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전화기 너머로 고함 소리가 울립니다.
“아이씨~, 너는 일을 그따위로 하냐? 내가 너한테 다 일일이 설명해야돼?”
당황스럽습니다. 황당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금 비굴하면서 상냥한 말로 대답합니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정확히 확인하려고요”
“너는 도대체 일을 누구한테 배워서… 됐다. 끊어.”
음성이 끊긴 전화기를 잡고 있다가, 남들 몰래 눈물이 핑 돕니다. 내가 일을 하자고 전화했지, 놀아달라고 전화한것도 아니고, 기분이 나쁘면 기분이 나쁘다고 하면 됐지 소리지르고 윽박지를 일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월급쟁이끼리 꼭 이럴 필요까지 있는지 야속합니다. 그래도 직급이 깡패인지라 뭐라 말한번 못하고 참습니다. 하루종일 기분이 더럽고 안좋습니다.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갔는데, 집사람이 집에 좀 일찍 들어오라고 항상 하던 잔소리를 합니다. 오늘의 맨탈은 맨날 들어오던 잔소리를 받아줄 준비가 안되어 있습니다.
” 야! 내가, 늦게 들어오고 싶어서 늦게 들어오냐? 내가 일찍 들어와서 당신 하자는 일 다하면, 내가 회사 언제까지 다닐수 있을것 같애? 응? 돈은 어디서 뚝 떨어져? “
집사람 얼굴이 굳어지고, 아무 말없이 방으로 들어갑니다.
아빠의 고함소리에 잠이깬 아이가 칭얼됩니다. 아빠를 꼭 닮은 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옵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 시끄럽게 하지 말고 빨리 잠이나 자! “
이른바 ‘화’의 연쇄작용입니다. ‘화’는 우리의 일상과 함께합니다. ‘욕’과 함께 우리 일상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게 ‘화’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내면 한마디로 기분이 더러워지기 때문입니다. 타인과 싸움을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화’를 내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싸움을 피하기 때문에 싸움으로 안 번질 사람을 골라 화를 냅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화를 내는 부하직원보다, 부하직원에게 화를 내는 상사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죠. 화를 푸는 제일 좋은 방법은 똑같이 화를 내는 것인데, 윗사람이나 고객에게 화를 낼수 없으니, 내가 화를 낼수 있는 만만한 상대를 찾아 ‘화풀이’를 하거나, 술과 함께 삭히거나 안주와 함께 씹어대야 간신히 다스릴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한 교실이나 직장에서 보이는 왕따 문화는 어긋난 화풀이 문화이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술을 많이 마시는 이유가 화로 가득찬 사회에서 화를 다스려야할 필요성 때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화를 낼까요?
‘니가 감히!’ 라는 마음으로 화를 냅니다. 내가 기분이 안좋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리고,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려고 하는 실용적인 목적이 첫번째입니다. 상대방에게 공포감을 주어 신속한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죠.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화를 내면서 상대방에게 내가 더 높은 사람임을 상기시키려고 합니다. 마치 동화속의 왕처럼, 왕비처럼 대접받고 싶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이른바 갑질 현상의 본질이죠. 하지만 부작용이 있습니다. 당신이 객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의 문제는 한 두번 정도 빠르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당신은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남겨놓았습니다. 상처받은 감정은 어떤식으로든 당신에게 되돌아옵니다. 인간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너무 자주 화를 내면 상대는 익숙해져서 ‘화’의 문제 해결 효과는 지속적으로 감소됩니다. 계속 볼 사람에게 화를 자주 내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이 아닌 이유입니다. 그리고 자녀의 훈육을 위해 지나치게 화를 낸다면 수동적이고 주눅든 아이의 성격 역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때 더 이상 참을 수 없음을 표현하는 방법도 ‘화’입니다. 흔히 소같은 성격이라고 하는데, 평소에 아무 반응없다가 갑자기 한번 화가 나면 아무 말도 안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성격 또한 손해를 보는 성격인데, 화를 내는 당사자는 오랫동안 참았던 일이라 할 말도 많고, 억울하기도 하지만 화를 받는 사람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이런 화를 받게 됩니다.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동안 착각했던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갑작스런 태도의 변화에 황당하기도 하여 제대로 받아줄수가 없습니다. 처음으로 낸 화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거나 파탄이 납니다.
화를 잘못내서 후회를 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부인에게 욱하는 마음에 30초 동안 폭언을 던지고, 3일간 침묵의 벌을 받다가 결국 명품가방으로 용서를 받는 남편. 직원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찝찝한 마음에 하루종일 마음이 편치 않다가, 퇴근시간에 그 직원에게 소주한잔하자고 말을 꺼내는 꼰대 부장님. ‘너 잘걸렸다’ 라는 마음으로 소비자 상담실 직원에게 1시간 동안 컴플레인한 고객. 결국 자기 시간, 상대방 시간 까먹고 기분만 나쁘고 문제는 해결도 못합니다. 본인이 원하는 것만 얘기하면 되는데 상대의 태도를 문제삼고 넘어지니 표적을 떠난 화살만 날라다니는 엉뚱한 활쏘기 대회를 벌인거죠.
그렇다고 화를 안내고 살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화를 너무 참으면 병이 되기때문에 화는 적절한 순간에 잘 풀어야 합니다. 부부 관계나 이성관계에서 가장 무서운 상대가 꽁하고 있다가 한번에 터지는 스타일입니다. 약간 민망하더라도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그때 그때 화제를 꺼내서 조금씩 맞춰나가야 합니다. 그 사람을 기분나쁘게 할까봐 계속 미루다가 나중에 엉뚱한 순간에 문제가 터지면 관계는 더욱 수습이 어려운 상황으로 갑니다. 연인사이에서 서로간의 차이를 조금도 맞춰나갈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면 관계가 더 깊어지기 전에 정리하는 것이 맞는 방법일수도 있습니다. 직장내 상하관계라도 소리를 지르거나, 모욕을 주는 식으로 화를 내면 당장 기분은 시원할지 몰라도, 그 직원의 열정을 이끌어 낼수는 없습니다. 당장 내보낼 직원이 아니라면, 자존심과 인격을 지켜주는 선에서 업무를 가르쳐주는 것이 좋은 리더입니다.
분노 조절 장애 증상, 지나치게 억누른 화 모두 문제를 만듭니다. 화를 다스리기 위한 마법의 주문 3가지를 명심하여, 화로 인해 화를 입지 말기 바랍니다.
-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자
- 먼저 화내는 놈이 지는 거다
-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지 말자.
저자 – 독서 모임 ‘공간 자작’
이번에 본 칼럼을 시작한 독서 모임 공간 자작은 회원수 xx명 규모의 2018년 말 시작하여, 한달에 한번씩 평균 2권의 책을 읽으면서 토론하고, 주제를 논하는 독서 모임이다. 이들의 칼럼은 ‘공간 자작’ 대표측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발표할 예정이며, 2주에 한번씩 연재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