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필 칼럼-해를 보내는 마음

가끔 조용한 물가에 앉아 흐르는 물결을 무심히 응시하다 보면, 물은 흐르지 않고 내 몸이 물결의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듯한 착시 현상을 느끼신 적이 있지요? 그때의 느끼는 감정은 어떻습니까? 

실제로 일상에서도 그렇게 묘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바로 베트남에서 연말을 맞을 때입니다. 연말이 다가올 때마다 “어!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지” 하며 짐짓 의미 없는 푸념을 털어 놓습니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세월은 저만큼 성큼 흘러간 듯합니다.  

세월의 흐름을 알려주는 계절이 없는 곳이다 보니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달력과 날짜를 다시 새기며 세월이 이만큼 지났음을 의식적으로 느껴야 합니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무심한 마음에는, 때마다 다가오는 명절이나 기념일에 대한 기다림도 사라집니다. 따라서 그날을 맞는 감흥마저 시들합니다. 그런가 보다 하며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이런 시들함은 만사에 영향을 미칩니다. 문제만 일어나지 않으면 좋은 무사안일이 새로운 생활철학으로 등장합니다. 결국 열대국가 국민들의 한가한 정서가 어느덧 내 몸에도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던 고국에서는 계절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해줍니다. 철마다 바뀌는 계절은 세상이 돌고 있다는 알람입니다. 그런 알람에 맞춰 우리는 세상을 따라갈 준비를 합니다.  

그런 세월의 전령도, 세상 흐름의 알람도 존재하지 않는 베트남에서는 끊임없는 자가 발전이 필요합니다. 더구나 베트남 사회에 동화되기보다 일정거리를 유지하고 지내는 교민들의 삶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세월이 가져다 주는 동력도 미약한데, 현지 사회의 무언의 메시지마저 귀담아 듣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외부 요인으로 인한 세월의 일깨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시간을 인지하고 그에 따라 소비되고 소진되는 열정과 에너지를 재 충전해야만 합니다. 

매해 연말이 되면 늘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무렇지 않게 이 날을 보내면, 어쩌면 해가 바뀌지 않은 채 계속될 것이라는 엉뚱한 상상을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다가오는 계묘년 2023이라는 숫자가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것은 압니다. 하긴 딱히 필요성도 못 느끼기도 하지요. 해가 바뀐다고 달라지는 건 책상위의 캘린더 뿐이니까요.  

이런 무사태평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마지막 날에는 억지로라도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해가 바뀌고 새로운 매듭이 생긴다는 것을 강제로 주입하고 뭔가 정리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래저래 피곤한 베트남 생활입니다. 

오늘은 2022년 마지막 날입니다. 

비록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채 또 한 해를 보내고 말지만, 오늘만큼은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뭔가 없으면 좋았을 일들을 지우려 함이 아닙니다. 

과거의 시간이 기억 속에 사라진다고 그것이 만든 미래의 시간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저 이 마지막 날에는 반복할 일, 반복해서는 안 될 일을 돌아보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잊어야 할 것은 하나 있습니다. 

섭섭했던 마음 하나는 잊으려합니다.    

가족과 소원한 관계를 만들었던 그 섭섭함만큼은 털어내야 합니다.  

친구와의 사이에 서먹한 간극을 만든 그 옹졸함 마음도 잊어야 합니다. 

혹시 내가 그대의 눈밖에 벗어난 일이 있었다면 용서를 구해야합니다.  

그대는 나에게,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인이 말합니다. 

송년에는 갑자기 철이 듭니다. 일 년 치 나이를 한꺼번에 다 먹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씬짜오베트남 독자 여러분, 

계묘년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독자여러분의 가정과 사업에 행운이 깃드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