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요, 이번 지면부터 새롭게 연재를 시작하게 된 ‘나선’이라고 합니다. 베트남에서 일하며 느꼈던 감정, 감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즐거웠던 이야기, 인상 깊었던 이야기 그리고 소소한 일상 등을 주제로 독자 여러분과 만나 뵐 예정입니다. 그동안 좋은 글 쓰셨던 장재용님의 글을 따라가지는 못하겠지만, 솔직하고 진심어린 글로 칼럼을 이어가도록 해 볼게요.
갑자기 날씨가 더워졌어요. 3월 중순까지는 선선하니 좋았었는데 저번 주부터 더워져 요즈음엔 밤에 잠을 청하기 어려울 정도로 덥네요. 이제 곧 절정의 더위가 찾아오려나 봅니다. 더위가 더위에 더위 먹게 되면 세차게 비를 뿌리며 스스로 꼬리 내린다는 우스개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야 베트남이겠죠. 여긴 계절이 없다지만, 어김없이 다시 더워지는 걸 보니 이곳도 자연이, 그저 그렇게 운행하는 섭리가 작동하는 지구의 한 귀퉁이였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점심 자투리 시간을 내서 회사 근처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강렬한 햇빛을 막으려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지나갑니다. 큰 건물 사이 사이를 요리조리 비켜 걸으며 오랜만에 여유를 느낍니다. 조금의 여유가 생기니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더군요. 편의점 구석에서 표정없이 묵묵히 밥 먹는 사람, 지나는 사람을 보며 담배 태우시는 경비 아저씨, 하얀 벽 앞에서 밝게 웃으며 사진 촬영에 여념 없는 젊은 아가씨들, 각양각색입니다.
그렇게 여유를 부리며 걷다가 빌딩 큰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봤습니다. 정확하게는, 아무 생각없이 걸어가던 제가 제 모습을 힐끗하며 쳐다본 거겠죠. 초라했습니다. 평소 꾸미지 않는 버릇도 한몫 했겠지만, 그날 따라 자신 있던 몸매도 유난히 무너져 보였습니다. 잘나지 않은 얼굴에 굳은 표정까지 더해지니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끝이 닳은 뭉툭한 신발에, 무채색 헐렁한 바지, 평범하게 하늘거리는 옷이 촌스럽기가 그지 없네요. 어깨엔 힘이 잔뜩 들어있고, 엉덩이는 교만했습니다. 한 숨을 쉬며 생각합니다. 하, 언제 이렇게 볼품 없는 사람이 돼 버렸을까?
한국에서 호치민으로 온지 이제 만 5년이 지나고 있어요. 떠남이 곧 시작이라며 응원해 주는 친구 말을 찰떡같이 믿고 왔습니다. 그 믿음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지금, 타국에서 5년밖에 살지 않았으니 여전히 생각의 중심은 한국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중심의 생각’이 지워지려면 얼마나 더 여기서 살아야 할까요? 근데 그 생각이 이곳에 오래 산다고 지워는 질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기대 반, 두려움 반, 설명할 길 없는 마음을 안고 낯선 나라에 왔지만, 이룬 것은 없고 그렇다고 앞으로의 길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이 빌딩의 큰 유리에 투영되어 스스로가 초라해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잘 이겨보겠습니다. 그 과정에 앞으로의 이 연재 글이 많은 도움을 줄 것 같습니다.
저는 글의 힘을 믿는 편입니다. 낯선 나라에 살면서 울기도 하고 웃는 일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글에서 위로 받고, 글을 통해 즐거워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울고 웃었던 날들의 소중한 기억을 나눠보려 합니다. 좌충우돌 호치민 적응기, 기대하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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