 학교 친구, 선생님, 직장 동료, 사회 친구, 부인, 자식, 직원, 동업자, 손자 손녀를 만나다가 어딘가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인것 같습니다. 모두 좋은 사람들만 만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인생이 없겠지만, 어떤 한 사람만 잘못 만나도 꼬일수 있는게 인생이기에 인간 관계의 중요성과 어려움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착하게 살고, 자기 몫의 일을 책임감있게 하고, 남을 배려하며 살라고 배웠지만 살다보면 이상한 사람을 만나 생각지도 못했던 고통을 겪을때가 있습니다. 남의 말을 전하기 좋아하는 어떤 친구의 이간질 때문에 친한 친구와의 우정에 금이 갑니다. 이기적인 이성 친구에게 ‘넌 나 아니면 안돼’ 라는 가스라이팅을 당해 자발적으로 금전적, 정신적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직 내에서 삼국지의 제갈공명이나 조조 같이 권모술수와 지략에 밝은 동료의 적이 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벼랑 끝으로 몰려 하루하루 힘겨운 날을 보내거나, 억울한 마음과 함께 조직을 떠나는 일도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사람은 선한걸까요, 악한 걸까요? 왜 착한 사람은 손해를 보고, 나쁜 사람이 이익을 볼까요? 나는 열심히 내 할일을 하며 인생을 바쳤는데, 왜 조직에서는 결국 ‘조직의 쓴맛’을 보여주는 걸까요?
2500년전, 전쟁과 모략이 끊이지 않았던, 생지옥과 비슷했을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에서 15세의 한 아이가 학문에 뜻을 세우고, 30세에 학문과 인생관의 기초를 세우고, 40세에 흔들림이 없게 되었고, 50세에 하늘의 뜻(천명)을 알고, 60세에 어떤말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고 70세에 맘에 드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모두가 다 아는 공자의 인생입니다.
20대때 이 얘기를 들으면 이게 무슨 ‘공자님 말씀같은 소리야’ 하면서 흘려듣는 말이지만, 40대의 친구들의 술자리에서는 ’40세가 되어 흔들림이 없었다니!’ 하며 공자님을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이언맨보다 더 뛰어난 초인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50세가 되어도 하늘의 뜻은 커녕 배우자나 자식들의 마음도 모르는 가장들도 숱하게 볼수 있고, 60세에 이르렀는데도 자기만의 아집으로 조직을 나락으로 몰고가는 리더도 일일이 날거하기 어려우며, 신문의 사회면을 꾸준하게 채워주는 70세의 노인들의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습니다. 논어에서 공자가 언급한 자신의 삶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그의 삶은 정말 ‘성인’의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의 유교는,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공자왈 맹자왈~’하며 조직 내부의 싸움에 이용하던 유교가 아닙니다. 태권도로 치면 조선시대의 성리학이 태권도의 품세 경연이라면, 공자 생전의 유교는 유도, 검도, 우슈와 실전 대결을 벌이기 위해 갈고 다듬은 겨루기 목적의 실전 태권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 시대( 춘추라는 시대는 공자가 쓴 노나라의 역사서 ‘춘추’에서 유래합니다. 엄밀히 공자는 춘추시대의 사람입니다.)에는 유교 외에도 무위자연 사상을 내세운 노자의 도가, 손자병법으로 대표되는 전쟁기술을 앞세운 손자의 병가, 규율을 앞세운 한비자의 법가 등 제자백가라는 다양한 지식인들이 전쟁과 모략, 압제와 가난으로 피폐할대로 피폐해진 백성의 삶을 구원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자신들의 사상을 갈고 닦고, 왕 앞에서 자신들의 사상이 왜 가장 뛰어나고, 국가를 부강하게 할수 있으며, 왕의 지위를 높이고, 나아가 백성의 삶에 평화를 가져올수 있을지를 유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공자 개인을 보면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어린나이에는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학문에 뜻을 둔 이후에는 제자를 가르치며 자신의 사상을 갈고 닦고 (지금으로 치면 입시 학원 및 기업 컨설팅 회사 같은 일로 보입니다), 자신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었던 순간에는 당시의 유력자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정치사상을 실제 정치에 적응하려 노력했지만, 결국은 현실 정치의 벽에 부 쳐 본인이 천명이라 믿었던 일을 자신의 고국에서는 포기하고 13년간 전국을 떠돌며 뜻을 펼치며 성공과 실패의 삶을 살다가 결국 68세의 나이에 고국에 돌아와 저술과 교육에 힘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70에 이르러 마음먹은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선언합니다. 결국 공자 역시 한사람의 생활인이었고, 그 의 가르침 역시 한 사람의 치열한 삶의 결과물이었기어, 그와 제자들과의 대화를 담은 어록인 ‘논어’ 역시 지금까지 남아 아직도 우리의 삶에 울림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군주가 예로 신하를 부리면, 신하도 충성으로 섬긴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도 즐기는 것만 못하다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마라
닭을 잡는데 소를 잡는 칼을 쓰는가
소인이 잘못하면 반드시 꾸며댄다
제가 논어에서 좋아하는 말 몇가지를 뽑아본 것인데, 우리가 현실에서도 자주 쓰는 말이죠? 사실 논어는 생각보다 이미 우리의 삶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논어를 읽다보면 우리가 고사성어나 속담으로 자주 쓰는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알게되는 지적 재미도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가 틀리는가 하고 자문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모든 욕망과 인연을 끊고 출가하여 스님이 되는 길도 있을것이고, 속세를 떠나 산속에 들어가 케이블 TV 인기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의 1시간짜리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살수도 있겠지만, 평범한 우리는 부모형제, 배우자, 자식, 직장, 친구를 떠날수 없습니다. 뭔가 좀 꼬였을때는 그 안에서 힘든일을 겪지만 결국 가장 큰 기쁨도 그들을 통해 얻을수 있습니다. 제가 논어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로 글을 마칩니다.
벗이 먼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