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애호가로서 책에 대한 지출에 관대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책이나 마구 사들이지는 않습니다. 한끼를 가볍게 때워주고 특유의 나트륨으로 입안을 즐겁게 해주는 인스턴트 라면 같은 책도 있고, 읽으면서 내내 답답하게 하는 고구마 같은 책도 있고, 갑자기 책장을 덮고 ‘심봤다!’를 외치게 하는 산삼같은 책도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만큼 책에 대한 평가에 더 엄격해지고, 특히 사서 곁에 둘까 말까하는 고민을 통과하는 책은 많지 않습니다. 경험상 실제로 2번 이상 읽는 책이 많지 않고, 더구나 책을 보관할 공간이 점점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 이사나 대규모 집수리를 할때는 책이 제일 먼저 큰 고민거리로 찾아옵니다.) 요즘에는 책을 소유하기 보다는 ‘소비’하는 독서법을 택합니다.
특히 월 정액제 전자책 서비스가 보편화 되면서 독서량도 늘고, 신간을 포함해 더 다양한 책을 쉽게 만날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독서를 시작하고 싶은데, 책을 구하기 힘들다고 느끼시는 분들에게는 월 정액제 전자책 서비스를 통해 독서를 시작하실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구글에 ‘전자책 서비스 순위’라고 검색하면 쉽게 나오는 4대 서비스(밀리의 서재, 리디셀렉트, 예스24북클럽, 교보문고 전자도서관)중 어느것이라도 가입해서 시작하시면 삶에 새로운 활력소가 생길거라 자신합니다. 이런 환경속에서도 반드시 소장하고 싶은 책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책이 오늘 소개할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 입니다.
지금 제가 갖고 있는 책은 3번째 산 곰브리치 서양미술사(2017년판) 입니다. 이전에 샀던책 (2003년판)에 비해 책이 더 커져서 글씨도 잘 보이고, 그림도 더 크게 볼수 있습니다. 이전의 책이 아이패드 미니 사이즈라면, 지금 책은 큰 타플렛 PC 사이즈 정도가 되서 눈이 시원하고 가독성이 좋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전 책을 빌려가시고 안 돌려주신, 기억이 안나는 저의 어느 친구분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이 책은 한마디로 ‘보석 같은 책’ 입니다. 책장 어느 곳에 두어도 자랑스럽고, 손이 가고, 자꾸 꺼내보게 되는 책입니다. 흡사 나만의 작은 미술관을 갖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부터 시작해서 이집트, 그리스, 로마, 중세미술, 르네상스 미술, 북유럽, 바로크, 로코코, 유럽, 낭만주의, 인상파,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미술의 역사를 새로운 기법, 새로운 주제, 새로운 고객이라는 기준을 갖고 설명해 줍니다. 637페이지의 책에 413개의 엄선되고,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그림들이 실려 있습니다. 의미 있는 미술작품들이 이집트부터 시작한다고 봤을때 약 4,600년간의 시간동안 뽑힌 413개의 그림들이니, 글을 안 읽고, 이 책의 그림만 봐도 시간 가는줄 모르고 미술의 세계에 빠져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그림을 만났을때, 그 옆에 혹은 밑에 있는 글을 읽으면 왜 이 그림이 유명한지, 사랑을 받는지, 관심을 받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미술 감상을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책에 나오는 미술사 구분법을 참고로 하면 미술 감상의 기본적인 방법을 습득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첫째는 무엇을 그렸는가입니다. 15,000년의 수렵 채집인들은 동굴에 야생 동물을 그렸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은 전승비에 자신의 승리한 전쟁에 대한 내용을 그렸습니다. 중세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렸습니다. 그림들은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비슷했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정확히 전달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그림과 조각에 인간의 표정과 정확한 비례를 부활시켰습니다. 절대 왕정의 시대의 화가들은 왕과 왕의 가족들의 초상화를 그렸고, 무역으로 부를 쌓은 북유럽에서는 서민들의 일상을 그리고, 각자의 집에 그 그림을 걸어 놓았습니다. 무언가를 그린 그림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과, 그들의 관심, 소망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둘째는 그림에서 색과 빛을 표현하는 방법을 보는 것입니다. 르네상스 미술때부터 화가들의 색과 빛에 대한 탐구가 더욱 깊어졌는데, 흔히 르네상스 3대 거장이라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에 비해 대중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티치아노, 코레조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빛과 색이 그림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를 알게 되면, 그림에 조명같은 효과를 준 이후의 카라바조나 램브란트의 그림들을 더 쉽게 즐길수 있게 됩니다. 셋째는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를 보는 겁니다. 명화들은 모두 이전 세대에 비해 또는 당대의 유행을 벗어난 ‘무언가’를 갖고 있습니다. 동작의 부드러움이 이집트 미술과 그리스 미술의 차이를 만들었고, 지오토가 그린 <그리스도를 애도함>이란 그림에서 울부짓는 천사의 표정이 중세미술을 끝내고, 르네상스 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대로’ 그린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인상주의가 나타났고, 이후 현대 미술이 시작되었습니다. 명화속에 있는 ‘새로움’은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창의적이 될수 있는지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1950년도에 첫번째 판본이 나온 책인지라, 현대 미술에 대한 부분은 내용적인 면이나, 양적인 면에서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은 현대 미술을 집중적으로 다룬 다른 미술사 책을 통해 보충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미술사 책이고, 각 대학의 서양미술사 강의에 교재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책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대학 교재중에서 유일하게 졸업후 다시 읽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미술사조와 미술가의 이름을 모두 외우겠다는 자세를 버리고 (지겹고 부담스러워서 진도가 안나갑니다), 집근처에 있는 미술관에 몇시간씩 들려보는 편안한 마음으로 읽길 권장드립니다. 명화를 보는 안목이 높아지고 삶이 한 단계 더 풍요로워지는 기쁨을 얻기 바랍니다.
장연 금강공업 영업팀장 / (전) 남양유업 대표사무소장 / 베트남 거주 17년차 직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