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5,Monday

고전에서 길어 올린 ‘깊은 인생’- HUU LUNG 닭장에 여우 들어가다

 

꿈 같이 흘렀다. 시골길, 푸짐한 소똥 가득한 길이 5D 로 떠오른다.
아, 그곳이 천국이었나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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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룽의 바위들을 보는 순간, 내 몸에 각인된 산이 되살아났다. 그렇다, 나는 산으로 각인된 몸이었고 나를 보는 후룽의 암벽들도 내 몸이 새겨진 산이 되었다. 히말라야 눈발에서 크레바스에 빠져 어깻죽지로 30여분을 버텨 올라온 뒤 산을 증오했었다. 길 아닌 길에 들어서서 길을 내며 걷는 일을 천역으로 여겼다. 그 또한 오래된 일이 되어버렸다. 아 언제였던가, 산에서의 증오와 환희와 절망과 황홀은 내 삶에서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러나, 코리안 루트를 내던 그날, 바위 크랙에 스토퍼를 찌르며 추락에 저항하고 만유인력에 반항하며 오르던 때 그 모든 게 되살아났던 것이다.

드릴, 볼트, 너트, 사다리, 스카이훅, 후렌드, 스토퍼 무수히 많은 장비들이 치이잉, 착, 후욱 소리를 내며 바위 밑, 첫 길 낼 준비를 마친다. 살아있는 전설의 등반가, 주영 선배님이 볼팅 작업에 돌입한다. 한 살이라도 젊은 후배가 먼저 해야 할 일인데 그는 장유유서의 문화를 존중하자며 직접 솔선수범한다. 나는 바위 아래에서 그를 자일로 확보하며 전문가의 동작과 손끝을 감탄어린 눈으로 사진 찍듯 유심히 관찰한다. 오십견과 팔꿈치 통증을 참아가며 가장 어렵다는 첫 세 개의 볼트를 마무리하고 무사히 내려온다. 바위에 매달려 볼팅하는 동안의 확보물 설치법과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듣고 곧바로 내가 투입된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스카이 훅을 걸고 바위에 대롱 대롱 매달릴 때, ‘기분이 좋지 않’지만, 기분 나쁜 희열의 역설을 설명할 수는 없다. 사실 생각이 없어지므로 벽에 붙어 있을 때가 나는 좋다. 생각은 없어지고 오로지 살겠다는 집념과 오르겠다는 의지만 남은 존재의 종자 하나가 있을 뿐. 그때였다. 작은 스카이훅이 빠지직 소리를 내더니 ‘핑’소리를 내며 바위에서 빠진다. 나는 순식간에 떨어진다. 추락. 류학열 선배님의 경험 많은 확보가 아니었다면 아주, 많이, 추락했을 테다. 추락을 먹고 흰 돌가루를 뒤집어쓰고 의욕은 상실됐지만 끝까지 오른다. 마지막 구간을 어렵사리 올라서 루트를 완성하고 하강했다. 바위에 매달려 줄 하나로 하강하며 오랜 시간 내 마음 속에 웅크리며 자고 있던 바위의 울음소리를 나는 들었다. 내가 낸 길, 없는 길을 내어 가는 길, 길 내는 사람, 오 충분히 자랑스러워하라.

첫 루트 작업이 끝나자 해는 졌다. 맥주를 마시니 돌가루가 씻겨 내려간다. 오후에 길 내는 모습을 본, 티보, 스위스 국적의 불어를 쓰는 33살 청년이 숙소(후룽 지역에서 등반하는 사람들은 Mao’s House라는 현지 홈스테이에 모두 모여 점심을 제외한 모든 숙식을 같이한다. 이 또한 후룽의 근사한 문화다)로 돌아오는 우리를 크게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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