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왜 베트남인가를 생각해보신 적이 없나요?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인의 마음에는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찾아 간다는 선진국과는 다른 개인적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 한인사회의 역사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얼핏 듣기에는 그저 무모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도전적이기도 하고, 혹은 낭만으로 가득 수 놓아진 온갖 이야기들이 교민들의 가슴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생을 이어가는 우리 교민들에게 베트남은 그저 피상적인 삶의 풍요보다는 더 깊고, 차원이 다른 정서적 교감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닌 각자의 서사에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변곡점이 대부분 이곳 베트남에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변곡점은 직업의 선택일 수도 있고, 사람의 만남일 수도 있고, 어느 날 문득 눈에 들어온 신문기사일 수도 있습니다.
살아온 세월이 남은 세월보다 확연히 긴 나이가 되면, 새로운 미래의 계획보다는 지난 세월의 경험이 주된 화두가 됩니다 그렇게 돌아보는 지난 세월에는 자신의 미래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한 순간에 내린 판단과 선택이 생의 방향을 바꾸는 변곡점의 순간 말입니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 채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 진학을 준비할 것인가 취업을 할 것인가를 두고 망설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침 신문에 공무원 시험 공고를 보고 별 생각없이 5급 공무원(지금의 9급)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별 기대도 않았는데 덜렁 합격통지서를 받습니다. 그리고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안내와 함께 검사비로 3200원을 청구되어 있습니다. 당시 가치로도 그리 큰 돈은 아니지만 제대 봉급으로 1400원을 받았던 저에게는 용돈으로 지니고 있을 만한 금액은 아니었습니다.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집에 구차한 얘기를 하고 받아야 할 금액이었죠.
결국 3200원을 핑계로 신체검사를 포기하고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대학을 졸업한 후 오파상도 하며 자영업자로 평생을 보냈지만 그 당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면 제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해보면 알 수 없는 미소가 피어납니다. 결코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