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걸릴 사람은 다 걸렸다고 생각했는지, 철벽과 같던 베트남의 코로나 관련 입국 격리가 없어졌습니다. 교민들의 한국 방문이 다시 시작 되었고, 그것과 더불어 지인들의 베트남 방문도 시작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힘든 기간에 ” 이 와중에 한 가지 좋은 것은 출장자가 없어서 의전 안해도 된다는 것”이라고 하며 웃기도 했는데, 일과 관련된 출장자들도 계속해서 나옵니다. 모임에서도 지인 방문이나, 출장자 일정 때문에 참석을 못하시는 경우들이 지속적으로 있으니, 다른 교민분들 사정도 마찬가지일것라 생각이 듭니다.
친구는 가장 반가운 손님입니다. 베트남 생활이 1~2년 길어지다 보면 매너리즘과 함께, 약간의 우울증과 향수병 같은 것이 옵니다. 어떻게 그 순간을 극복하더라도 주기적으로 울적한 기분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직장 동료, 이웃, 모임 등 주변 사람들도 있지만 오랜 친구에게 하듯이 속깊은 얘기를 나누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동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은 일얘기를 하게 되고, 직장내 복잡한 역학 관계를 고려하여 할 말, 안할말 가려서 하다 보면 즐거워야할 대화가 결국은 일이 되고 맙니다. 베트남에서도 공적, 사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인간 관계를 맺고 살지만, 내가 한국에 가거나, 그 사람이 한국에 들어가면 끝나게 될 관계를 생각하면 너무 큰 정을 주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을 한국으로 한번 두번 떠나 보낸 경험을 해보면,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을 조심스러워 한다거나, 반대급부로 가족들과의 시간에 더 집착하게 되는 경우를 보입니다. 한마디로 인간 관계가 좁아지고,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살게 되는 것이죠. 이럴때 갑자기 친구로부터 휴가를 베트남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거나, ‘얼마후에 베트남 출장가는데 밥이나 한끼 먹자’라는 연락이 오면 눈물이 날만큼 반갑습니다. 단, 친구가 호치민, 하노이, 다낭을 구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상식이 있길 기도합니다. 호치민에 있는 나에게, 곧 다낭에 가니 저녁이나 한번 먹자라는 말을 하면 등짝을 한대 세게 때려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가족들이 옵니다. 형제 자매들은 각자 공부하느라, 먹고 사느라, 주변 사람들 챙기느라 베트남에 오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쉽게 시간과 비용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연로하신 부모님을 단 몇주만이라도 모시고 효도를 하고 싶은 마음은 다들 갖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베트남으로 모셔서 매일 마사지 보내드리고, 주말에는 리조트도 함께 다녀오고, 맛집도 함께 다니다 보면 어머니, 아버지도 기쁘고, 나도 평소 옆에서 모시지 못한 죄송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습니다. 일이 바빠 한국에 정기적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부모님들을 베트남으로 초대하여 몇주씩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인것 같습니다.
출장자들이 옵니다. 주말까지 껴서 오는 출장자들이라면, 심지어 주말에 비행기를 타고 들어오는 출장자라면(!) 평화로운 나의 삶의 리듬을 깨는 불청객일 수도 있지만, 이들 역시 반가운 손님입니다. 출장자를 공항에서 픽업하여 들어오는 길이나, 밥먹고 술한잔 하는 시간에 본사 사정이라든지, 본사 근무하는 직원들 소식을 자연스럽게 듣습니다. 해외 법인 생활을 오래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고집이 세지거나, 분위기 파악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출장자라는 사람들은 이런 나에게 인터넷에는 나오지 않는 은밀하면서도 중요한 얘기들을 전달해 주는 꿀벌 같은 존재들입니다. 또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저쪽에 전달하는 꿀벌이기도 하니, 조금 피곤하더라도 잘 챙겨주고 기분좋게 돌려 보내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인것 같습니다.
손님들이 자주 오다 보면, 손님들 때문에 속상한 경우들도 있습니다.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오셔서 자꾸 실망하시거나, 아무 준비 없이 오셔서 시종일관 ‘그냥 알아서 해줘’ 라고 하며 사사건건 불만을 표시하는 손님들은 좀 어렵습니다. 베트남을 후진국이라고 무시하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한다거나, 일단 베트남은 무조건 싸다고 생각하는 손님들도 있습니다. 베트남이 한국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것은 상품과 서비스의 가성비가 좋기 때문에 그 곳에서 쇼핑 기회와 사업 기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결코 최상의 제품과 최고로 싼 제품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짧은 시간동안 머무르면서 잘못된 선입관을 갖고 돌아가시는 경우도 있는데, 아마도 오토바이에 대한 생각이 대표적인 것 같습니다. 커다란 교차로에서 정차되었다가 우르르 몰려나가는 오토바이의 물결은 대부분의 손님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가끔 ‘도대체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 ‘ 아이를 저렇게 오토바이에 태워도 되는건가? 쯧쯧’. 이런 말씀들을 하는 손님들이 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오토바이에 신생아를 태우고 달리는 것은, 그 아이의 부모가 생각 없는 폭주족 출신이래서가 아니라 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가 일반적인 교통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너무나 일반적인 지하철, 버스, 마을 버스 등의 대중 교통 수단이 베트남에서는 아직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사회적 배경도 안다면 손님들이 필요없는 오해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손님들이 베트남에 찾아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온, 혹은 또 다른 외국에서 온 손님들을 만나며 주변 사람들 소식도 듣고, 평소에 할수 없었던 이런말 저런말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덧붙여 그 사람들을 거울로 삼아 여기서의 내 삶의 좌표와 방향에 대해 한번 점검해 보고, 그 분들의 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베트남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늘릴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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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독서 모임 ‘공간 자작’
이번에 본 칼럼을 시작한 독서 모임 공간 자작은 회원수 xx명 규모의 2018년 말 시작하여, 한달에 한번씩 평균 2권의 책을 읽으면서 토론하고, 주제를 논하는 독서 모임이다. 이들의 칼럼은 ‘공간 자작’ 대표측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발표할 예정이며, 2주에 한번씩 연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