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삶이 조금 힘들게 느껴지질때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 되뇌이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왕이 ‘내가 승리했을때 기쁨에 취해 자만하지 않고, 절망에 빠져있을때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찾고 있을때 그의 아들 솔로몬이 내놓은 대답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남자들의 경우, 훈련소 입소 첫날 자면서 ‘아 이게 뭐지?’ 하고 맨붕 상태에 빠져 있다가, 며칠후 사단장이나 중대장의 훈시를 통해 처음 듣게 되는 말입니다. 정말 뼈져리게 와 닿고, 제대 후에도 삶에서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때 유용하게 써먹는 말입니다. 군대에서 만나는 경구중에 좀 더 적극적인 버젼으로 ‘피할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도 있습니다. 선택지가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겪는 무기력함과 고통을 마비시키거나,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인간정신의 눈물겨운 노력인데, 신기한것은 많은 군인들이 이 말의 효과를 몸소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짧은 말 한마디가 순간 순간의 고통을 이겨내는 진통제 및 각성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로마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세계사 시간에 만나게 되는 나라이지만 유럽 사람들은 ‘국사’를 배울때 나오는 나라입니다. 이탈리아 반도의 중간쯤에 있는 소도시에서 출발했지만 전쟁을 통해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알렉산더 대왕의 헬레니즘 제국의 후계자가 되어 당시 ‘세계’의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제국’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나라이고, 지금도 로마제국의 발판을 만들었던 줄리어스 시저부터,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 폭군 네로, 5현제(로마제국의 황금기로, 96년~180년에 이르는 이 시기를 <로마제국 흥망사>의 저자 에드워드 기번은 ‘인류가 가장 행복하고 번영했던 시대’라고 주장합니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 등 로마의 황제들은 세계사에 끼친 그 영향력 때문에 지금도 계속 연구되고, 그들로부터 영감과 교훈을 받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제국으로 꼽히는 로마제국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5현제중 마지막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입니다. 저자의 스케일이 일단 스펙타클하고, 프로필이 독특합니다. 흔히 동서고금을 통틀어 위대한 성인, 황제, 왕이 직접 남긴 글은 적습니다. 보통 그들의 업적과 행적, 사상이 기록되는게 일반적이지 저자로 등록되는 일은 흔한일이 아니죠. 저도 처음 이책을 접했을때는 저자가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철학자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세계사, 윤리시간에 우리를 헷갈리게 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아르키메데스, (토마스) 아퀴나스, 에피쿠로스 같은 사람들과 이름도 비슷하고, 책제목도 ‘명상록’이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던 거죠. 저자의 직업이 ‘로마 황제’라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의 내용이 너무나 ‘일상적’이라 또 한번 놀랐습니다. 성공한 사람의 자서전처럼 성공담이나 실패담, 로마 황제로서의 특별한 경험, 다음 세대에게 주는 교훈 같은 것이 있을까 기대했는데, 삶과 죽음, 친구, 비난, 불안, 잠, 격투기 시합 등 다양한 인생의 문제에 대한 신변잡기 같은 내용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한가한 사람이었는가’라고 말하기에는 그가 황제로 재임했던 시절의 로마와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고려해볼때 단연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죽은후 로마제국의 혼란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았을때 그의 로마는 영토 확장이라는 성장 과제, 외적의 침입과 내부의 정치세력들의 이권다툼이 일상되된 격동의 시대였고, 그는 그 시기에 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시대의 어떤 큰 기업의 CEO보다도, 어떤 큰 나라의 정치인보다도 복잡한 업무와 고민을 안고 살았을것 같습니다.
이 책은 그런 그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쓴 일기장입니다.
명상록이라는 제목은 17세기에 붙여진 것이고, 그 이전에는 ‘그 자신에게’라는 제목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책을 읽다가 내용이 두서없이 불친절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이 책이 출판을 통해 유명인이 되고 싶다거나 인세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책의 구성이 이해가 될것입니다. 이 책은 격동의 삶을 살었던 로마의 한 황제가 일상의 흔들리는 순간 순간 마다 중심을 잡고,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썼던 조언입니다. 그 내용 자체도 후세 윤리학자들이 아우렐리우스를 대표적인 스토아 철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을 정도로 수준이 높고 현대의 우리에게 위안과 영감, 울림을 주지만, 그처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일을 하며 우선순위를 고민하고, 비난을 두려워하고, 친구관계를 고민하고, 격투기 관람을 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또 하나의 큰 위안이 됩니다.
이 책은 무슨 새로운 사상이나 지식 ( 1800년전에 쓰여진 책입니다!)을 얻는 책이 아닙니다. 철학사에서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요즘 미국식 자기개발서의 원조격이 되는 스토아 철학에 학문적 관심이 있으신분에겐 귀중한 자료가 될것입니다. 반면, 삶이 만족스럽고 혹은 너무 바빠서 삶을 생각할 시간이 없으신분에게는 다소 지루한 책이 될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하루하루 사람들과 부대끼는 과정에서 다양한 고민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분에게는 소중한 ‘명언 보따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격동기의 성공한 로마 황제가 자신의 일상과 인생을 돌아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한 분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업무를 하고 바쁜들 그보다 힘든 짐을 갖고 있지는 않았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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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 금강공업 영업팀장 / (전) 남양유업 대표사무소장 / 베트남 거주 17년차 직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