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한주필 칼럼-세월 타령

‘꽃잎이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세월이 바람같이 흘러갑니다.  

새해를 맞은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월로 반년이 지나갑니다. 나이가 차면 나이 숫자만큼의 속도로 시간이 간다고 하지요. 20대는 20킬로로 가고, 40대는 40킬로, 60대는 60킬로로 갑니다. 젊은 시절에는 얼른 어른이 되고 싶은데 시간이 더디 가고, 나이가 들면 잡아두고 싶은 시간이 속절없이 달려 나갑니다.

어차피 잡을 수 없는 세월은 남의 일인 양 내버려둔 체 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축복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월 가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고, 때로는 이름 모를 그리움에 가슴이 시큰해지지만, 당장은 별다른 문제 없이, 별다른 갈등 없이 무탈하게 살아가는 삶에 고마운 인사를 보냅니다. 참 맥없는 소리지요. 특별히 이루어야 할 계획도 없고, 희열의 감정을 경험할 만한 즐거움도 없는데 그런 상황을 용인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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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젊은 시절에도 그리 열정적인 삶을 살지는 못한 듯합니다. 자랑스럽게 보여줄 만한 것도 없었고, 특별히 나만 겪은 어려움도 없었지요. 이룬 것도, 가진 것도 별로인 채 세월만 부지런히 보내며 살았습니다. 특별한 동기가 없으면 하기 싫은 것은 안 하고, 어렵게 도전해야 할 일은 피하며, 자신과 타협하며 간신히 자리를 지키며 그야말로 적당히 살아온 셈입니다.  

그렇게 큰 충돌 없이 세월을 보내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나이가 된 후에 문득 젊은 시절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던 두려움, 공포에 대한 재 도전의식이 슬며시 피어납니다. 더 늦기 전에 풀고 싶은, 맺힌 한이 있는 모양입니다. 아마도 나이가 차니 젊은 시절에 느끼던 두려움, 불안, 공포가 별다른 위협으로 생각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런 한을 되새기며 다시 의기를 세우려 해도 이미 세월이 훌쩍 가버린 현실을 자각합니다. ‘세월이 사람을 버리고 떠나니 뜻을 품고도 펼칠 수가 없구나’ 하며 한탄하던 도연명의 시귀가 생각납니다. 그냥 지금까지 살아오듯 그렇게 존재감 없이 살아야 할 팔자인가 봅니다.  

지난주 골프연습장에서 우연히 수년 동안 서로 연락이 없던 지인을 만났습니다. 별다르게 친분이 있던 사이가 아니라도 수년 만에 만난 터라 환한 미소로 반가움을 표하는데, 그분 첫 마디가 골을 때립니다. “와우, 이제 노인네가 다 되었네” 합니다.   

자기 늙은 것은 안 보이고 남 늙은 것만 눈에 띄는 모양입니다. 어색한 웃음으로 그렇지요, 세월이 놔두지 않네요. 하며 넘겼지만, 속이 편치는 못하더라고요.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맞네요, 많이 늙었네요. 뭐 그럴 수 있는 얘기인데 마음에 걸리는 것을 보니 참 속이 좁아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식사 자리에서 어느 분이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노인이 되면 세 가지 현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하나는 고집이 세지며 남의 말을 안 듣고, 두 번째는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작은 일에도 화를 내며 발끈하고, 마지막으로 외로움을 자주 느낀다고 합니다.

그 말에 동의하건 아니건 간에, 작은 일에 발끈한 것은 사실이다 보니 노인이라는 사실을 부인 할 방법이 없네요. 노인이라는 단어가 맘에 안 듭니다. 노인 대신 장년이라는 말을 사용하도록 하지요.

장년의 나이가 되어 일어나는 현상은 앞에서 말한 세 가지 말고도 많이 있습니다. 제 경우는 마음이 조변석개로 자주 변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심리적 자제력이 약해진 듯합니다.

아침에는 의기가 올라 정체된 현 상황을 개선할 뭔가를 해보자, 하며 마음을 다지다가도, 오후가 되면 그 마음이 종족을 감추고 사라집니다. 하루를 보내는 것도 피곤한 일인데 또 무슨 고난한 일을 만들려 하는가 하며 편안한 포기를 택합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인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육체의 비중이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육체가 정신을 이기는 상황이죠. 아무리 정신을 내세워 뭔가를 하려고 해도 육체가 따르지 않으면 정신은 그 힘을 잃게 된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껴봅니다. 아침에 멀쩡한 육체에는 정신도 살아나 뭔가 기획을 해보지만, 오후가 되어 육체가 피곤해지면 만사가 귀찮아지며 모든 일의 의미가 사라집니다. 젊은 시절에는 몸이 좀 아프고 피곤해도 해야 할 일은 마쳐야 한다는 정신력이 살아있기에 한번 정한 목표를 이루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젊어서는 육체가 곧 회복된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육체 회복을 기대하기 힘든 장년이 되면 정신 역시 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자신의 약함을 감추려고 고집을 부리고, 화도 잘 내고 하는 것이죠. 또한 육체의 쇠약에 따라 생각도 흔들리며 변덕을 부리고, 결국 외로움을 호소하게 되지요.  

나이가 차면 건강이 정신입니다. 건강을 잃으면 정신도 힘을 잃습니다.  

나이 들어 한번 잃은 건강은 다시 회생되기 힘든 일이죠. 무조건 건강해야 합니다. 운동을 해야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운동을 안 해도 건강을 지키는 데 큰 지장이 없었지만, 나이가 차면 운동을 해야 간신히 도망가는 건강을 잡아 둘 수 있습니다.   

“강한 정신력은 건강한 육체에서 나온다” 이 격언이 진리라는 것을 새삼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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