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최근 나온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 피해자들에게 한국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법원 판단과 관련해 “국방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우리 장병들에 의해 (민간인이) 학살된 것은 전혀 없다”며 “국방부는 거기(판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17일 밝혔다고 경향신문이 보도했다.
이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을 묻는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이같이 답했다. 이 장관은 “당시 상황은 굉장히 복잡했기 때문에 한국군 복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한국군)이 아닌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며 “당시 미군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라고 결론내린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추후 법적 조치에 대해서는 관련 기관과 협의해 진행해 나갈 생각”이라며 “파월 장병들의 명예를 생각해서도 이 부분에 대해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지난 7일 베트남인 응우옌 티 탄(63)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응우옌씨는 베트남전 때인 1968년 2월12일 한국군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군인들이 베트남 꽝남성 퐁니 마을에서 74명의 민간인을 집단 학살했다며 2020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국민의힘 소속 한기호 국방위원장도 이날 국방위에서 법원 판결을 비판하면서 국방부에 항소를 촉구했다. 한 위원장은 “공식 전시보고서인 주월미군사령부 감찰보고서는 ‘누가 퐁니에 갔는지에 대한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마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결론을 냈다. 결론적으로 국군의 개입 사실에 대해 ‘없음’이라고 명시하고 있다”며 “재판 과정에서의 증인과 원고 측 진술 역시 원고 측 주장의 신뢰성을 의심하게 한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일부 정치세력은 베트남전 참전 당시 국군에 대한 의혹을 일본 강점기 하 우리 민족에 대한 수탈과 동일시하는 프레임을 가지고 한국 정부의 사과와 배상이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정부 당국은 진실 규명을 통해 월남전 참전자들의 명예를 폄훼하려는 시도를 단호히 배제시켜주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이번 판결과 관련해 “보편적 가치와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로서 현명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 시절 베트남을 방문해 “마음의 빚” “유감” 등 표현으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사과의 뜻을 에둘러 나타냈지만 민간인 학살 의혹에 대한 한국 정부 차원의 공식 입장은 아직 나온 적이 없다.
경향신문 2023.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