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5,Monday

한주필 칼럼- 문화충격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모두가 각자 고유의 문화가 있는 탓에 외국인이 다른 나라에 가서 느끼는 문화의 차이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문화의 차이가 상상 이상으로 크거나 이해가 안 될 만큼 이질적인 경우, 우리는 그런 차이로 인한 심리적 충격을 겪게 됩니다. 그런 상태를 문화충격이라고 표현합니다.

한국에서 겪는 외국인의 문화충격은 남의 물건을 탐하지 않는 시민의식이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한국인이 베트남에 와서 느끼는 문화충격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아마도 더운 날씨는 제외하고는 교통혼잡과 제멋대로 다니는 오토바이 행렬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문화의 차이라기보다는 환경의 차이죠.

30년 전 처음 왔을 때 겪은 문화 충격 중의 하나는 복장입니다. 동네 여인들이 아침에 잠옷 바람에 시장을 다니는 모습은 경악스러울 정도였지요. 정작 잠옷을 입고 다니는 여인은 아무렇지 않은데 그것을 바라보는 이방인은 얼굴이 붉어집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진 문화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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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문화의 차이는 사실 견딜 만하고 우리가 이곳에서 생활하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더위야 각오한 바고, 교통은 개발도상국에서는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고, 복장은 웃음을 던져 줄 정도니 그저 넘길 수 있는 차이인데, 진정한 문화충격을 주는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초기에 이곳에서 사업을 진행할 때 대형 기계를 판매하는데, 구입 문의가 들어오면 문서로 정중하게 가격을 제시합니다. 그 후 베트남 회사에서 네고를 시작하는데, 제시된 가격의 반을 잘라 카운트 오파를 합니다. 한국사람은 어이가 없지요. 이 친구들이 이 물건을 중고 시장에서 나도는 구제품 의류 정도로 아는가 싶어 상당한 불쾌감을 표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가격 협상이 이들의 문화라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정해진 가격이라 해도 무조건 반값의 할인가격을 질러보는 것으로 상대의 의중을 떠보며 가격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이들의 문화인데, 무역거래에서의 고전적 가격 네고 협상만 경험했던 한국인 무역상은 진저리 치며 물러갑니다.

이런 문화는 전통 시장에서 늘 경험합니다. 전통시장에 가는 게 반갑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터무니 없는 가격 협상입니다. 부르는 가격의 절반을 치르고 구입해도 그 가격이 정상인지 확신이 서지 않게 만드는 것이 전통시장의 가격 협상입니다. 이곳에서 사업을 하며 생활해야 하는 입장에서 시장바닥에서나 통용되는 줄 알았던 덤핑 가격 흥정이 무역에서도 적용된다는 것은 가볍지 않은 충격이었습니다.

베트남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불편을 주는 문화는 소음입니다. 공공장소에서 고함치듯 나누는 이야기 소리, 밤늦도록 틀어놓는 노랫소리, 도로에서 맘껏 엔진음을 높이며 달리는 오토바이 소리 등 베트남은 소음의 천국입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당구장에 갔다가 현지인이 거침없이 질러대는 고함소리에 질려서 중간에 도망치듯 빠져 나올 정도로 이들은 소음에 대하여 참으로 관대합니다. 베트남이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 변해야 할 요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베트남인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색다른 문화를 직접 경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곳, 베트남에서 말입니다.

지난해 달랏을 다녀오다 길거리에서 파는 보라색 고구마를 한 보따리 사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의 특산물이라는 생각에 사가지고 왔는데, 집사람이 너무 많다고 이웃집에 나눠줍니다. 그 이웃집에는 일본인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나눠주고 온 집사람이 하는 말이, 물건 받는 반응이 좀 뻘쭘 하다며, 일본애들 문화가 그런가봐 하며 넘겼습니다. 그리고 거의 6-7개월이 지나 엊그제 집사람이 그 이웃집 일본 여자를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인사를 하며 고구마 얘기도 나눴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다음 날 오후, 집 앞에 작은 상자 하나가 놓여있는데, 일본 브랜드 맥주 2캔과 망고 말린 조각이 몇 개 들어있는 과자가 쪽지와 함께 놓여있습니다. 쪽지에는 그때 받은 고구마에 벌레가 많아서 호의인지 의문이 있었다는 말과 함께 이제는 물건을 주고받지 말고 미소만 나누자는 글이 영어로 적혀있습니다. 6개월 전에 받은 고구마에 대한 써늘한 답례입니다. 내용도 충격적이지만, 직접 전달한 것도 아니고 아무도 몰래 문 앞에 살짝 두고 가는 행동이 예의 바른 일본인의 모습이라는 것이 충격입니다. 이제 고구마 값을 지불했으니 빚진 게 없다는 통고인 듯합니다.

집사람은 좀 무섭지만 문화의 차이라며 의연하게 넘기는데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저도 그저 허허 웃으며 더 이상 문제를 되지 않도록 반응을 삼갔습니다. 일본인의 문화는 우리와 다를 수 있지만, 이웃의 호의를 이런 식으로 돌려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지요.

처세에 관한 고전적 이야기 중, 따뜻한 친구, 친절한 이웃을 사귀려면, 당신이 먼저 따뜻한 마음을 보이고 친절한 미소를 건내 라고 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조언은 상대가 상식적이라는 조건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호의나 친절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왜곡된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는 결코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함께 일러 주어야만 진정한 교훈이 되는 처세술이 될 것입니다.  

뉴스에 등장하는, 한국을 방문했다는 일본 총리 기시다 군의 얼굴이 유난히 길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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