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인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가 진행한 ‘베트남 특별입국’ 대금 연체 논란이 결국 재계로까지 번졌다고 연합뉴스가 14일 보도했다.
이날 연합뉴스가 입수한 ‘채무 변제독촉 요청에 대한 회신’에 따르면 발송 의뢰인인 대한상의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삼성 계열사가 영세업체를 괴롭히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문서는 대금을 받지 못한 피해업체인 SHV(Samsung Hospitality Vietnam)가 채무 변제를 요구하며 보낸 내용증명에 대한 상의 측 회신이다.
상의는 우선 “귀사는 대규모 기업집단인 삼성 소속 회사로서 영세업체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업체의 대금 지불 요구에 대해 “귀사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채권 회수를 목적으로 열세에 있는 상대 여행사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로 비춰질 수도 있음을 인지하기 바란다”고 공세에 나섰다.
또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베트남 법인으로서 현지 부가세에 관한 사전 지식과 경험이 있었음에도 이러한 쟁점 사항을 계약에 제대로 규정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사태의 책임을 상당 부분 SHV측에 돌렸다.
아울러 채무자인 투어페이스의 부가세 지급 불가 의견을 존중하는 선에서 상호 양보를 통해 분쟁을 원만히 해결하려는 자세와 태도가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더 이상 본건 분쟁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대금 연체와 관련해 전혀 책임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상의 측 입장을 요약하면 결국 피해업체인 SHV가 계약을 제대로 체결하지 못해 이번 사태가 불거졌다는 것이다.
또 밀린 대금을 받아내기 위한 내용증명 공문 발송 등 일체의 법적 절차에 대해서도 삼성 소속사가 영세업체를 괴롭히는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고 오히려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대한상의는 재작년 3월 베트남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외국인 입국을 원천 차단하자 4천여명을 대상으로 특별입국을 진행했다.
상의는 서울의 소규모 업체인 투어페이스와 SBTM 외에도 SHV 등 총 3곳의 대행사를 두고 특별입국을 주관해왔다.
이중 SHV는 호텔신라 계열인 SBTM이 지난 2015년 베트남 현지에 설립한 사업 법인이다.
따라서 상의 측 주장대로 삼성 소속사로 분류된다.
하지만 자본금 6억원의 소규모 업체로 수수료 기준 매출은 10억원 안팎이며 직원 수는 10여명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투어페이스가 한국 내 대행 업무를 맡아서 진행한 특별입국과 관련해 SHV측에 보내야 할 수억원대의 대금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
또 SHV는 대금이 지급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체적으로 격리 호텔비를 전액 지불해 수억원대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들 대행사의 업무를 보면 투어페이스는 한국에서 입국 비용 수취를 비롯해 항공 예약 및 보험, 공항 출국 지원을 담당했다.
반면 SHV는 현지에서 입국 비자 뿐 아니라 격리호텔 및 차량 제공, PCR(유전자증폭) 검사 지원 등 특별입국과 관련한 핵심적인 업무를 도맡아서 진행했다.
그러나 대금 지급이 계속 지연되자 SHV는 결국 주관단체인 상의와 투어페이스를 상대로 채무 이행을 촉구하는 내용 증명을 발송했다.
SHV는 상의에 보낸 공문에서 “지급이 연체된 대금이 미화 54만8천달러에 달하고 있지만 주관 단체인 상의는 현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사가 직접 고객들로부터 비용을 수취하는게 안전하고 대금 미지급의 리스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의가 투어페이스를 한국 내 대행사로 집어넣은 배경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SHV 측은 상의로부터 내용증명 회신을 받은 사실을 시인하면서 채무 변제를 요구하는 2차 내용증명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SHV 김형석 법인장은 “베트남 특별입국과 관련된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증거 자료를 모두 공개하는 방안까지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상의가 내용증명 회신에서 재계 1위인 ‘삼성’을 거론함으로써 불똥이 결국 재계로 튀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온다.
현재 대한상의 회장은 최태원 SK 회장이 맡고 있으며 대금 연체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취임 시점인 2021년 3월부터다.
최 회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내부에서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SHV를 포함한 호텔신라 측은 대금 지급 연체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법적 조치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상의가 내용증명에 삼성을 겨냥한 문구를 집어 넣은 게 고위 경영진의 의사가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인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상의가 공익을 표방하면서 주관한 사업의 대행사가 대금을 못 받아서 발생한 것”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단체가 ‘삼성’을 붙잡고 늘어지는 건 부적절해 보인다”고 전했다.
주베트남한국상공인연합회(코참) 관계자는 “상의는 베트남에서 자주 물의를 빚었고 하노이 사무소도 사실상 폐쇄된 상태”라면서 “이번 사태와 관련한 상의 측 대응을 유심히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22.09.14